‘상업화’로 되돌아가는 MBC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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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사 옛 대주주 주식반환소송 승소 사원들 "5공청산 당연하나 민영화 반대"

‘백담사 사람'이 아닌데도 5공청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다수 (주)문화방송 사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최근 사법부가 80년 언론통폐합 당시 방송국을 빼앗긴 MBC지방사 원주인들에게 재산권을 돌려주라고 판결하자 이것이 정부의'MBC민영화' 추진일정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불만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 4부(재판장 李永馥 부장판사)는 지난 11월1일 전 청주MBC 대주주 李碩勳씨와 전 강릉MBC 대주주 崔燉雄  韓丙起씨 등 2개 지방 MBC 대주주 3명이 (주)문화방송 대표이사 崔彰鳳씨를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소송에서 "보안사가 원고들을 연행해 강제로 주식포기각서를 쓰게 한 것은 불법적인 사유재산권 박탈이었음이 인정되므로 당시 그 주식을 양도받은 피고 회사는 그것을 원래 소유주들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80년 언론통폐합의 불법성'을 사법부가 10년만에 처음으로 인정 했다는 점, 또 언론청문회가 열린 88년 12월을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한 점에서 이 판결은 MBC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사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에 의한 원상회복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무엇보다 계약취소권 행사의 소멸시효인 3년이 벌써 지나버렸다"고 포기하고 있던 MBC본사와 지방사의 과거 대주주들이 이 판결에 고무돼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식을 49% 이하만 갖고 나머지는 본사에 뺏긴 18개 지방사는 물론이고 본사주식 70%를 갖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모조리 뺏긴 이른바 7대재벌, 즉 쌍용그룹의 고려화재(15%), 현대 럭키 교보 해태 동아(각 10%), 미원(5%) 등이 이미 소송준비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MBC주식 반환 판결에 대한 파급효과로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의 원상회복 길이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풀이도 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와 정부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번 소송에서 승소를 얻어낸 李世中 변호사는 "TBC와 DBS의 경우는 권리의 객체가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반환청구소송이 성립될 수 없다"면서 "다만 뺏긴 건물과 기자재에 대한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법률적 해석을 내린다. 공보처도 "두 방송사 문제는 다시 거론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변호사의 해석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MBC 1~2년내 '민영화' 불가피

이번 판결에 피고인 MBC측은 불복하여 즉시 항소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고  대법원의 재판 결과와 다른 지방사 및 본사전 주주들이 앞으로 내게 될 소송에 대한 최종판결이 나오기까지는 1~2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대적 대세에 따라 원고의 승소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 법률전문가의 지배적 견해이고, MBC에 대한 정부의 민영화 방침이 확고해 MBC는 결국 1~2년내에 '민방'으로의 구조개편이 불가피,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사원들의 '반대'는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민영화의 결과는 "공정방송과 방송민주화의 역행"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확정발표는 안했지만 방송구조개편계획으로 검토한 MBC 민영화안의 골격은, 첫째 사실상 정부소유인 방송문화진흥회 명의의 본사 주식 70%를 민간에 연차적으로 매각하고, 둘째 지방계열사도 독립을 허용하되, 셋째 재벌의 참여는 철저히 불허한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이번 판결로 정부가 계획한 이같은 방안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려워졌으나 소유주체가 새로 정해지지 않는 대신 원래 주인이 방송사를 되찾아가는 것일 뿐 민영화 방향에는 다를 게 없고, 오히려 명분이 뚜렷해 새 주인 '선정'보다 자연스런 방법이라는 시각이 있다.

다만 본사의 과거 대주주 등 재벌기업이 승소할 경우 '재벌참여 불허' 방침에 저촉돼 주식을 반환받자마자 비재벌 기업 또는 개인에게 매각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볼 때 재판이 끝나고 난 뒤의 MBC 민영화 구조는 본사와 과거 재벌이 대주주였던 일부 지방사에는 새 민간주인이 들어서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방사에는 재벌이 아닌 원래 소유주들이 다시 들어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MBC사원들은 바로 이와 같은 결과를 심히 우려하고 있으며 지방문화방송노조협의회(지문노협)를 중심으로 민영화 저지를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MBC는 공영방송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원들은 "민영화는 방송이 정도를 걷지 못하고 사주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결국 공정방송이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며 민영화 방침 철회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지방의 취약한 경제사정 때문에 부산과 대구 외에는 지방방송사의 자립이 거의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강교수는 지역방송 발전에 심대한 타격이 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MBC지방사는 언론통폐합으로 본사에 넘어간 이후 본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사옥을 크게 짓고 기자재를 늘렸으며 사원들의 임금도 중앙언론사와 같은 수준으로 크게 오르는 등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립민방'이 되면 소유주는 수지를 맞추기 위해 당장 인원을 절반수준으로 줄일 것이고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투자보다는 돈안드는 싸구려 외화를 방영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도 지역방송을 강제적으로라도 육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원들은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사법부의 '5공청산'을 인정하면서도 "지금보다 나빠지는 게 분명한" 주인의 등장, 즉 민영화를 결코 환영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아직 확실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청주 MBC 노조위원장 임용석씨는 "억울하게 재산권을 뺏긴 과거의 대주주들이 권리를 회복하는 것은 옳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방송민주화와 지역방송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들의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에 그치고 MBC는 현 공영체제를 그대로 유지토록 해야 한다"는 요지로 이번 주 열릴 지문노협총회에서 사원들의 입장을 정리, 장기적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95년 이후 MBC 위상 흔들릴 듯

‘용기있는’ 판결을 내리고도 피고 이외의 제3자들로부터 '불만스런' 시선을 받고 있는 李永馥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은 강박상태에서 불법적 권력에 의해 뺏긴 개인의 재산권을 되돌려줘야 함이 마땅하다는 점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주식반환 결과 파생될 수도 있는 방송의 독점적 운영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함께 고려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방송법에 규정된 몇 가지 조항이 그러한 폐단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개정된 방송법 제6조는 주식 총수의 30% 초과소유를 금지하고 있고, 그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그 주식을 소유한 자에 대해 공보처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송법 부칙에 있는 경과조치는 '법 시행 당시'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더 늘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만 갖고 있는 주식은 30%를 훨씬 초과하더라도 개정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공보처 관계자들도 "이번에 승소한 전 대주주들이 뺏긴 주식을 반환받을 경우 그것은 법개정 전에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결국 현행법상 앞으로 '민영MBC'의 지방사는 1인 독과점주주를 배척할 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원들이 우려하는 방송의 '사영상업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방송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구도로 개편이 진행될 경우 MBC는 경쟁력이 갈수록 저하되고 3개 위성방송채널, 수십개의 유선 텔레비전이 등장하는 95년 이후에는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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