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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주석 시대 아직 안왔다

권력 장악은 85년경 마무리… 최근 조짐은 승계 절차 중 하나

남문희. 한종호 기자 ㅣ | 승인 1992.02.2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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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최근 일부 국내외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북한 권력승계 임박’설에 대해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첫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이다. 정보 자체가 폐쇄된 상태에서 북한의 권력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언론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부 언론의 예상과는 반대로 “권력승계가 예정보다 늦추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국내외 언론이 최근 북한의 권력승계 시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는 하다. 金日成 주석이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후계자인 金正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남한으로 망명한 전 북한외교관 高英煥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이미 85년경에 마무리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73년 당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북한권부에 첫발을 내디딘 김정일은 이어 조직지도부 부장을 겸하면서 노동당의 중추부를 장악했다. 이때부터 인사권을 행사하기 시작해 70년대말에는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80년대 들어와서는 국가기관을 장악하기 시작해 80년에 외교부, 81~82년에는 정치사찰기구, 85년에는 군의 간부급 이상을 완전 장악했다고 고씨는 증언하고 있다.

80년 6차당대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 당비서 · 당군사위 위원으로 급상승한 김정일의 공식 직위도 이미 83년경 당서열 2위로 떠올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지난 90년 5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는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되어 군내에서 탄탄한 지위를 과시하기도 했다.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다만 시기와 방법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라고 북한문제 전문가인 이종석씨는 말한다.

바로 이 시기 문제와 관련해 김일성 주석이 80세, 김정일이 50세 되는 올해가 주목되고 잇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24일 노동당 제6기 19차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면서 권력승계가 임박했다는 추측이 무성하게 나돌기도 했다.

북한 헌법 93조에는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은 국가주석이 맡도록 돼 있다. 따라서 국가주석이 겸하게 돼 있는 인민군최고사령관직을 김정일이 물려받았다는 것은 곧 국가주석직 승계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승계시기는 올해 4월이 유력하다. 북한 헌법에 의하면 국가주석은 매년 4월경 열리는 최고인민위원회에서 선출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우상화 작업, 새로울 것 없다
지난해 12월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이후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부쩍 강화되고 있는 것도 권력승계와 관련해 긴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원회의 결정이 있은 다음날인 12월25일 평양체육관에서 군중대정치지도원대회라는 군인집회가 열렸는데 김일성이 직접 참석해 김정일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북한방송은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를 축하하는 각국의 전문을 연일 보도해 김정일을 국제적인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1월15일자 <내외통신>에 따르면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를 지지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군중대회가 북한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일련의 우상화 열기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최근 김정일 스스로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직접 거론하고 나서고 있는 점이다. <내외통신>에 의하면 지난 1월18일과 21일 북한 중앙방송은 김정일 스스로 “수령의 사상과 위업은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후계자에 의해 고수되고 계승된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최근 권력승계와 관련한 조짐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진행되고 잇는 김정일 우상화 작업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을 전후해 매년 되풀이돼온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일은 아니라고 보고 잇다.

특히 최근의 언론보도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주석의 권한을 규정한 헌법93조의 해석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라는 규정을 인민군최고사령관에 국한시켜볼 수만은 없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즉 헌법93조의 전반적 무력의 범위에는 인민군뿐 아니라 국가보위부 등의 여타 무력집단도 포함되기 때문에 인민군최고사령관을 물려줬다고 해서 국가주석직을 곧바로 승계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상의 문제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일부 언론이 북한의 헌법규정을 지나치게 형식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에서는 당과 수령이 법을 초월해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일을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이상 헌법규정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연구소 金昌順 소장은 “남한의 개념과 척도로 북한 법규정을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모든 권력이 김일성 주석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권력승계도 그의 의중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지 남한처럼 법규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일성 주석 상징적 지위 계속 유지
평화연구원의 金南植씨도 “헌법상의 규정을 들어 주석직 승계가 임박했다고 보는 것은 남한식의 발상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현재까지는 “권력승계와 관련한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12월에 군최고사령관을 물려주고 바로 몇달 뒤에 주석직을 물려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최고사령관을 먼저 넘겨준 것은 주석직 승계를 당분간 하지 안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원 제1정책관실의 朴雄熙 국장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최고사령관을 먼저 넘겨줬다는 것은 권력승계 절차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세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꺼번에 주석직이나 당총비서직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지위는 김일성 주석이 계속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권한만 김정일에게 차례차례 넘겨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는 김정일에로의 권력승계는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데 모아진다. 특히 경제난과 남북관계 및 미 · 일과의 관계정상화 등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 시점에서 권력승계는 오히려 김정일체제에 부담만 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따라서 당분간은 김일성 주석이 상징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하면서 김정일체제의 방풍막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군최고사령관 승계는 군통수권이 김일성에서 김정일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최고사령관 승계 이전에도 김정일의 지위는 이미 군내에 탄탄하게 구축되었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고영환씨에 의하면 김정일이 군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85년부터이다. 당시 인민군 특수부대인 저격여단과 경보병여단 지휘관의 계급을 김정일이 한 등급 올린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사실상 군의 간부급 이상을 김정일이 자기사람으로 완전 장악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군관련 지위도 꾸준히 강화돼왔다. 80년 6차 당대회에서 당 군사위원에 추대된 이래 90년 5월에는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군관련 지위는 직접적인 지휘계통이 아닌 협의체의 일원이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영환씨에 의하면 “군의 간부급 이상은 김정일을 실질적인 최고사령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일반 병사들은 아직도 김일성을 최고사령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식의 권력 이원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인민군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몇가지 문제점도 김정일로 하여금 군지휘계통 장악을 서두르게 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내외통신>에 의하면 최근 인민군 내에서는 크게 두가지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승진과 관련한 소장파 장교들의 불만이다. 군내의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번째는 식량부족으로 인해 일반 병사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기강해이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년 동안 북한에서는 인민군과 관련된 중요 행사가 세번 열렸다. 즉 7월17일의 영웅분대 쟁취운동과 10월17일에서 18일까지 열린 군 사관장 대회, 11월12일부터 13일까지 열린 군 중대장대회가 그 것이다.

결국이들 군관련 행사는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에 추대하기 위한 일련의 준비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중대급 이하의 일반 병사가 그 대상이 돼왔던 점이 이와 관련해 주목된다.

이밖에도 최근 남북관계 기본합의서 채택과 핵사찰 허용 등 대외정책의 급격한 변화도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즉 최근의 급격한 정책변화로 인해 나타날 수도 있는 군부의 동요를 김정일이 직접 무마하기 위해서도 군통수권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이종석씨는 남북관계 기본합의서를 논의하는 자리였던 당중앙위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승계가 결정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잇다. 즉 앞으로 남북간 군비축소와 관련해 김정일이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북관게에서 군축문제가 가장 큰 현안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은데 “김정일이 그 한족 당사자로 부각됨으로써 후계체제를 공고히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하기도 한다.

후계체제 구축, 승계 서두를 이유 없다
김정일 주석 시대가 일반적인 예상보다 늦추어진다 해도 현재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과 그의 지지집단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전문가들이 북한의 권력승계를 시급한 것으로 보지 않는 이유 중에는 사실상 후계체제가 이미 구축돼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승계를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다. 고영환씨는 “김일성이 북한이라는 巨像의 모자라면 김정일은 머리”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김정일의 권력적 지위를 표현한다. 기본적인 정책은 아직도 김일성이 결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책의 집행은 김정일에 의해 대부분 이뤄진다는 것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柳吉在 책임연구원도 “80년대 이후는 사실상 김정일 정권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최근의 남북관계나 대외관계에 대한 급격한 정책변경이 90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인데 이때부터 기존의 사회주의권 및 제3세계 국가들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외교정책을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관계개선 정책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 일과의 관계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열쇠를 쥐고 잇는 것이 바로 남한 정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다라서 이때부터 대남정책도 크게 수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외통신>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북한에 김정일 주석 시대가 실질적으로 열린다 해도 “선택 범위가 그리 넓지 못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유화적인 대외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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