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추락, 기뻐하긴 이르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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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 서울 선호 심리 등 ‘부동산 반란’ 요인 상존… 정부 ‘하락 후 안정’ 낙관

신도시 입주를 앞둔 회사원 ㅇ씨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그는 지난해 일산 신도시 아파트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는 서울 외곽지역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지만 좀더 큰 아파트를 장만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청약저축에 가입, 그 꿈을 달성했다.

문제는 지금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언제 처분할 것인가이다. 욕심같아서는 아파트 두채를 소유하고 싶지만 당국의 서슬이 퍼레 허황된 생각을 일찌감치 버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중도금을 붓느라 기진맥진한 그는 더이상 돈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어 집을 팔아 잔금을 틀어막아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집값이 터무니없이 떨어져 있어 지금 팔면 손해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부동산 정보에 밝은 주위 사람들에게 장차 아파트값이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이지 물어봐도 신통한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하반기쯤엔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집값이 더 덜어지면 당장 팔아도 억울할 게 없지만 혹시라도 집값이 뛰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같아 망설이는 것이다.

ㅇ씨만 이런 것은 아니다. 내집을 가진 상태에서 신도시에 당첨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입주일이 가까워지면서 ㅇ씨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부동산 정보를 취급하는 민간단체에는 집값 전망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신도시 입주 후 6개월 이내에 아파트를 처분해야 양도소득세를 물지 않게 되는데 당첨일과 입주일의 시차까지 감안하면 1년 이상 시간이 있으므로 그 사이에 눈치작전을 펴는 것이다.

87년 이후 연 30% 이상 가파르게 상승해 온 집값은 91년 4~5월을 고비로 1년째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압구정동과 개포동 등의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전국의 집값을 선도하는 서울 강남구의 경우 91년 5월 평당가격이 평균 9백21만원이었는데 올 1월에는 7백88만원으로 불과 8개월 사이에 14% 이상 하락했다.

언제까지 계속 떨어질 것인가
서울 강동구의 경우 91년 5월 평당 6백46만원 하던 것이 올 1월에는 5백20만원으로 19% 이상 떨어졌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가 핵을 이루는 강서구 역시 곤두박질을 면치 못했다. 이 직역은 강남구에서 불어닥친 집값폭등 회오리가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려 91년 10월까지 강세를 보였다. 이때의 평균 가격은 평당 5백92만원. 그러나 11월에는 4백99만원으로 폭락했고 올 1월부터는 4백93만원선에 머물고 잇다. 노원구쪽도 91년 9월까지 평당 5백만원대를 고수하다가 올 1월에는 4백36만원대로 추락했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 91년 8월 평당 3백77만원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하락을 거듭해 올 1월에는 3백23만원대에서 맴돌고 있다(이상 부동산뱅크 조사).

우리나라 집값의 등락은 서울 부산 인천 등 6개 대도시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났으며, 그중에도 특히 서울과 수도권 지역이 시세의 핵으로 지목돼왔다. 서울 강남에서 바람이 불면 인근 강동구에 영향을 끼치고, 이 바람은 강서 · 강북 직역을 자극한다. 서울 전지역을 휩쓴 부동산 바람은 수도권을 들썩이게 한 뒤 전국적으로 파급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거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하락세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국토개발연구원은 전국 6대도시 주택가격 전망을 낙관한다. 91년 12월을 100으로 할 때 92년 4/4분기의 가격은 93.9로 91년 같은 시기에 비해 약 6%, 91년 2/4분기 최고시세보다 10% 이상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개발연구원측은 그 이유로 다음 세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물량공급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작년에 분양된 세대 60만호 이상이 올해 입주될 것이고, 올해에도 50만호 이상 분양될 예정이다. 새로 지은 지베에 입주하는 사람은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하므로 공급확대 효과는 더 커진다.

두번째 이유로 주택에서 기대하는 투자수익률이 떨어져 부동산투자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꼽는다. 최근 들어 대형 고급주택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거품가격이 현실화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끝으로 주택전산망의 구축과 주택보유 과세 강화 등의 부동산투기 억제 대책이 실효를 확실히 보여줄 것이라는 점을 든다. 주택전산망이 마련돼 1가구 다주택 소유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투자이득을 노려 집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릴 분만 아니라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유 자체가 부담스럽도록 세제를 강화해 투기심리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공급물량을 늘리고 세제를 강화해 투기심리를 잡으면 집값이 안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역시 주기가 있게 마련이다. 상승이 있으면 하락이 있고, 하락은 다시 상승 국면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언제까지나 하락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의 하락세가 과연 언제 끝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국토개발연구원 金政鎬 주택연구실장은 지금의 하락세가 93년말~94년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曺周鉉 교수(건국대 · 부동산학)는 92년까지는 하락이 계속되다가 93년에는 주춤해지면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조교수는 “안정기가 오래 유지될수록 집값은 더 안정된다. 즉 집을 팔려고 하는 사람은 집값이 떨어지는 것에 불만을 갖고 매물을 일단 거두어들인다. 그러나 어느 선에서 하락세가 멈춰 안정세를 지속할 경우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안정이 이루어진다”고 전망했다. 이들 두 전문가는 압구정동이나 개포동 같은 서울 일급지역 아파트의 경우 평당 6백만원선에서 안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힌다.

“올 하반기부터 상승할 것” 예측도
그러나 현재 집값 상승을 유발할 요인들이 상존해 잇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선거가 문제다. 개발공약이 남발될 경우 부동산 경기가 과열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전후해 행정력이 이완될 경우 지금까지 부동산투기 심리를 억제해왔던 각종 규제의 고삐가 느슨해질 수 있다.

신도시 개발 역시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집값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신도시는 애당초 자족적 도시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에 생활기반을 둔 사람이 많이 입주하게 된다. 이들이 입주한 후 출퇴근을 하는 데 큰 불편을 느끼게 되면 서울지역의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된다.

신도시 아파트와 서울지역의 기존 아파트 가격차이가 큰 것도 문제가 된다.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서울 강남지역과 1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그만큼 신도시 아파트는 값이 오를 소지가 많다. 신도시 아파트의 가격이 크게 오를 경우 이는 다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신도시 입주자들에겐 값이 오르면 팔고 다시 서울로 진입하겠다는 심리가 없지 않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서울지역의 수요가 갑작스럽게 불어날 우려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건축 자체를 규제했는데 그것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잇다. 지금 당장은 주택공급이 많아 문제될 게 없지만 9 · 28조처 이후 주택건축이 크게 위축돼 올해부터 공사에 착수한다 해도 공사기일을 감안할 때 앞으로 2년 동안 신규공급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공백기간 안에 일시적인 공급부족 사태가 야기될 수 있다.

각종 규제로 부동산가격을 묶겠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행정규제는 불법과 탈법을 낳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몇몇 투기꾼들이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탈법거래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이 ‘비법’이 일반화될 경우 우려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차라리 분양가를 현실화해 분양가와 시가의 차액(프리미엄)을 줄이는 편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견해를 밝힌다.

이같은 장 · 단기적 불안요인은 주택경기 사이클과 맞물려 올 하반기부터 집값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도시 입주 등으로 금년 상반기에 대이동이 이루어진 뒤 여름 불경기를 넘기면 가을 이사철과 함께 상승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부동산투자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군중심리가 작용돼 한번 투기바람이 불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진다. 정부는 신도시 등 물량공급의 단기적 효과에 만족해 하지 말고 불안요인을 잠재울 방안마련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6공을 위태롭게 했던 집값폭등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의지가 느슨해질 경우 또 한차례의 ‘부동산 반란’이 오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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