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민들 “이젠 우짤고”
  • 대구·이흥환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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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도시’ 자존심 무너져… TK 맹주들 세갈래 분열에 ‘허탈감’



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해낸 ‘대권도시’ 대구가 흔들린다. 집권세력의 핵심 지역기반이자 대구 · 경북세의 발상지인 대구의 자존심은 50여일 후면 실체가 드러난다. 대구 · 경북세가 궁여지책으로 내세운 민자당 金泳三 대통령후보와 다른 당 후보에 대한 대구 시민의 지지율이 과연 어떤 편차를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대구는 더이상 옛 여권의 아성이 아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대구시 11개 지구당 중 6개만이 민자당 의원 지역일 뿐이다. 국민당과 새한국당(가칭)이 각각 2개 지역을 점유하고 있고, 나머지 1개를 무소속 政鎬容 의원이 차지하고 있다. 대구의 3인 기대주로 각광받던 정호용 · 金復東 · 朴哲彦 의원에 대한 인기도나 지지도도 예전같지 않다.

‘대구의 자존심’을 외치며 6공 5년 동안 우여곡절의 정치곡예를 벌였던 ‘호랑나비’ 정호용 의원은 대구지역 언론의 집중공격을 피할 논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다. 신당 참여 여부를 놓고 그가 보여준 정치계산은 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심화시켰다.

장성 출신인 김복동 의원은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면서 새 인물 · 큰 인물의 긍정적 이미지로 대구 동구 갑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정치 신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구 정가 주변에서 ‘대구의 김일병’으로 불리는 신세가 됐다. 김영삼 총재를 “무소신 무정책 무철학의 3무”라고 힐난했던 그가 막바지에 김총재를 지지하자 “마지막으로 투항한 TK”라는 평을 듣게 된 것이다. 정가 일부에서는 김의원이 자신이 이끌던 송백회마저 김총재에게 헌납함으로써 칼집째 넘겨주었다는 평을 하면서, 김의원의 정치행보에 반감을 품은 송백회 일부 회원이 탈퇴하는 소동을 빚은 것도 김의원의 정치 입지에 타격을 주었다고 말한다.

정호용 의원 대신 대구의 자존심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민자당을 거부하고 신당을 택한 박철언 의원이다. 민주당이나 국민당 사람들조차 “박의원은 지조가 있다”고 평한다. 초지일관 반김영삼이라는 것이다. 박의원은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그렇다고 웃고만 있을 처지는 아니다. 권력 핵심권에서 점차 멀어지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대구 시내 특급호텔을 오가며 하루가 멀다고 모임을 가졌던 박의원 후원회원이나 재정위원들의 발걸음은 자꾸만 무거워지고 있다. 박의원 후원회장인 우방주택 이순모 회장이 우방특혜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라고 대구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국민당 인기 부쩍 상승세

대구의 핵심 TK 3인이 민자당(김복동) · 새한국당(박철언) · 무소속(정호용)으로 각각 소속을 달리한다는 점이야말로 대구 TK의 현주소를 가리키는 객관적인 지표 구실을 한다. 대구 현지의 TK 인사들은 ‘자라나는 새싹의 순’이 모조리 잘려버렸다는 자조 섞인 평도 한다. 金潤煥 의원이 ‘대구의 새싹’에 가위질을 한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대구 · 경북세에 칼을 댄 김윤환 의원에 맞서 여전히 대구 · 경북세 역할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박철언 의원뿐이며, 대구 · 경북세의 맹주였던 김복동 · 정호용 의원은 개인의 정치 입지 확보에만 몰두하면서 대구 · 경북세의 몰락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대구 · 경북세가 기득권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임시적 유보라는 표현이 걸맞다. 대구 · 경북세가 나름대로 제시하는, “지금은 TK가 흩어질 때다”라는 생존의 논리가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대구 · 경북세의 내분과 균열로 공백이 된 대구에 점령군의 모습으로 나타난 세력 중 하나가 국민당이다. 주부층을 중심으로 장년층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해 3 · 24총선을 전후로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린 국민당의 인기는 노대통령의 민자당 탈당 이후 반김영삼 기류의 반사 이익 덕분에 부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구 남구의 金海碩 의원과 수성구 을의 尹榮卓 의원이 대구지역 국민당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물량 공세를 편다는 소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국민당은 민자당의 대체 정당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당의 인기는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이도(김영삼) 저도(김대중) 아닌 3자’라는 측면에서 다분히 상대적이다. 金宇中씨의 대통령입후보설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10월 말 대구에서 유독 촉각을 곤두세운 정과 역시 국민당이다. 鄭周永 후보와 김우중씨가 대구 유권자의 선택지로 등장했을 때는 정후보의 입지가 불리해져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민주당으로서는 대구야말로 최대의 취약지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집중 투자를 하자니 본전도 건지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표 분산 전략’이다. 유권자의 표가 민자당과 국민당으로 갈라지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심지어 민주당의 일부 지구당에서는 유권자에게 “김대중도 아니고 김영삼도 아니라면 차라리 국민당을 밀어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대구 · 경북 지역에서 국민당이 표만 갈라준다면 민주당도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반김대중이라는 인식의 관성은 대구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하지만 민주당의 자신감은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 강하다. 세 후보중 선두를 달려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최대 목표는 15% 득표다. 대구시 전체 유권자 3백40만명 중에서 75%가 투표에 참가한다고 가정할 때, 청년층의 지지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면 15% 득표까지도 넘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결국 김영삼 후보 지지할 것”

盧泰愚 대통령의 탈당 이전과 이후의 대구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 됐다. “TK가 장악했던 민자당을 빼앗겼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민주당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30년동안 향유해온 정권을 빼앗긴 데 대한 허무”라고 표현했다.

대구 정치권 인사들의 이런 진단은 대구 · 경북 지역의 반김영삼 기류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대선에 그대로 반영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대안이 없는 한 결국 김영삼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총재가 대구지역에 쏟는 노력은 대단하다. 선거가 임박했는데도 대구의 지구당 공조직은 ‘개점 휴업’상태나 마찬가지다. 우선 신당으로 가버린 박철언 의원(수성구 갑)과 劉守鎬 의원(중구)의 빈 자리에 鄭昌和 · ?成煥 전 의원을 앉혔지만 총선 대만큼 원활하게 조직이 돌아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박철언 의원과 한묶음으로 간주되던 姜在涉 의원의 서구 을 지구당도 강의원의 당 잔류 선언에 따라 후유증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민자당 공조직을 깊은 잠에서 깨우기 위해 투입된 특공대가 민주산악회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여권 생리에 길들여져 있는 지역 유지나 유력 인사들에게 과거 야당 출신인 민주산악회의 손짓은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신당의 한 인사는 “민주산악회가 대구지역을 공략하면서 경찰서 정보과나 구청 쪽의 산악회 간부 인사들을 추천하라는 압력을 넣는가 하면, 기존 야당 조직에까지 손을 뻗혔다”고 말한다. 민주산악회로부터 지도위원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는 한 기업인은 “산악회가 숫자 채우기에 바쁜 것 같다. 간부가 된 사람들도 재정지원만 할 분 활발하게 움직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구의 ‘잠’을 깨우려는 산악회의 발걸음은 무척 조심스럽다. 민주산악회 대구시지협의 회장인 유성환 전 의원은 지난 9월28일 협의회 결성식 때 “민자당은 형님이다. 동생인 산악회는 형님인 민자당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산악회원들은 별도의 신분증이 없다. 잡음을 없애려는 산악회 지도부의 계획에 따라 아예 신분증을 발행하지 않았고, 최근 들어서는 “산악회 배지도 달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내부 행사 때는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일부 정가 인사들은 김총재 차남인 金賢哲씨와 부친인 김홍조옹의 개인적인 인맥을 바탕으로 한 밑바닥 조직이 산악회보다 더 활발하다는 지적을 한다.

대구는 떠돌고 있다. 정치만큼 경제도 혼미 상태다. 서울의 6배, 부산의 4배에 가까운 대구지역 부도율은 전국 1위다. “중소기업인치고 바지 뒷주머니에 부도난 어음 한두 장 안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닌다. 관변 기업체나 허가업체의 장들은 여전히 서울의 정치 풍향을 감지하기에 분주하다. 권력이라는 힘의 논리와 영향력을 가까이에서 체험한 기업체 장들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제 대구 시민의 최대 관심사는 ‘대구 · 경북세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대구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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