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0단 김종필 YS와 함께 권력을…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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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분점說…김대표 밀어주고 당권 노릴 수도

 최근 김종필 최고위원은 핵심 측근들에게 5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지시했다. 차기 대통령후보를 선출할 전당대회 준비란 자유경선에 대비한 대의원 확보 작업을 말한다. 투표권을 행사할 대의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략 7천명 정도의 대의원을 혈·학·지연을 따라 조직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다. 총선 후 전당대회까지는 2개월 남짓밖에 없다. 대의원을 자기 계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작업을 해야 한다고 김최고위원의 측근은 말한다. 그런데 김최고위원은 준비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5월 전당대회가 형식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전당대회가 형식적으로 치러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선없이 특정인의 손을 들어버릴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경선을 하되 내용상 지명하는 것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의 예상이 반드시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서는 정치 감각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최고위원이 후계구도에 관련한 어떤 흐름을 감지한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최고위원은 3당 합당 전에 합당 사실을 모르는 측근들이 당의 조직확대 작업을 하려고 했을 때도 만류했다고 한다.

 김최고위원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정치 관측통들은 그가 타협에 능한 현실 정치인임을 지적한다. 버틸 때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버티나 정치의 흐름에 순응할 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협상에 임하는 노련함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후계구도의 방향이 잡혀 그 흐름을 돌이키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그는 현실을 인정하고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김최고위원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후계구도가 김영삼 대표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그는 당권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한 관측통은 내다봤다. 집권세력이 바뀐다고 가정한다면 권력분점은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표의 측근인 강인섭 당무위원은 “김대표의 입장에서도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대구·경북 출신 세력과 협상이 불가피하고, 협상의 대상에는 김최고위원도 포함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권력분점의 가능성을 점쳤다. “3당 합당으로 수요와 공급이 안 맞는게 현실이고 어떤 형태로든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권력분점이 논의될 것이다.” 김최고위원의 도움없는 김대표의 집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김최고위원과 김대표 사이에 권력분점에 관한 물밑 대화가 이미 있는 것같은 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인 김동근씨도 당권 협상 문제에 대해 “그때 가봐서 하게 되면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권력분점 논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JP가 YS 밀면 대세 결정난다.”
 이 문제에 대한 김영삼 대표측의 반응도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민주계의 황병태 의원은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은 황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김대표에게 수차례 권력분점을 건의했고 김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강삼재 의원은 “세부 내용은 합의되지 않았다 해도 총론에 관한 방향은 대강 잡혀 있으리라고 본다. 어차피 민정·공화계에 양보할 것은 해야 한다”고 말해 권력분점 논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김덕룡 의원도 “현행 헌법대로 한다면 대통령의 권한은 많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해 권력분점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이 아님을 시사했다. 김대표 측근들의 이러한 견해는 권력분점 논의가 더이상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음을 말해준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권력분점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해 한 정치 관측통은 대통령이 당적을 떠날 경우 당권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대표의 입장에서도 대통령후보로 가장 유력하되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를 놓고 김최고위원과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최고위원이 방향을 바꿔 김대표를 밀면 그야말로 대세는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권력분점에 고나한 물밑 협상은 총선 후에나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후의 정치판세와 당내 역학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최고위원의 협상력은 선거를 통해 새로 형성될 공화계의 세에 달렸다. 따라서 그는 이번 선거에서 공화계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최근 지프를 마련했다. 선거 기간 동안 공화계 후보들의 선거지원을 위해 각지를 누비고 다니기 위해서다. 그는 또 체력관리에 여념이 없다. 격한 싸움을 앞두고 힘을 비축하기 위해 틈만 나면 자택에서 수면을 취한다. 그는 지금 일전을 치르기 위해 구두끈을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임재길 후보의 충남 연기지구당 개편대회 참석을 시작으로 선거지원 활동에 들어갔다. 같은 날 오후 공화계 이인구 의원의 대전 대덕지구당 개편대회에는 “신뢰와 희망의 표상 김종필과 함께”라는 현수막과 “충청인의 표상JP"라는 피켓 물결 속에 3천여명의 당원들은 “JP”를 연호했다. 이 자리에서 김최고위원은 “동서간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예의 ‘중부권 역할론’을 주장했다.

 김최고위원은 자신이 지원한 후보들을 전원 당선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한 공화계 의원은 말한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계 후보들 중 몇명이 당선되느냐는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된다. 관측통들은 총선을 치르고 나면 김최고위원의 세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현재 공화계 후보들이 많이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나 김최고위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김최고위원은 선거 전문가라는 것이다. 13대 선거에서도 관측통들은 공화당이 충청권에서 2~3석 정도밖에 못 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반김대중과 반김영삼 감정을 교묘히 이용해 대전에서 4석 전부, 충북과 충남에서 각각 2석과 8석을 움켜쥔 사실을 그는 예로 들었다.

 김최고위원은 공천과정을 통해 하마터면 형편없이 위축될 뻔했던 자신의 세력을 그런 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김최고위원을 포함해 공화계가 차지한 조직책 수는 전체 2백37개 중 29개. 공천 전 지역구 수가 2백24개였을 때의 35개보다 오히려 6개 줄었다. 김최고위원은 세 최고위원 회동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는 등 막판 버티기로 다소 약화되긴 했지만 자위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을 챙겼다.

 공천자 중 공화계는 대전에서 남재두씨를 뺀 윤성한 김홍만 박충순 이인구 의원, 충북의 이종근 의원, 충남의 정일영 윤재기 김용환 김제태 조부영 의원과 오장섭씨 등이다. 경기도에서는 이병희 이대엽 김문원 이택석 김병용 의원, 그리고 최무룡 의원과 교체된 박명근씨 등이다. 그 밖에 서울의 김용채 신오철 유기수 의원과 최후집 김규원씨, 광주의 김용호씨, 전북의 정원조씨, 전남의 김우경씨, 경북의 구자춘 의원과 강원도 최종완씨 등이다.

JP, 총선 후 권력분점 협상에 적극 나설 듯
 이중 김최고위원의 배려와 막판 버티기로 살아남은 사람은 대전 중구의 김홍만, 대전 서구·유성의 박충순, 공주의 윤재기, 천안의 정일영, 예산의 오장섭씨 등이다. 김최고위원의 도움으로 김홍만 의원은 2선인 강창희씨를 물리칠 수 있었고, 박충순 의원은 이재환 김태룡 전 의원의 양면 공격 속에서 살아남았다. 윤재기 의원은 민정계 정석모 의원의 거센 도전으로, 정일영 의원은 합당 전 민정당 위원장이던 성무용씨와 배제대 학장인 이선근씨의 협공을 받아 계속 열세였으나 김최고위원의 뚝심으로 막판에 구제됐다. 오장섭씨는 2선인 박병선 의원 대심 김최고위원이 지원한 사람이다. 이밖에 공화계는 아니더라도 김최고위원의 도움으로 공천을 따낸 사람은 대전 동갑구의 남재두씨와 천안의 함석재씨다. 남씨는 청와대측에서 미는 이양희씨에게 밀릴 뻔했다. 함씨는 김최고위원과 청와대측이 함께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후에는 민자당의 판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김최고위원은 당내 입지 유지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선거 기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공화계 후보를 독려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 형성된 세를 바탕으로 권력분점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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