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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정신병 핵가정 노린다”

‘만능 탤런트 만들기’가 주요인

박성남 차장대우 ㅣ 승인 2006.04.28(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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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4학년인 기영(가명)은 ‘도벽’ 대문에 아동상담소를 찾아온 아이다. 그의 부모는 모두 고학력자로,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1주일을 쪼개 방과 후에는 미술 · 영어를 가르쳤고, 첼로를 개인교습받게 했으며 컴퓨터학원에도 보냈다. 어느날 기영이는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듯’ 전자오락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 ‘내 아이만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열성이 아이의 정서를 멍들게 하나 것이다.

도벽 외에도 어린이의 정서장애나 행동장애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병아리처럼 재잘거리는 유치원 원아 중에 유독 무표정한 아이.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의자위로 올라가 다른 아이를 때리는 국교 1년생. 유치원에 갈 시간이면 이유없이 복통을 호소하며 토하는 아이. 까닭없이 헛기침을 하거나 눈을 깜박이는 ‘틱’ 장애아. 개중에는 놀이치료실에서 아빠인형을 발가벗기고 다리를 찢어지게 벌려 팽개치고 나서야 다른 놀이를 하는 6세 남아도 있고, 크레용으로 그린 가족 그림을 오리면서 남자동생의 목을 잘라버리는 5세 여아도 있다.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는 징그러운 구렁이에게 아기인형이 잡아먹히는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이 천진한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이처럼 끔찍한 잔영을 심어놓는가. 한 상담원은 각종 장애를 일으키는 아이의 심리상태를 “잘 돌던 기계가 무엇인가에 걸려 멈춰 있는 상태”에 비유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기계를 멈추게 한 그 무엇을 규명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이 자체가 지닌 기질적 특성대문인지, 아이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가려 진단하고 그에 따라 조처하는 일은 의학계 전문영역에 속한다.

국립정신병원 소아정신과 곽영숙 과장은 환아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힌다. 지난해 이 병원 소아정신과에 새로 온 환자는 2백50여명이었고, 재진은 3천여명에 달했다. 5년 전 문을 연 원광아동상담소에서는 하루 평균 20여명이 놀이치료를 받는다. 이는 3개 놀이방에서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어서 새로 오는 아동은 6개월 정도 기다려야 놀이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환아 급증은 부모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자기 아이가 남과 다르면 곧잘 병원이나 상담기관을 찾게 된 까닭도 있다.

정상 가정에서도 많이 발생

정서 · 행동 장애아의 환경요인에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각 가정의 자녀 수가 줄면서 부모의 과잉보호 또는 편애가 노골화되었고, 여기에 경쟁적인 입시환경으로 인한 조기교육 바람, 일하는 엄마의 증가, 급증하는 이혼 등 사회적인 여러 요인도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그러나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서 누구나 정신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특정한 어떤 환경이 곧 소아정신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소아정신병이 늘어나는 까닭을, 대가족제도 붕괴 이후 핵가정화하면서 젊은 부모들이 급변하는 시대상에 대해 불안을 느끼며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대개의 정신과 의사들은 핵가정이라는 환경요인이 소아정신병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검증할 수 없는 이같은 등식은 공연히 부모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 환경 속에 놓인 아이를 부모가 직접 통제하는 오늘에 와서는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커진 것에 비례하여 아이의 긴장감도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가족관계가 다면화되어 잇는 대가족제도 아래에서는 가족 간의 애증관계가 희석될 가능성이 크지만, 핵가정에서는 그 관계가 강렬해진다”고 설명하는 곽영숙 과장은 “핵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일수록 또래 관계를 통한 사회규범의 습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의 소아정신병은 이혼가정, 또는 결손가정뿐 아니라 정상가정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 앞에서 예로 든, 기영이와 같은 아동의 틀에 박힌 생활은 고학력 부모의 중산층 가정에 일반화돼 있다. 요즈음 아이들은 방과 후에 숙제 말고도 각종 학습지를 풀어야 하며, 주간 계획에 따라 수영 · 미술 · 피아노 · 서예 · 영어 학원 등을 순례한다. 각 가정에서는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스케줄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아이의 잠재적 재능을 일찍 발견해 계발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비롯된 조기교육이 왜곡된 입시제도 아래의 경쟁수단으로 변질돼 이용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국교 고학년생이나 중학생이 되면 학과공부 때문에 예체능 실기를 할 시간이 없는데 내신 비중은 높기 때문에 조급한 부모들은 이에 대비하여 빠르면 두세살, 늦어도 유치원 때부터 각종 예체능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원광아동상담소 유미숙 상담원은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학과공부는 물론 예체능까지 잘해야 하는 ‘만능 탤런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동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는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되고 학원에나 가야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지경이 된 것이다.

“입시 때문에 아동기가 없어졌다”

훗날의 성적을 위해 아이의 개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이같은 강요는 부모자식 관계를 강박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같은 긴장이 아이의 역량을 넘어설 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경고다. 서울 강남구 반포에 있는 김행숙 신경정신과의원 김행숙 원장은 “환아와 예약시간을 조절하려면 국민학생도 오후 5~6시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사실은 “입시대비 상태가 연장돼 활발하게 놀아야 하는 아동기가 없어졌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김원장은 또 스케줄에 쫓기며 1주일 내내 긴장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지구력에 문제가 생겨 갑갑증을 못참거나 주의력 결핍증, 심하게는 ‘틱’이나 불안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왜곡된 조기교육 바람이 집에 잇는 엄마가 빠지기 쉬운 덫이라면, 증가하는 ‘일하는 엄마’ 문제도 아동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 다섯살짜리 남아 준영이(가명)은 부모가 전문직을 가진 상류층의 아이다. 아이에 대한 기대감은 컸지만 엄마가 사회생활에 바빠 친할머니가 키웠다. 준영이는 두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른 사람 손에서 길러지면서부터 ‘눈치보는 아이’가 되었다. 네사라 때 유아원에 보내자 문제가 드러났다. 아침마다 일하는 아주머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광적인 발작을 일으켰으며, 다른 아이에게 공격적 행동을 하여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준영이의 증상은 엄마와 아이 간에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시기를 놓친 데서 비롯된 경우다. 아기들은 생후 6개월부터 만 3세가지 엄마와 강한 애착관계를 갖게 되어 엄마에게 달라붙고, 낯을 가리며 엄마를 쫓아다닌다. 엄마의 직장생활이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때가 바로 이 시기다. 그러나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아주는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애착관계가 형성된다는 연구도 많다. 이대부속병원 소아과 이 근 교수는 “이때 필수적인 조건은 엄마 대신 돌보아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지 말아야 하고, 엄마 못지않게 아기를 사랑하고 관심과 보호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육 대리인이 자주 바뀌거나 엄마와 양육인이 서로 다른 양육관으로 기르거나, 동생이 일찍 태어나 엄마와 아이 간에 ‘애착형성’의 개회를 잃게 되면, 아이는 왜곡된 애착을 갖게 되어 ‘분리불안증’ 등 각종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남을 괴롭힘으로써 부정적인 반응으로나마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아동이 이에 포함된다.

일하는 엄마들은 대개 낮에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는 그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에 대해 ‘양보다는 질’의 개념을 적용하며 일하는 엄마가 공연한 죄책감에 얽매이지 말 것을 충고한다. 또 허용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제한해야 하지만, 아이와 해후하는 순간부터 서로 충분히 반길 틈도 가지지 않은 채 숙제 점검 등을 명령조로 말하는 것은 긴장관계를 유발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아정신병 중에는 어떤 일에 차분히 매달리지 못하고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할 뿐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 어려운 주의력결핍 장애(과잉운동증)도 있다. 학령기 이전 아이라면 30분 정도 책을 보고나 블록쌓기 등을 하면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가를 보고, 학령기 어린이라면 숙제를 제대로 끝낼 수 있는가를 본다. 몇분이 채 안되어 이것저것 바꾸어 해보고 결국은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 채 부모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면 주의력결핍 장애다. 기본 증상은 주의 산만 · 충동성 · 과잉운동이다. 주의 산만은 주의력을 오래 집중시키지 못하고 생각이 흩어지는 현상이며, 충동성은 생각하기 이전에 행동하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 배우지는 못하는 증상이다. 과잉운동은 마치 발동기를 단 것처럼 집이나 학교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뒤틀거나 벌떡 일어나 교실바닥을 걷기도 하고 뛸 때도 있다.

놀이치료, 언어구사력 결핍 아동에 효과

눈을 깜박이거나 코를 찡긋거리고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는 증세를 보이는 ‘틱’ 장애아도 흔하다. ‘틱’은 뚜렷한 목적없이 반복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근육운동을 일컫는다. 이 근 교수는 “어린이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한 불안, 긴장이 생기면 이를 이겨내려는 노력의 일부로 ‘틱’이 생긴다”면서 ‘틱’ 환아의 부모들은 어린이의 공부나 일상생활에 대해 간섭을 많이 하고 상당히 기대하며,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틱’은 얼굴에서 시작하여 목 어깨 팔 몸통 다리 등 아래쪽으로 번저나가며, 침을 뱉거나 발을 구르거나 펄쩍 뛰거나 차거나 때리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언어구사력이 모자라는 아동의 정신치료에는 흔히 놀이치료가 이용된다. 대개 1주일에 한번씩, 1회 50분씩 하는 놀이치료는 갖가지 인형과 장난감, 모래상자를 이용하여 아이가 놀이하는 동안 응어리진 내면의 갈등을 표출 · 해소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건강한 자아개념을 확립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곽영숙 과장은 “소아정신병은 증상에 따라 약물치료와 특수교육을 병행해야 하는 등 치료법이 달라져야 하므로 의사의 처방없이 무조건 ‘비구조화된 놀이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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