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로 남기고 싶었다”
  • 송준 기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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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 동명소설로 출간한 宋吉漢씨

 소설과 시나리오, 시나리오와 소설간의 넘나듦은 한국 영화계의 침체를 투영한 실루엣이다. 시나리오 전업작가 宋吉漢씨는 이같은 현상을 한국 영화산업의 열악한 환경과 그로 인해 소재발굴 및 창작의욕의 제약을 받는 시나리오작가들이 유기적으로 빚어내는 ‘영양실조의 악순환’으로 파악한다.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를 동명의 소설로 개작한 송씨는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꼭 소설로 형상화하리라는 구상을 했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一過性을 극복, 하나의 기록물로 남기고 싶었다”는 그의 표현 뒤켠에는, 그러나 같은 이름 같은 소재의 것도 “영화는 영화, 소설은 소설일 뿐”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에 묻혀 나름의 작품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심리의 한자락이 드러나 있다.

 흥행의 여세를 몰아 외화를 소설로 바꾸는 경향은 있으나 방화를 소설화하는 작업은 아직 흔치 않다. 반면 어느 정도 성가를 올린 소설을 영상에 옮긴 사례는 많다. 소설쪽으로 손을 벌려야 할 만큼 시나리오쪽의 소재가 고갈됐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재충전의 몸부림’을 하느라 작업 일선을 떠나는 중견작가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만큼 소재가 풍부한 곳도 없다. 문제는 작가의 역량”이라고 송씨는 분석한다.

 닭에서 출발하든 달걀에서 시작하든 이 ‘영양실조의 사이클’은 영화계의 구조적 정체를 명확하게 밝혀준다. 소설의 영화화는 시나리오 소재의 빈곤을 시사하며, 이는 작가가 충분치 못한 데 연유하고 우수한 두뇌를 붙잡아둘 유인의 부족이 그 직접적 이유이다. 즉 경제적 여유가 없는 탓이다. 새로운 우수 작가의 확보는 그만두고라도 기존 작가의 시나리오에 대한 덤핑행위마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나리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말처럼, 결국 영화의 수준이 낮아지고 흥행에 성공할 확률은 줄어들어 영화계의 여건은 더욱 나빠진다. 이 악순환 위에 ‘UIP영화 직배’라는 무서리가 내린 상황이 한국 영화 여건의 현주소라는 풀이이다.

 얼핏 절망처럼 보이는 이 ‘영양실조 순환 모델’은 실상 송씨의 애정어린 ‘조건부 낙관’에 바탕한다.

 ‘영화의 설계도’인 시나리오의 창작 분야에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문이 넓어진 점이 그 첫번째 근거이다. 신춘문예 및 영화진흥공사 현상공모 등 신예작가가 등단할 기회가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료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어렵게 확보한 고급인력마저 TV극작 부문으로 흡수돼,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게 된다.

 각 대학에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영화동아리 움직임도 기대해볼 만하다. 영화에 대해 순수한 애정을 가진 젊은 감독群이 여기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젊은 영화인을 중심으로 한 새 영화움직임은 매우 긍정적 변화이며 “뜻만 맞는다면 언제든 시나리오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송씨는 밝힌다. 몇몇 모임에서는 강의 요청을 해오는 등 구체적 접촉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 대해 애증을 동시에 품고 있는 송길한씨의 시나리오 창작 외길인생은 그의 소설 《명자 아끼꼬 쏘냐》에 쓰인 표현을 빌리면 “그리움이고 슬픔이고 어렵고 고단한 길고 긴 여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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