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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 물줄기 지킨 ‘작은 거인’

조용필, 12월14·15일 콘서트/음악의 정점에 홀로 서서 트롯 · 로큰롤 · 동요 · 민요 섭렵

강헌(음악 평론가) ㅣ 승인 1994.12.1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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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대중 음악계는 아쉬움과 설레임으로 흥청거린다. 각종 시상식에서 그 해의 기린아로 우뚝 서고픈 욕망의 더듬이들이 꿈틀대는가 하면, 송년 음악회를 통해 자신의 ‘인기’에 쐐기를 박으려는 이들과 다음해를 기대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반전을 기도하는 이들의 열창이 화려하게 울려 퍼진다. 이와 같은 12월의 부산함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4, 15일 한국종합전시관(KOEX)에서 열리는 조용필의 콘서트이다. 한국 대중 음악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단 1명의 베테랑이 세밑의 틈바귀에서 그저 그런 인사치레가 아니라 냉엄한 진검 승부를 펼치려는 것이다.

사실 조용필로서는 올해가 <창 밖의 여자>로 웅혼하게 재기하던 지난 80년 이래 가장 저조한 해였다. 초여름에 조용하게 모습을 드러낸 열다섯 번째 앨범은(80년 이전의 이런 저런 앨범 아홉 장과 라이브 앨범 한 장을 포함한다면 스물 다섯 번째) 그의 앨범이 발표될 때마다 반드시 뒤따랐던 환호와 경탄을 폭발시키지 못했으며, 야심적으로 추진하던 뮤지컬 작업도 개막을 앞두고 무기 연기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조용필도 결국 저무는 노을의 숙명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인가.

실종 위기에 처한 성인 음악 재건
그러나 25년에 걸친 조용필의 음악 궤적을 다시 한 번 음미한다면, 그리고 특히 90년대에 들어서 그가 줄기차게 추구해 온 음악의 내면을 섬세하게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러한 관측이 성급한 판단일 뿐만 아니라, 10대의 단말마적인 비명에 주도권을 빼앗긴 현 단계의 상황 논리에서 비롯한 발상임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조용필은 한국이 본격적으로 대중 문화와 문화 산업 시대를 열어 가는 이행기의 한복판에서 세대와 장르의 균열을 쉬지 않고 일관되게 봉합해낸 거의 유일한 대중 음악가이며, 한국 대중음악사가 7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의 암울한 매너리즘의 늪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수문장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마초 파동 이후 3년여 독공 끝이 모습을 드러낸 <창 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긴급조치의 암흑기 아래 또 다시 통속의 동어반복으로 몰락해가던 한국 대중 음악을 기사회생시키면서 발라드 대 댄스뮤직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지형도를 단번에 구축했다. 그는 이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일련의 앨범을 통해 트롯과 로큰롤·블루스·동요·민요를 왕성하게 섭렵해 냄으로써 10대 취향과 성인 취향의 질서를 집대성했다. 그의 역사적인 책무는 89년 <제10집 PartⅡ>부터 금년의 앨범 까지 모두 다섯 장을 통해 증명한 것처럼, 실종 위기에 처한 성인 대중 음악 문화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10대의 과잉 욕망이 끝없이 수입 신상품을 요구하며 한국 대중 음악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을 때, 그와 쌍벽을 이루며 독창적인 장르 실험을 계속해온 송창식이 87년 이후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가 은인자중할 때, 그리고 이 기세등등한 인민 재판 앞에 30년대부터 통속성의 권좌를 내놓지 않았던 트롯이 마침내 눈물을 훔치며 무대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바로 그 순간에, 조용필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 문화적 불균형을 돌파하려는 음악적 대안을 제출한다. 그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허공>에 이르는 혁혁한 트롯의 계보를 잇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이 섭렵했던 모든 장르 문법들을 내면에서 성숙하게 융합시키고 발효시킴으로써 탄생시킨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 ‘조용필류’의 음악들이었다.

조용필·양인자(작사)·김희갑(작곡)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산물인 89년 <Q>와 19분 30초 동안 뒷면 전체를 차지하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90년대에 자신이 도전하게 될 목표를 향한 확고한 계시였다. 그리고 숨돌릴 틈도 없이 90년대 벽두에 발표한 열두 번째 앨범의 머리 곡 <추억 속의 재회>는 바로 그의 첫 번째 응답이었다. 이 노래의 서주부에 한없이 여유롭게, 그러나 너무도 또렷하게 새겨지는 16비트의 템포와 4도의 협소한 음역에서 서서히 용틀임하는 첫 네 마디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라. 그는 바로 이 한 곡에서 위기에 몰린 한국의 성인 대중 음악이 트롯에 의존함 없이 독자적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그것은 이듬해 앨범 <THE DREAMS>와 92년의 <CHO YOUG PIL 14>로 바로 이어진다.

편곡 능력 뛰어나
약간 쉰 듯한 그의 보컬이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오히려 원숙한 미의식을 분만하는 가운데 <꿈>에 이르면, 우리는 단순성과 복잡함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만나는가를 관람하게 된다. 즉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꿈을 찾아 여기에/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어디가 늪인지’로 이어지는 후렴부는 단지 ‘도-솔’의 음표만을 고용했을 뿐인데도 대단히 극적인 울림을 자아낸다. 그것의 비밀은 간결한 음계와 리듬 아래 치밀하게 자리잡은 음악 감독의 편곡 역량에 있다. 그는 신시사이저 기타까지 포섭하는 현악기들과 피아노·키보드 등으로 이루어진 건반악기, 그리고 다양한 음색을 가진 여러 종류의 타악기를 능란하게 배치함으로써 <창밖의 여자>의 궤를 계승하는 <슬픈 베아트리체>같은 발라드나, 흥겹지만 난만하지 않은 삼바 리듬의 퓨전 재즈 <장미꽃 불을 켜요>,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은 로큰롤<추억이 잠든 거리> 같은 곡에서 드물게는 트롯 음계를 채택한 <이별의 인사>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한편으로 웅장한 관현악적 서주부와 록 리듬이 절묘하게 결합하는 <흔적의 의미> 같은 수작들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이것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모데라토의 정신, 중용의 미 의식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바다와 같다. 트롯과 구미 대중 음악의 그 어떤 요소도 그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끝없는 날갯짓 하늘로>를 제외한 나머지 곡을 그의 밴드 동료들의 곡으로 채운 금년의 15집 앨범에서도 여전히 증명된다. 이 앨범은 그의 실패작이 아니라 거장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인 휴식이다. 그러나 그 휴식엔 단 것을 좋아하는 철부지를 위한 벤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姜 憲(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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