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은 ‘정치’의 이웃사촌인가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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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특혜 소지… 건영 등 ‘TK 건설 3인방’ 급성장에도 ‘배경’ 의혹 안가셔



건영특혜사건의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을 것인가. 이 사건을 가리켜 수서사건이나 정보사터 사기매각사건의 재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의구심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건설업은 정치와 가깝다”라는 세간의 속설만큼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속설이 나오게 된 것을 업계의 고유한 특성때문이라고 여긴다. 건설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발주자의 요구에 따라 주문(도급)생산을 한다. 광고나 판촉 따위는 먹혀들지 않는다. 오로지 발주자의 주문을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 하는 것만이 사업 성패의 관건으로 작용한다. 대한건설협회의 민 용 조사부장은 “발주자의 주문에 부응하려면 인간관계라든가 로비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눈(여론)에 거슬릴 정도가 도가 지나치냐 않으냐 하는 것”뿐이다.

그 때문에 한상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건설업체는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건영특혜사건으로 80년대 후반부터 급성장한 대구지역 연고의 세 건설업체가 주목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올해 발표한 도급한도액 기준 건설업체 순위에서 갑자기 50위 안에 뛰어오른 다른 몇몇 업체도 성장배경과 관련한 구설수에 이미 올라 있다.

특정지역 건설업체의 성장배경이 자꾸 거론되는 것은 아직도 건설업에 외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부문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주택건설업에서는 택지확보와 관련된 일이 그 부문에 속한다. 집 지을 땅이 부족한 상황에서 각 업체는 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땅의 형질을 바꾸거나 각종 제한을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수서사건과 정보사터 사기매각사건, 건영특혜사건은 모두 이와 관련돼 벌어진 일들이다.

입찰과정에서도 ‘배경’이 작용할 수 있다. 입찰에는 발주처가 얼마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일 발주처로부터 낙찰액을 귀띔받을 수만 있다면 경쟁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입찰을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이 확산돼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각종 이권과 특혜의 여지가 남아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관급공사는 그 지역의 유력한 건설업체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로 진출한 지방 건설업체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한 대기업 건설회사 임원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몇몇 사람이 숫자를 틀어쥐고 입찰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밝힌다.

건영 · 우방주택 · 청구와 같은 대구지역 연고 건설업체들은 특혜나 부당한 방법응로 성장해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기네 기업이 특혜기업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은 대구 · 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의 몰락과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정치적 구심점을 잃은 대구 · 경북 지역의 경제인들이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현지여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히려 건설업의 ‘정치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5월 말에 이미 건영특혜 관련 민원 있었다

건영특혜사건의 정치성은 이 사건의 발단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울 문정동 일대의 땅에 대한 특혜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였다. 당시 토지개발공사 직원 가운데 일부는 건영의 무리한 사업추진에 대해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개발공사는 이들의 의견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설령 정부당국이 부주의하게 이 의견을 흘려버렸다 하더라도, 5월 말쯤에는 이미 문정동 조합아파트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시행일자를 5월27일로 못박아 감사원이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감사결과 처분요구 내용>에 따르면 당시 이 지역에 대한 군의 고도제한구역 해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물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같은 지구에 아파트 건축 협의를 신청한 것에 대하여는 비행안전에 지장이 있다는 사유로 부동의한 반면 다른 업체의 신청건에 대하여는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여 동의를 하였고…”라고 되어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 때부터 이미 건영특혜와 관련한 각종 민원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0월20일 국회의 서울시 감사에서 宋千永 의원(무소속)이 폭로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주택건설사업상의 문제로 그냥 지나칠 뻔했다. 건영 쪽에서는 연합주택조하조합원 가운데 몇사람이 송의원에게 제보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원가에 맞춰 분양가를 올려달라는 건영의 요구와 무자격 조합원 60여명의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양쪽이 계속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이해가 얽혀 잡음이 일기 전에는 건설업계의 은밀한 ‘정치’는 밝혀지기 힘들다.

건영(회장 嚴相皓)은 올해 국내건설 도급순위 27위, 해외건설 도급순위 13위를 기록한 회사이다. 이 회사는 현재 유통 · 레저 · 제조 · 무역 분야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약 7천억원에 이른다.


해당업체선 “특혜 성장 아니다” 주장

이 회사는 신도시 개발을 통해 성장했을 뿐이라며 특혜설을 일축한다. 86년 서울 중계동에서 7백42가구를 분양한 후, 90년 신도시에 진출했을 때 건영 아파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90년 매출액이 급성장하게 된 것은 89년에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조달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건영의 주장이다. 이 회사는 부채비율(부채총액/자본총액)이 1백67%로 국내 건설업체 가운데 재무구조가 매우 견실한 편에 속한다.

대구 두류산타워 특혜시비에 휘말린 우방주택의 경우는 특혜의 증거보다는 정치적 배경 탓에 구설수에 오른 건설업체이다. 대구시가 두류산타워 건설을 맡긴 것이 위법이 아닌 데다 대구시 쪽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사업을 추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방주택은 두류산 일대에 건설하려던 우방놀이단지를 아직 완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우방주택은 이 건설사업에 투자한 6천억원 때문에 회사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방주택의 李渟牧 사장의 정치적 배경으로 거론된 인물은 국회의원 朴哲彦씨였다. 이사장이 한때 박의원의 후원회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91년초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국회의원이 후원회를 다투어 조직하기 시작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대구지역의 모든 기업체의 경영주들 사이에 후원회 가입이 붐을 이룰 정도였다.

박의원의 정치행로는 우방주택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민자당 안에서 소외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회사의 일부 중역들은 이사장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데 대해 자랑스러워 하기보다는 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 때문에 “91년말 후원회장직을 완전히 내놓았다”고 밝힌다.

대구 · 경북 지역 연고 건설업계 가운데 성장속도가 비교적 느렸던 청구는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아 대조적이다. 이 회사는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위축돼 분양가구수의 70~80%가 미분양되거나 계약취소되던 86년 36 대 1이라는 기록적인 분양신청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용면적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설계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독특한 경영방침이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91년 4월 신도시 아파트 청약과정에서는 평균 84 대 1로 신도시에 참여하나 업체 가운데 최고 경쟁률을 기록해 그 명성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張壽弘 회장도 청구를 도급순위 28위의 업체로 끌어올렸지만 정치적 굴레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현재 민자당 경상북도 지구당 수석부위원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

건설업계는 그 특유의 정치성으로 인해 ‘블랙박스’로 규정되기도 한다. 건설업계는 블랙박스의 불투명성으로 고통을 받기보다 그것을 즐겨왔다. 그러나 건설업의 묘미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 8백여개 이상의 업체가 건설업체 면허를 신청해놓고 있다. 신청자 대다수에게 신규면허를 줄 경우, 건설업체수는 두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기존 건설업체는 9백3개이다.

생산방식도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도급생산방식은 사라지고, 계획생산방식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건설업에서 계획생산방식이라면 발주자의 주문에 따라 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를 예측하여 생산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건설은 계획생산방식의 좋은 예다(조합아파트는 도급생산방식이다). 앞으로는 민간이 발주하는 건설사업이 정부발주 사업보다 많아질 것이다.

선진국은 국내 건설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도급한도액 기준방식의 입찰제를 폐지하고 실질적으로 기술을 가진 업체가 공사를 따낼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이다. 낮은 노임이라는 70년대의 비교우위가 사라진 상황에서 정부는 대기업체 중심으로 건설업을 육성해야 할지 진입장벽을 완전 철거해서 자유경쟁을 유도해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경쟁과 개방이라는 시장논리가 건설시장이라는 블랙박스의 어둠을 멀지않아 걷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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