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년 氣’ 모아 무병장수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문화재 김 용씨 ‘처용무’ 기공체조로 체계회… 중국 기공보다 효과 커

 

 

건강법의 일환으로 중국의 기공체조가 무분별하게 들어와 그 부작용이 우려되는 요즘, 우리 고육의 춤사위에 기초한 한국적 기공체조가 개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처용무 인간문화재 金 龍씨(60 · ‘한국의 집’ 전통혼례 담당)가 처용무의 춤사위에 기초해 개발한 ‘처용무 기공’이 그것으로, 이미 몇번의 실험을 통해 중국의 기공체조보다 동작의 구성원리가 훨씬 체계적이고, 기공효과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김씨는 경희대학교 한의학대학 김광호 교수(예방의학과 학과장)팀의 도움을 받아 의학적 규명 작업과 함께 저변확대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오방처용무’의 인간문화재인 김씨는 전통춤의 대중적 확산 방법을 찾아 고심하다가 기공체조 형식에 착안하게 됐다고 한다. 즉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전통 춤사위를 건강법으로 보급해 누구나 쉽게, 그리고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중국의 기공체조도 그 출발점이 춤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씨의 착상은 일면 전통의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중국의 기공체조는 원래 습기가 많은 중국 중원지방에서 관절염 등의 질병이 나돌자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편으로 춤을 개발한 데서 시작된 이후 다양한 갈래로 발전해왔다. 오늘날과 같이 기공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통일된 것은 1967년경이다.

처용무 기공은 중국 기공에 비해 동작의 상징적 의미나 철학적 토대가 훨신 깊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김씨는 말한다. 또한 각각의 동작에 우리 민족 고유의 몸짓이 살아 있어 우리 춤의 원리를 터득하면서 건강을 도모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김씨가 처용무 속에 기공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 것은 지난 70년대 말 오방처용무의 作舞 · 作隊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작업에 몰두하면서부터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실존인물인 處容의 설화로부터 유래된 처용무는 신라 때는 1인무로 추어지다가 고려 때 2인무로, 그리고 조선조 세종 때 오늘날과 같이 오방처용무로 확대되 궁중무로 전해져왔다. 처용이 자신의 처를 범한 역신을 춤을 추어 승복시켰다는 처용설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처용무는 춤의 자세가 정대하고 위세가 당당하며 활기있는 동작 속에 쾌활하고 호탕한 기풍이 감도는 대표적인 남성무다. 처용무의 이러한 남성적 기개는 그 춤의 보범과 춤사위가 전통무예인 택견이나 수벽치기의 그것과 유사해 무예 연구가들의 주목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각의 춤동작이 상징하는 바나 작대의 원리 등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었다. 지난 1962년 국립국악원의 국악사 모집시험에 응시해 전통춤의 세계에 뛰어든 뒤 1971년 처용무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씨에게도 이는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탈춤을 예로 들어보면, 춤 전체를 이끄는 줄거리가 있고 이에 따라 배역이 정해져 각자가 추는 춤에 변화와 기복이 있다. 그러나 오방처용무는 다섯명의 처용이 복색만 다를 뿐 춤동작은 똑같다. 다만 대열의 형태가 일렬로 늘어서는 平進, 사각형으로 늘어서는 四方作隊, 다이아몬드형으로 늘어서는 五方作隊 등으로 바뀔 뿐이다. 탈춤이나 농악과 달리 춤의 전개과정이 얼핏 보기에 변화가 없고 단조롭기 때문에 젊은 층에게 처용무는 재미없는 춤으로 인식되기 십상이었다.

오방처용무는 한국적 태극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처용무의 동작 및 작대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김씨는 약 3년간 온갖 문헌과 동양철학 전반을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처용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체계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실마리는 다섯명의 처용이 입는 각각의 복색이 동양철학의 근본인 음양오행 사상의 오행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부터 찾게 됐다. 즉 청색은 木을 상징하고, 적색은 火를, 황색은 土를, 백색은 金을, 흑색은 水를 상징한다. 각각의 복색 사이에는 상생상극의 관계가 이미 설정돼 잇다. 이러한 상생상극 관계는 오방처용무의 진행과정에서 두명씩 마주보고 추는 對舞 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상극관계의 대무가 이루어지면 그 춤의 동작은 거부와 거역의 의미를 띠어 癖邪의 내용을 담는다. 상생관계에서의 대무는 친근하고 활기있는 몸짓으로 변한다.

오방처용무의 작대 원리 속에서도 태극과 음양오행 등 동양철학 원리는 관철된다. 평진의 다음 동작, 즉 이웃한 처용끼리 인사를 하는 相拜相背는 각각 자기를 낳아준 오행에 대해 예를 표하는 형식으로 돼 있어 仁義禮智信이라는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대목이다. 사방작대는 주역의 洛書(東夷계인 舜임금 때 거북의 등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후천변화의 원리를 기록했다는 그림)의 四維方 원리에 따라 대형이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상극의 원리 · 달의 운행 · 땅의 원리를 표현한다. 오방작대는 주역의 河圖(역시 東夷계인 태호 복희씨가 용마의 등에 새겨진 반점을 보고 우주창조의 원리를 기록했다는 그림)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상생의 원리 · 태양의 운행 · 하늘의 원리를 상징한다.

따라서 오방처용무는 전체적으로 인의예지신이라는 인간 세상의 도리와 천지 자연의 순환과정 속에서 생명체가 발생 · 성장 · 소멸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한국적 태극무’라는 성격을 띠는 것이다. 원래 불교 영향권에서 발전한 이 춤이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조선시대에 오히려 확대 발전돼 궁중무로 정립된 것도 이 춤을 감상함으로써 王度를 수련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왕들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오방처용무의 동작 및 작대의 원리 속에 이와 같이 동양철학의 핵심적 원리들이 이미 관통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동양의학의 기의 순행원리에 맥이 닿고 있기 때문에, 그 속의 고도의 건강법이 담겼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내다볼 수 있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어쩌면 김시의 작업은 선조들이 처용무의 동작 속에 비장해둔 이 고도의 건강법을 재발굴해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 20여년간 무의식적으로 처용무의 춤사위를 추는 동안 김씨는 이와 같은 선조들의 음덕을 톡톡히 입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얼굴에 총상을 입는 등 큰 부상을 당했는데도 정상인과 똑같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처용무 속에 내재된 기공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처용무 기공은 본래의 처용무 동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반복되는 동작을 생략하는 등 간소화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태극의 원리를 상징하는 첫동작에서부터 인의예지신의 인간 도리를 밝히는 5개 동작, 춘화추동 계절의 순환 속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발생 · 성장 · 소멸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8개 동작, 다시 원래의 태극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동작 등 15개 동작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동작은 택견의 품밟기를 연상시키는 발동작을 기본 보법으로 해서, 오금질로 형성된 기운을 허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손으로 표출해 때로는 어깨춤을 추듯, 때로는 태극을 그리며 기를 모으고 뿌리는 황홀한 손동작으로 이어진다. 우리 민족 고유의 몸짓이 멋스럽게 살아나는 것이다.

3개월 배우면 혼자 연마 가능

이러한 몸동작을 기본으로 해 여기에 호흡법과 意念(각각의 동작을 할 때마다 신체의 특정 혈에 의식을 집중시켜 기를 운행하는 것) 등 기공적 요소를 배합해 운동 효과를 높혔다. 직장인들도 하루 두시간씩 1주일에 두세번, 3개월 정도만 배우면 혼자서 충분히 연마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몇년 동안 김씨가 각고 끝에 개발해낸 처용무 기공은 김광호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 의학적 효과가 연구되고 있고, 한편으로는 저변확대 방법도 모색되고 있다. 이미 중국의 학상장기공을 연마한 바 있는 김교수는 김씨로부터 약 6개월간 처용무 기공을 배운 후 중국 기공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의 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김교수는 처용무 기공의 의학적 효과를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한의과대학의 정규 커리큘럼 속에 포함해 우선 학생들에게 보급할 계획이 있다. 또한 앞으로 각급 학교에 양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한의사들도 의무적으로 배치되게 되면 이들을 통해 각급 학교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