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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돌아보라

동양 문명 일어서는 전환의 시대 도래…한국의 세계화는 아시아에서 출발해야

남문희 기자 ㅣ 승인 1995.01.0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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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발리 섬은 국가 운영 시나리오를 스스로 써본 적이 없다. 이 나라는 국정 시나리오를 이웃에 있는 힌두 문명에서 빌려다 사용했다. 발리섬의 왕은 이 시나리오의 흥행주를 담당했고, 승려는 연출가를, 농민은 배우와 무대 담당 그리고 관객이 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정치 형태였다.’

 81년 일본 교토 대학 동남아연구센터의 야노 도오루(矢野暢)교수는 그 전 해에 미국의 클리포드 기아츠란 정치학자가 펴낸 3백여 쪽짜리 책자를 읽고나서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누가라>(인도네시아어로 국가라는 뜻)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자는, 19세기 발리 섬의 정치형태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문명권의 주변 국가들이 어떻게 국정 시나리오를 이웃의 문명 국가로부터 차용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기아츠는 남의 나라로부터 국정 시나리오를 빌려다 사용하는 국가를 ‘극장 국가(Theater State)’라고 불렀다.

한국의 국가 운영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야노 교수가 이 책을 읽고 흥분한 이유는 기아츠의 극장국가론이 바로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분석틀이 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야노 교수는 1년 뒤 또 하나의 극장국가론을 세상에 내놓았다.<극장국가 일본>. 80년대 초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책에서 그는 일본 역사를 중국 문명을 차용한 극장국가 1기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명으로 대체한 극장국가 2기,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서양 문명에서 미국 문명으로 변형된 시기로 구분했다. 그가 주장하고자 한 핵심은 ‘이제는 일본 스스로 국가 운영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아츠나 야노 교수의 극장국가론이 한국 사회의 어제 오늘과 무관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본의 고대가 중국 문명을, 근대가 서양 문명을, 현대는 그 중에서도 미국문명을 자기 것인 양 차용해 사용한 역사였다면 한국도 이 혐의를 벗기 어렵다.

 야노 교수가 80년대 초 극장국가론 저술에 몰두한 이유는 경제력 상승에 걸맞는 일본의 국가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국이 안고 있는 과제 역시 이제는 우리 운명의 시나리오를 우리의 손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리라.

 적어도 이런 문제 의식은 이미 정부나 학계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외교안보연구원 배긍찬 교수는 “총체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부도 느끼고 있다. 특히 대외 관계에서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미국에만 의존해왔던 데서 벗어나 어느 정도 균형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서진영 교수(고려대ㆍ정외과)는 “북한 핵 문제 이후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80년대 일본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영국 박사(21세기위원회ㆍ동남아정치)는 “탈냉전, 정보화 시대, 그리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 추세에 맞는 전략 모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에 맞춰 정부는 지난해부터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제시했다. 세계화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94년 하반기 한국 경제에서 나타난 미묘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30일은 제31회 무역의 날이었다. 94년 연말까지 한국의 대외 수출은 9백40억 달러. 95년에는 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실로 눈부신 성장이다. 그러나 이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최근 한국의 대외 수출 구조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눈길이 주어지지 않았다.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오른 중화경제권
 무역의 날 며칠 전인 11월26일 상공자원부는 주목할 만한 통계 자료 하나를 발표했다. 94년 1~10월 한국의 해외 수출시장에서 중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등 중화경제권 국가들이 미국을 제치고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기간에 중화경제권 국가들에 대한 수출은 1백69억5천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22.2%를 차지해, 1백65억1천만 달러로 21.6%를 차지한 미국을 제쳤다. 그 전 해까지만 해도 대미 수출이 1백81억4천만달러로 중화경제권 국가들에 비해 10억달러 많았으나, 94년에는 10월까지 4억달러 차이로 순위가 역전되었다.

 60년대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미국시장은 한국 수출에서 절대적이었다. 한때 5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 시장 비중이 20% 대로 떨어진 것도 심상치 않은일이지만, 교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3년밖에 안된 중국시장이 급격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은 주목할 현상이다.

 대미 수출과 대중국권 수출의 역전 현상은 94년 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 현상이 어느날 갑자기 돌출한 것은 아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이동해 왔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한국의 10대 수출국판도 변화이다(위 표 참조).

 80년대 말까지 10대 수출국은 미국ㆍ일본ㆍ유럽 등 서방 세계에 편중돼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자 주로 유럽 국가들의 탈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중화경제권 국가들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이 주요 수출 대상국으로 급격히 떠올랐다. 93년에 이르자 3위인 중국을 비롯해 10대 수출국 안에 아시아 국가들이 7개를 차지했다. 서방 국가는 미국ㆍ일본 ㆍ독일뿐이다. 일곱나라 중에서 홍콩ㆍ대만ㆍ싱가포르는 중국계 국가이고, 인도를 제외한 태국ㆍ인도네시아는 화교가 경제력의 태반을 장악하고 있어 넓은 의미의 화교경제권에 포함되는 국가들이다.

 이처럼 93년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의 몸체는 아시아권, 그중에서도 중화경제권으로 깊숙이 빨려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이러한 ‘脫歐入亞’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에서도 입김 강해지는 중국
 굳이 경제 사관의 관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실물(경제)의 이동은 생활 무대의 이동을 가져오고, 생활무대의 이동은 문화ㆍ문명의 이동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구한말의 개항이 중국 문명에서 벗어나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결과를 가져왔다면, 8ㆍ15는 미국 영향권으로, 그리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미ㆍ일의 영향권에서 다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명권으로 복귀하는 대순환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세계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아시아화 내지는 아시아 속에서의 세계화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를 자주적 국정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면, 그것 역시 아시아판 국정 시나리오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목소리는 이미 실물차원을 넘어 정치ㆍ외교 분야에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진통을 겪었던 북한 핵문제를 통해서이다. 서진영 교수는 “북한 핵 문제를 겪으면서 국제정치학계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한 핵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북한, 또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전세계와 북한의 대립 구도로 비쳤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그 해결 방법을 둘러싸고 대북 압박 전략을 구사한 미국 등 구미국가들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 중국, 그리고 중국의 뒤에 서있는 아시아 국가 간의 대립이 날카롭게 펼쳐졌다.

 미국의 압박 전략에 맞서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함으로써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했다(시사저널> 제235호 참조). 94년 10월 일시 귀국한 황병태 주중대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강택민 주석이 남북 정상회담 중재를 위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확인했다. 94년 3월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했다. 강주석은 이를 쾌히 수락했고 그뒤 김일성 주석에게 세 차례(또는 네차례)에 걸쳐 김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황대사는 “카터씨가 방북했을 때 김주석이 ‘김 대통령의 뜻을 잘 받았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 말은 바로 강주석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에 대한 화답이었다”고 말했다. 카터씨 방북으로 정상회담 중재가 미국측으로 넘어가자, 당시 중국외교부 관계자는 “우리가 중재했는데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미 미국과 중국은 정상회담 중재를 둘러싸고 한반도에서 한판 힘겨루기를 벌였던 것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중국식 해법은 사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기도하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94년 4월16일자에서 ‘북한의 의도나 북한 핵의 위험성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핵을 둘러싸고 위기감이 높아지면 미국과 아시아 관계는 험악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수 세력이 북한 핵 위협을 과대 포장하고있는 데 대해, 아시아 국가들은 북한의 핵 개발이 서방 국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카드에 불과하며 그 위험성도 미국이 주장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 전략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산케이 신문> 홍콩지국장 소우마 마사루(相馬勝)씨는 북한 핵과 중국지도력 사이의 상관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북한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얻기 어려운 전략적 외교적 카드이다’(일본 척식 대학 출판부 간행,<海外事情)94년 9월호)

 따지고 보면 94년 내내 한국 정부가 핵문제를 둘러싸고 갈팡질팡했던 배경에는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새롭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국 및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문제는 미국 중심의 국가 운영전략이 중국 및 아시아권의 도전에 부딪혀 혼란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또 아시아권으로의 실물 이동을 대입할 경우, 핵문제는 서양문명권에서 살았던 한국이 중국 중심의 아시아문명권으로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부딪힌 첫 관문이었던 셈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아시아
 그렇다면 한국이 이제 그 첫 발을 깊숙이 들여놓기 시작한 오늘의 아시아는 어떤 세계인가. 한국의 아시아 진입은 새로운 기회인가, 아니면 고난의 시작인가.

 핵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지난 1년간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곤경에 빠지곤 했다. 중국에 대한 인권 문제, 일본에 대한 통상 문제,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미국소년 태형 사건 등 오늘의 아시아는 이미 백년전 구미 열강이 함포 외교로 무릎을 꿇린 아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힘의 역전 상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94년 3월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인권문제로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태도는 실로 여유만만한 것이었다. 양국 외무장관이 만난 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촌극이 벌어졌다.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은 기자회견의 경과를 묻는 일본 기자에게 “미국이 공동기자회견을 제의했고 우리는 동의했다. 그후 미국이 변경을 요청해와 우리는 또 동의했다”고 간단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초조한 것은 미국이지 중국은 급할 것 없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 통상 압력을 가하자, 호소카와 일본 총리는 미ㆍ일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노(No)’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 전문가인 해리 하딩 박사(브루킹스연구소)는 외교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논문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번번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시아의 상황이 변했는데도 공공연한 압력이 아직도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아직도 아시아에서 미국식 정치ㆍ경제 모델이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아시아가 가르칠 차례”
 ‘상승하는 아시아, 오만한 서구에 ‘노’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94년 4월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이같은 제목으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새로운 아시아가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점점 번영하고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서구의 설교에 대해 분개하는 아시아이다.’

 그러나 오늘의 아시아는 소극적으로 서양에 대해 ‘노’라고만 하는 아시아는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서양 문명의 한계를 꼬집으면서 동양 문명에서 배울 것은 배우라고 충고까지 하는 아시아이다. 싱가포르 외무부 사무차관인 키쇼르 마부바니씨는 다음가 같이 미국인들에게 충고한다.‘지난 세기, 아니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아시아에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동아시아에서도 한두 가지는 배워야 한다.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아직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사회라고 믿고있기 때문이다.’<워싱턴 쿼털리> 94년 봄호)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구미 사상가들은 전제 정치의 유산이 짙게 남아 있는 아시아에서는 구미와 같은 산업혁명이나 자본주의 발달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산업혁명이나 자본주의는 구미와 같은 법치주의,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가 갖추어진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막스 베버는‘자본주의는 구미 프로테스탄트 사회에서나 가능하지 전통 사회인 아시아에서는 발 붙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키플링도 ‘구미의 원리대로 아시아가 발전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시아는 나이로 봐서는 너무 늙었고 지역적으로도 광대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15년간 아시아 국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은 구미 사상가들이 자본주의 발전의 장애물이라고 혹평한 그 권위주의의 유산을 도구로 삼아 미국과 유럽보다 무려 3~4배나 고도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마부바니씨가 ‘아시아로부터 배우라’고 한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아시아가 이룩한 성장이 미국인들의 신념인 자유 시장이나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같은 구미의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나름의 독특한 사회ㆍ문화적 요소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서양인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동양 문명이 바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하는 데서, 오늘날 서양과 아시아는 문명의 우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갖게 된 자신감의 배경에는 경제적으로 더 이상 서양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짙게 깔려 있다. 먼저 중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몇년간 중국이 연평균 12%대의 고도성장을 이룬 원동력은 바로 중국 밖에 흩어져 있는 5천7백만 화교의 자본이었다. 화교 자본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 자본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경제개발 초기에는 미국이나 서방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제 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이 필수이고, 이것이 또한 서방국가들이 영향력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은 이로부터 자유롭다. 미국이나 서방 국가없이도 최악의 경우 중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만으로 경제성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흔들리는 일본의 위상
 중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이 다급한 상황이다. 인구 12억이라는 거대 시장을 중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희주의권이 무너진 뒤로 구조 조정기를 맞고 있는 서방국가들은 지금 대량 실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뼘의 시장이라도 아쉽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공동 전선이 불가능한 상태다.

 중화경제권의 등장은 동남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지위까지 위축시키고 있다. 일본의 낭패감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미야자와 전 총리의 촌극이 거론되곤 한다. 93년 초 아세안 국가 순방에 오른 미야자와 총리는 ‘일본이 아시아에 투자한 돈은 직ㆍ간접 투자를 합쳐 2백억 달러에 이른다. 아세안 경제의 역동성은 바로 일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것이다’ 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당시 대만이 동남아에 투자한 돈이 1백30억 달러에 달했고, 여기에 홍콩 등 화교경제권의 투자액까지 합치면 일본의 투자액을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미야자와의 발언을 ‘미야자와 독트린’이라고 치켜 세웠으나 결국은 동남아 국가들사이에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 94년 10월호는 홍콩ㆍ대만ㆍ싱가포르 등 화교경제권이 외환보유고나 통상부문에서도 이미 일본을 추월했음을 통계 수치로 보여 주고 있다.

 그동안 중국 투자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던 일본은 중화경제권의 급성장을 목격하면서부터 중국 진출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93년 한해 일본 기업의 중국 진출건수가 79~92년 누계와 맞먹을 정도로 일본은 중국 시장에 빨려들어 가고 있다. 또한 85년 일본의 아시아권 수출은 대미 수출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으나 8년이 지난 94년 현재 대아시아 수출이 대미 수출의 3배, 유럽에 대한 수출의 2.5배에 이르고 있다.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일본’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미스트>94년 4월16일자는 ‘무역ㆍ자본투자에서 미국이나 유럽과의 관계보다 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묶어두었던 냉전 체제가 해체된 것도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만연한 ‘엑소더스 아메리카’의 배경이 되고 있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 냉전 해체 이후 국제 정치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이다. 그는 <포린 어페어즈> 93년 여름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문명들 간의 충돌이 세계정치를 지배할 것이다. 문명 경계선이 바로 미래의 전선이다’라고 지적했다. 헌팅턴 교수가 진짜 걱정한 것은 서양 문명에 대항하는 비서양 문명의 등장, 그 중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명권의 등장이었다. 서양과 문명의 코드를 달리하고 있고, 경제력까지 갖춘 유교 문명의 등장은 서양으로서도 상대하기 벅차기 때문이다. 서양 문명에 적대적인 이슬람 문명이 유교 문명에 가세할 경우 구미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중국에 대해 다소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헌팅턴 교수의 이 논문에 대해 중국이 보인 반응은 일단 매우 긍정적이었다. 미국과 중국간의 최혜국 대우 문제가 매듭지어진 직후인 94년 6월 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헌팅턴 교수의 논문을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옮겨 실으면서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문명 간의 충돌은 금후 세계 정세에서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주석에 대해 국내의 한 전문가는 ‘중국은 경제대국뿐 아니라 앞으로 서양과의 문명 투쟁도 불사한다는 복선을 깔고 있는 것 같다’라고 논평했다.

 실제로 국내의 한 전문가가 입수한 ‘21세기중국의 국정 개황’이라는 중국 정부내 한 비밀문서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은 대만과 1국가 2체제 통일을 완성한다. 이 시기가 되면 중국은 세계 3대 강국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미국 등 서방 국가에 대한) 반패권(反覇權)ㆍ반강권(反强權) 정치를 힘있게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등소평 사망 후 중국이 ‘호랑이가 될 것인가, 종이 호랑이가 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분분한데, 경제성장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만으로는 통치에 한계를 느낀 중국이 유교 문명이나 중화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맞닥뜨린 새로운 ‘문명 충돌’
 국내의 한 전문가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 문명과 함께 살아온 지난 2천년보다 개화기이후 서양문명관에서 살아온 지난 백년이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문명에서 다른 문명으로 이동할 때 뿌리째 이동하는 속성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서양과 같이 살아온 지난 1세기, 특히 광복 이후 50년은 우리가 과거 유교문명권에 속했다는 사실조차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아온 시기였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서양문명권의 일원으로 착각하면서 살아 왔다. 이런 착각 증세는 한국 경제가 중국 및 아시아로 진입하기 시작한 이래 곳곳에서 ‘문명 충돌’현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 약 1천5백개는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 약 17만개에 비하면 극소수이다. 그러나 이 극소수 한국 기업들이 중국전체 외자 기업 노사분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신윤환 교수(서강대ㆍ동남아정치)는 “한국 기업의 진출이 아직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일본 기업의 반 정도만 진출해도 동남아에서 반한 폭동이 일어날까 두렵다”고 말했다. 3년 전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던 필리핀 노동자들이 필리핀 공항에서 한국인들을 집단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야노 교수는 ‘서양 문명으로 이동한 이래 일본이 과거의 동양 문명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들 국가들에 대해 얼마나 잔혹하게 대했는가’라고 지적했는데, 오늘의 한국은 과거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고자 하는 것인가.

 우리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의 몸체가 이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육체와 정신의 분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오늘의 중국과 아시아는 서양 문명에 맞서 동양 문명의 주권 회복을 주장하는 새롭고 낯선 땅이다. 이런 아시아에서 서양인의 얼굴을 한 한국인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광복 50주년. 오늘의 한국은 아시아판 국정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한다. 아시아에서 국제화ㆍ세계화가 안되면 국제화ㆍ세계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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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이 힘들다고? 지방 편의점은 죽기 일보 직전”
국제 2018.09.19 수
중국 ‘현대판 실크로드’ 성패의 갈림길 서다
사회 2018.09.18 화
황교익
LIFE > Health 2018.09.18 화
경기도의료원, 최초로 수술실 CCTV 운용
한반도 2018.09.18 화
‘비핵화’ 지겹도록 말해도 강조해야 하는 이유
포토뉴스 2018.09.18 화
[포토뉴스] 남북정상 첫 무개차 카퍼레이드
사회 2018.09.18 화
[단독] 학교 해외여행, 최근 3년간 수백만원대 高비용만 300건 넘어
LIFE > Culture 2018.09.18 화
[단독]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선 북한 배우·감독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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