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 북 수교 곳곳에 걸림돌
  • 정리.변창섭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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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전문가 피터 헤이즈 특별기고 / 평화협정 체결이 최대 난제

많은 사람이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면 한국은 그만큼 잃는다고 생각한다. 미 · 북한 관계도 이런 식의 제로 섬 게임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과거 미국이 중국과 국교 교섭을 할 때나 베트남과의 교섭 과정을 보아도 완전한 외교 정상화로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물며 법적 걸림돌이 수없이 놓여 있는 미 · 북한 관계 정상화 과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의회가 공화당 지배 아래 놓여 있기는 하지만 미 · 북한 제네바 합의문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주도권은 행정부에 있다. 의회는 미 · 북한 국교 정상화의 속도와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의회가 국교 정상화 문제와 북한의 인권, 미군 실종자, 재래식 무기 감축 등을 연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행정부는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 운영 비용이나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는 데 고분고분하지 않은 의회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간단히 말해 미 · 북한 관계 정상화는 의회의 지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 문제에 관해 거부권을 갖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 집행부는 만장일치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공동의 결정을 무산시킬 수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한국과 미국 의회의 보수층과 유대를 맺고 있는 미국 정부는, 일정 한도 내에서 제네바 합의문 실천이나 미 · 북한 관계 정상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의도하는 만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재래식 무기 감축도 해결해야 할 문제

 앞으로 미 · 북한 관계 정상화 속도를 더디게 할 요인이 있다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협정 체결 문제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남북한 정부에 있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이 한국 정부의 정통성과 실체를 인정하는 등 선제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재래식 무기 감축 문제다. 지난해 말 터진 미군 헬기 추락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 비무장 지대 지역에 항공 관제체제를 설치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과 군사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74년부터 제기해 온 평화협정 체결 문제는 한국으로부터 미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주한 미군 철수 문제는 미 · 북한의 관계가 정상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권한은 전적으로 유엔군 사령관을 겸하는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있다. 만일 미국이 직접 평화협정 협상에 나서 소기의 결과를 얻는다면 유엔 안보리나 유엔 총회에서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평화협정 체결 협상과 관련한 최대 문제는 한국이 맡게 될 역할이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미국은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 · 미연합사 사령관은 협정 위반 사항이나 군축 문제 등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미국은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 · 미연합사 사령관은 협정 위반 사항이나 군축 문제 등 평화협정의 세부 조항들을 실행할 권한을 가진다. 평화협정이 탄생하면 주한 미군의 주둔군 지위는 물론 한국군 운영 지휘 체제를 규율하는 모든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협상 과정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사활을 건 북한이 한국의 참여를 결사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 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면 막무가내로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주한 미군 철수가 한 · 미 안보 관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미국 행정부가 주한 미군을 철수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기존의 정전협정 체제에서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북한과 관계 정상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계속 핵 억지력을 제공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 남북한 모두에 듣기 좋은 말을 해도 무방한 것이 현재의 정전협정 체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은 종전처럼 핵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수사를 쓸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이 재래식 병력을 감축하는 등 구체적 조처를 취할 경우 더 이상 핵우산을 한국에 제공할 수 없다. 미국이 이 길을 택하면 한국은 자체 방위를 통해 북한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평화협정 문제가 본격 거론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 간의 대화, 나아가 91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완전한 실천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리 · 下昌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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