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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돌 맞는 민족문학의 젖줄 ‘創批'

반독재ㆍ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서서 문단 이끌어 … 변혁기의 세계관 제시가 새 과제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0.12.2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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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학의 基地’이며 한국현대사의 일부인 계간 《創作과 批評》이 새해 1월로 창간 25주년을 맞이한다. 66년 1월15일 겨울호에서 비롯된 《創作과 批評》(이하 창비) 25년은 70년대 중반 白樂晴 교수가 주창한 민족문학론을 정점으로 80년대 후반까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그려왔다.

  그 오르막길에서 창비가 얻은 영광은, 식민지 잔영 속에서 눈감고 있던 한국문단의 풍토를 갈아엎은 문학사적 사건이었고,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판매금지와 폐간, 등록취소 그리고 복간으로 점철된 창비의 수난사는, ‘위에서 보기에’ 내리막길이었지만, 한국현대사의 반독재ㆍ민주화투쟁의 맨 앞이었거나 최소한 그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었다.


판금ㆍ폐간ㆍ등록취소로 점철된 수난사

  창비가 이번에 마련하고 있는 25주년 기념특집(91년 봄호) 과 행사들은 ‘뒤늦은 성년식’이다. 20주년이던 86년에는 계간지는 물론이고 출판사 등록마저 당국에 ‘강탈’당한 가사상태였다. 창간 이래 발해인을 거쳐 현재 편집인을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백낙청씨(서울대 영문과교수)는 “통권호수는 25년치가 못되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것 같다”고 그 감회를 털어놓는다.

  백낙청씨는 동료, 후배 문학인들로부터 창비와 동일시되고 있는데, 그의 ‘반생’이 곧 창비의 역사이기 때문일 터이다. 65년,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서울대 전임을 맡고 있던 27세의 젊은 문학도의 눈에 비친 한국문단과 사회는 식민지구각을 벗지 못한 ‘후진국’의 그것이었다. 반공냉전이데올로기에 물든 ‘순수문학’은 문학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탐색 자체를 불온시하기까지 했다. 지식인사회의 지적 불균형은 심각한 지경이었다.

  순수문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한국문학은 한국의 사회현실과 밀착, 남북통일이라는 중대한 소임을 담당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그가 창비 창간호에 실은 권두 평론이었다. 창간사 성격을 띤 이 글은 “구체적인 자유를 위한 구체적 투쟁”을 통해 문학이 강건한 저항력과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통일과 한국사회의 자유화 및 근대화가 문학예술의 역사적 과제라고 한 이 선언적 평론은 4ㆍ19 이후 ‘밀실에서 광장으로’ 이동하던 한국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왔다. 작가 朴泰洵 씨는, ‘근대문학의 비참기’ 속에서 창비의 창간은 “최초의 민족이념 선언이었고 4ㆍ19세대 즉 한글 세대가 일구어낸 새로운 문학공간이었다” 고 평했다. 작가와 작품이 역사적ㆍ사회적 문맥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의 최초의 계간문예지’ 창비는 당초에 문단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69년부터 편집에 참여해온 평론가 廉武雄씨 (영남대 독문과교수)는 초창기부터 창비는 “국학ㆍ국사ㆍ경제학ㆍ민중운동사에 큰 관심을 보였고, 서구의 진보적 문학ㆍ사회과학 이론의 소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영역넓히기’는 70년대 들어 문학사적인 사건으로 인정받은 민족문학론과 무관하지 않았다.

  창간호부터 74년 민족문학론을 주창하던 전후까지 창비는 굵직굵직한 작가, 필자들을 발굴, 발행부수 3만이라는 단단한 기반을 닦아왔다. <분례기>의 방영웅, <쌈지골>의 김춘복, 절필 이후 활동을 재개한 김정한씨의 작품들, <객지>의 황석영씨, <선생과 황태자>의 송 영씨, <장한몽>의 이문구씨 등의 작가와 재데뷔 형식을 거친 신경림, 김광협 김현승 박두진 조태일 정희성 이성부 김남주 등의 시인들이 창비의 지면을 빛냈다. 창비는 문학인 이외의 필자 발굴에도 주력했는데 <베트남전쟁>의 이영희씨, <이조후기의 상업구조의 변화>의 강만길씨, <일제식민지 통치하의 한국농업>의 박현채씨 등 사회과학의 이론적 성과들을 그물질해 올렸던 것이다.

  76년 39호 창간 10주년 특집호를 전후로 창비는 ‘본격적인 시련’을 겪는데, 김지하 시인의 <빈산>을 게재했던 75년 봄호가 판매금지를 당한 것이다. 그 전해 출판등록을 내고 펴낸 창비의 단행본 즉 《신동엽전집》과 조태일씨의 시집《국토》가 판금을 당한 직후였다. ‘민중’이 전후좌우에서 시비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이 무렵은 문학이 여타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던 ‘창비의 황금기’여서, 창비 관계자들 대부분이 민주수호국민협의회 후신인 74년의 ‘국민회의’ 시국 선언과 관련, 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고 문단에서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가 결성되었다. 백교수 등이 학교에서 해직당하고 일부 문인이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74년, 백씨는 그때까지 의견이 분분하던 민족문학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민족적 전통의 일부만을 보존, 전시하고 애매한 낙관론을 고취하는 관변 민족문학론을 비판하면서, 민족문학은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이라고 강조했다. 민족의 위기를 민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그의 민족문학론은 이후 민족ㆍ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발전되어왔다. 70년대 후반 들어서도 창비는 송기숙 송기원 윤홍길 조세희 현기영 김주영 등의 소설들을 게재했고 박봉우 민 영 강은교 양성우 김준태 이시영 정호승 김정환 등 시인들의 시를 담아냈다. 또한 송건호의 <이승만과 김구의 민족노선> 등 역사와 사회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논문 평론을 계속 실었다.

  80년 신군부 등장과 곧이은 ‘광주 5월’은 창비와 《문학과 지성》등을 폐간하고 언론을 ‘통폐합’하는 등 80년대를 ‘기나긴 억압의 터널’로 만들었다. 88년 복간되기 전까지 창비는 두권의 무크지와 민족ㆍ민주화운동으로 부도덕한 권력과 맞섰지만, 85년 무크를 ‘창비 57호’라고 박아 펴냄으로써 출판사 등록을 취소당했고, 86년 들어 그 이름이 반으로 줄어든 (‘비평’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창작사’로 출판 활동을 재개해야 했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80년대 속에서 창비는 무크지 등을 통해 ‘한국자본주의 논쟁’ ‘역사법칙 논쟁’ ‘한국사회계급론 논쟁’ 등 사회과학 이론을 운동권을 앞질러 소개하고 그 쟁점들을 적시에 부각시키며 창비의 건재함을 보여왔다.

  88년 복간된 창비는 홍희담 김영현 김하기 방현석 곽재구 오봉옥 등 신예작가ㆍ시인들의 작품과 사회주의의 위기와 생태계문제 등을 점검하는 좌담과 논문 등으로 문학관과 기본노선의 일관됨을 보여주고 있다.

  6월항쟁을 겪은 민족ㆍ민중문학권은 노동자계급의 급속한 부상 등 사회적 격변 속에서 민족문학론의 새시기를 맞는데, 80년대 후반의 저 뜨거웠던 ‘민족문학주체논쟁’이 그것이었다.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은 소시민적이며 새로운 현실에 대응할 수 없는 세계관이라고 비판과 도전을 받으면서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지만, 그 결과는 백낙청 민족문학론의 ‘진전된 문제의식’과 그 현실적 유효성을 확인시키는 결과에 머물고 말았다.

  창간 초기부터 창비가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70년대의 창비와 《문학과 지성》을 교과서로 삼았던 젊은 평론가들도 창비의 ‘기계적인 인과율 적용’과, 창비이론에 작품을 꿰맞추는 비평 행태 등을 지적하지만, 그 비판들도 창비가 문단과 사회에 끼친 업적을 인정한 뒤에 나오는 발언들이다. 

  세계사적으로는 동구 대변혁의 물결과 대내적으로는 보수대연합, 북방정책과 통일문제 등 일련의 급속한 흐름 속에서 창비를 비롯한 민족ㆍ민중문학 계열은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변혁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관의 제시가 그것이다. 백교수가 지적했듯이 “90년대는 80년대의 단순논리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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