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체제 물리학자 方勵之 박사와의 대화
  • 정리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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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는 잊혀진 역사”

최원영 본지 발행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천문학연구실’. 작고 검소한 이 연구실에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方勵之교수(55)가 머물고 있다. 전신마비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수학 및 이론물리학연구소’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방안에 들어서자 한쪽 끝에 있는 커다란 칠판이 먼저 눈에 띈다. ‘반체제 민주화운동의 기수’에서 천체물리학자로 되돌아온 방교수의 현재를 보여주듯 그 칠판에는 물리학 공식들이 가득 적혀 있다. 미국에서 출간되는 과학월간지 <옴니>에 최근 ‘첫 충고’(第一句話)라는 표제로 그의 글이 실렸다. 그는 왜 천체물리학자가 정치개혁에 흥미를 갖게 되었느냐 하는 물음에 교회와 마찰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받았던 핍박에 자기 처지를 비유했다. ‘중공당국’은 사회주의노선을 강조하는 ‘4항기본원칙’에 벗어나면 우주가 무한한지 유한한지를 따지는 토론조차 배척해왔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케임브리지 시내는 교통체증이 심했다. 미국 전 대통령 레이건씨의 연설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지난해 9월에 우리 <시사저널>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올 7월1일부터 약 일주일간 박사님을 또 우리가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시사저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돼 기쁩니다. 특히 이번 방문이 한국의 발전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 일본을 거쳐서 오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6월23일부터 29일까지 교토에서 천체물리학 국제학술대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한국에서 열리는 또다른 학술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 박사께서는 중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천체물리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연구분야는 어떤 부문입니까?

 천체물리학을 연구합니다. 특히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연구하는 우주학(cosmology)에 관심이 많습니다.

●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은 분야군요.

 그렇지요. 다만 그분은 저보다는 훨씬 더 이론적인 분야지요. 저도 이론은 이론이데, 실험자료에 보다 많이 의존하다고 할까요.

● 방려지 박사 하면 우선 천안문사태를 떠올리게 됩니다. 1년 넘게 미국대사관에 피신하면서 쓰신 책 중에 “중국의 역사는 잊혀진 역사다”라는 구절이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약 10년에 한번씩 몇백만 몇천만명의 중국인이 죽었는데 다 잊혀졌고 처음으로 천안문사태가 서방에 알려졌다. 거기에 천안문사태의 의의가 있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는데, 지금 중국사람들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천안문사태 역시 잊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중국내에서는 국민들이 천안문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생각을 발표할 자유가 없습니다.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지요. 국제적으로도 그 이후 동유럽의 변화, 독일통일, 페르시아만사태 등으로 인해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처음으로 서구인들이 중국 공산정권의 반민주적 본질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모택동주의의  중국체제를 낭만적으로 미화시켰던 서구의 신좌파 지식인들의 관점에도 타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정권치하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참혹한 인권유린, 경제적 궁핍 등의 고통을 당했고, 수천만명이 무참히 죽어갔는데도 어처구니없이 서구 지식인들은 중국정권을 이상주의적 이념으로 미화시켜왔지요.

● 일부에서는 89년 6월에 학생들이 너무 조급하게 민주화를 요구해, 결국 강경파의 득세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학생데모가 있기 전부터 보수주의 강경파들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개혁파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趙紫陽 총서기의 몰락도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요.

● 그렇다면 천안문사태가 없었어도 당시 중국이 이미 반민주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 사태 이후에는 어떻습니까. 권력투쟁도 있었던 것 같은데, 鄧小平 이후의 권력승계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그런 건 추측하기 힘듭니다. 지금보다야 나아지겠지요.

● 박사께서는 중국의 현실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에드거 스노 같은 사람은 毛澤東의 중국 건설 과정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에드거 스노는 모택동이 국민당정권의 부패와 타락을 극복하고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 대해서는 정말 잘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는 과정의 묘사에는 문제가 많았지요.

● 구체적으로는 ….

 (웃으며) 이유는 공산주의체제하의 중국대륙의 현실을 그가 전혀 모르고 썼기 때문입니다. 중국 집권정부의 손님으로 좋은 호텔에 묵으며 잘 먹고 잘 마시며, 정부에서 주는 자료에만 의존해서 쓴 겁니다.

● 북한의 경우 외국방문객들에게 북한실정을 선택하여 보여준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을까요?

 중국도 서구의 방문객이 자류롭게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묘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요. 그러나 에드거 스노의 경우에는 또다른 면도 있어요. 그는 모택동과 그 추종자들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는 실제로 그들과 똑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며 정직하고 실감나게 썼지요. 그는 이들 공산혁명지도자들을 개인적으로 신뢰하고 또 이념적으로 동조하여, 자기도 중국혁명에 동참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으로 기존의 체제를 뒤엎는 일과 그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완전히 다은 종류의 작업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봐야지요.

● 우리 남한도 민주화를 하고 있지만 아직 문제가 많습니다.

 나도 한국에 군사독재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러나 한국은 개인이 노력만 하면 굶주림과 가난을 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지 않았습니까. 최소한 먹을 건 많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북한?중국이 한국과 다른 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것을 최소한으로 나누어 공급하며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그런 비참함은 한국에 없지 않습니까.

● 그건 사실입니다.

 비판과 투쟁은 먹을 걸 많이 만들어내는 것과는 또 다른 분야입니다. 전자가 오히려 더 쉬울 겁니다. 모택동은 부패한 중국의 실정을 비판하고 뒤엎은 혁명가로는 훌륭했지만 중국인민의 배를 채우고 중국인의 우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창달의 조건조성에는 실패했습니다.

● 1997년 이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게 되면 홍콩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까요?

 그럼요, 반세기 이상 중국은 반민주 독재체제로 사회분위기가 완전히 흐려져 있어, 지금의 중국체제와 자유?진취의 기업정신이 팽배한 홍콩의 분위기가 제대로 어울리기가 힘들 겁니다. 이미 매년 수만명의 고도로 훈련된 기능인, 기업가 등 전문인력이 홍콩을 빠져나가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겁니다.

●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홍콩은 19세기말 영국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차압당했던 영토이고,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들이 잃었던 땅을 되찾아 같이 살게 된다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이 분단국가이고 최근 통일문제가 비상한 관심거리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홍콩과 대만도 중국과는 전혀 다른 체제로 분단되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아주 다르지요. 같은 중국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 함께 사아야 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소수라도 떨어져 나가서 잘 사고 번영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지요. 모든 중국인이 공산주의체제 속에 갇혀 정신적?경제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소수의 중국인이라도 좀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잘 살면서 중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발휘해준다면 그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지금 미국내에서 정식으로 학위를 받고 활동하는 물리학자의 20%가 중국계입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 대열에 서있고, 그 숫자와 영향력은 앞으로 더 불어날 겁니다. 만일 이들이 전부 중공체제 속에 갇혀 있었다면 세계사람들이 중국인의 능력을 인정할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 미국에 있는 중국인 과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세계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중국내에서는 어떻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중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우선 중국의 과학자는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문화운동이다 뭐다해서, 지식인들을 지식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라 심지어 무자비하게 죽이기도 하고 온갖 탄압을 가하지 않았습니까. 과학, 특히 기초이론과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중국 같은 독재와 획일성의 사회에서는 못나옵니다. 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기초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소련과학자가 몇 명입니까.

● 앞에서 페르시아만사태가 언급되었는데,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만이 이라크 제재투표에서 기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은 모택동의 영도하에 항상 제3세계편에 서서 서방에 반대하는 외교정책을 고수해왔습니다. 이라크는 비서방 제3세계국가이고, 중국은 모택동에서 시작된 제3세계 지지정책의 전통을 충실히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 한국과 중국은 작년에 정식으로 통상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중국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지지세력이지요. 박사께서는 남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좀더 호전되리라고 보십니까?

 그렇게 될 겁니다. 중국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하니까요.

● 박사님은 남한과 개인적인 접촉이 있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국제학회에서 몇분 잠깐 만난 것 외에는 ….

● 북한과는?

 전혀! 왜냐하면 북한학자들은 국제학회에 얼굴을 비치는 일이 별로 없어 만날 기회가 없지요.

● 91년에는 미국으로 가신다지요?

 그렇습니다. 프린스턴대학 연구소에 갑니다.

● 미국에 가시면 연구에만 전념하실 겁니까. 아니면 민주화운동을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하실 겁니까?

 미국에 도착한 다음 약 한달간은 아마도 인권문제 국제회의 같은 데 초청받아 연설도 하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후에는 중국에서 여건이 되지 않아 못다한 학문연구에 뒤늦게나마 전념하려고 합니다.

● 부인께서도 과학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무리학자입니다.

● 아드님이 둘이 있다구요?

 예, 둘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 여기 케임브리지대학에는 중국학으로 유명한 조셉 니담 교수가 계신데, 중국의 문화와 과학에 대한 그분의 공헌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중국 문화전통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서구사회에 그것을 소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 니담 교수는 천안문사태를 어떻게 보시는지 혹시 말씀나눠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가 골수 공산주의자라는 걸 아십니까. 자기가 젊었을 때 충실했던 이념을 떠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더욱이 에드거 스노와 마찬가지로, 그분도 중국공산당 지도자들로부터 항상 융숭한 대접을 받은 분입니다. 중국의 많은 인민은 먹을 것이 부족해 배를 움켜쥐고 사는데, 중국정권은 케임브리지대학에 기금을 제공하여 니담에게 건물을 지어주었습니다. 바로 로빈슨칼리지에 붙어 있는 중국식 건물 있지 않습니까. 꿈 같은 이상은 위험할 수 있는 겁니다.

● 예, 그렇군요. 유익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다시 만나뵙게 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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