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思考 위협하는 舊思考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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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내 보수 역풍 실감케 한 셰바르드나제 사임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강경 보수파에 의한 ‘독재시대’가 임박했음을 경고한 뒤 전격 사임하면서 빚어진 크렘린의 정정불안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집권 후 최대의 시련에 봉착했다.

 특히 ‘제2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방향을 가늠할 인민대표회의가 열린 지 3일만인 12월20일에 나온 셰바르드나제의 사임 발표 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고르바초프가 보수 강경파에 한발 한발 밀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같은 징후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2월22일 남부 몰다비아 공화국에 대해 10일 이내에 자체 방위군을 해체토록 최후통첩을 보낸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이에 앞서 19일 그는 소련군 참모총장까지 가세한 53인의 보수파 대의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민족분규가 심각한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등 일부 ‘반란공화국’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 대통령이 직접 통치할 것을 제안한 바있다.

 또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이 22일인민대표회의 연설에서 “국가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할지 모른다”며 문제지역에 대한 강경진압이 임박했음을 경고한 것도 보혁갈등과 관련, 심상치 않은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인민대표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벌어진 이같은 사태는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치열하게 전개돼온 보수?개혁파간의 암투가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적나라하게 표면에 드러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페레스트로이카 외교’의 쌍두마차를 이끌어온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사임은 바로 소련사회의 혼란을 빌미로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보수강경파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는 자신의 사임을 “독재시대의 출현에 대한 항의”임을 분명히 하고 “아무다 다가올 독재시대가 어떠하며 어떤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의 이같은 경고는 기본적으론 KGB와 군부를 겨냥하고 있지만 그가 사임연설에서 거명한 “대령 계급장을 단 놈들”인 빅토르 알크스니스 대령과 니콜라이 페트루셴코 대령이 속한 강경보수 집단인 ‘소유즈’(연합)를 특히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보수집단은 2차대전 후 최악의 식량난과 분리주의운동 등 현재 사회 전반에 걸친 정치?경제적 혼란의 책임을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이른바 ‘신사고’정책 탓으로 돌려왔다. 이들은 미국과의 중거리핵전력(INF) 폐기협정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철수, 동유럽의 탈사회주의 열풍에 이어 역사적인 독일통일에 이르기까지 셰바르드나제 시대의 외교적 산물을 “국익의 손상”으로 매도해왔다. 특히 군부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력사용 결의안에 동조한 셰바르드나제를 맹비난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보수세력은 최근 고르바초프에 대해 ‘강권통치’를 써서라도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도록 압력을 넣어왔다.

 보수?개혁파간의 갈등은 이번 인민대표대회에 제출된 신연방조약안과 연방정부개편안을 두고 절정에 달했다. 15개 각 공화국에 대해 자치권은 확대하되 외교?군사?재정권 등은 연방정부에 귀속토록 한 신연방조약에 대해 발트3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화국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15개 공화국 총리가 참석하는 내각회의와 대통령령의 집행을 감독할 국가 최고감찰국의 신성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연방벙부개편안은 급진 개혁파로부터 “지나치게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비난을 샀다.

 정치분석가들은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전격사임이란 ‘충격요법’을 동원한 이유도 바로 이같은 보수파의 반동적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수파에 대한 경도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5년 그루지야 공화국의 공산당 제1서기에서 외무장관으로 발탁된 후 지금까지 미?소화해와 탈냉전시대의 개막에 전위적 역할을 담당해온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물러남으로써 향후 소련외교는 물론 국제질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내적으론 페레스트로이카의 한쪽 날개를 잃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향후 난국재처를 위해 강경책을 쓸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법과 질서의 회복”을 강조하며 1991년을 “인기없지만 필요한 결정들을 취해야 할 해”라고 규정한 데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누가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되든 동?서 신데탕트 시대를 연 소련의 ‘신사고’ 외교정책은 별다른 변화없이 유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소련이 이전의 보수?강경노선으로 회귀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개방하고 너무 많은 것을 벌여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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