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색슨 국가들의 新아시아 ‘경제책략’
  • 호주·김삼오 통신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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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탈출구로 인식 … ‘문화 이해 · 교류’ 내세워


 

 호주와 캐나다는 미국 영국과 같이 앵글로색슨 민족국가이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지만 강대국이 된적도 없고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혈통과 가치관, 문화적 뿌리를 함께하는 이 앵글로색슨 네 나라는 외교분야에서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요즘 이들 나라에서 유행하는 국가적 목표가 있다. 아시아를 향해 더 본격적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불황의 늪을 해쳐가는 길은 고성장을 계속할 아시아시장을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도킨스 호주 재무장관은 상공인 모임에서 “호주는 아시아 경제에 힘입어 불경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젊은 클린턴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한 것은 경제회복을 바라는 국민이 그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가나 보고서>

 문제는 이들이 아시아 진출의 전제로 내거는 공통된 철학이 ‘경제협력은 상호 문화적 이해와 유대에 기반을 두어야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해묵은 이론이라는 데 있다. 최근잇단 영국 미국 저명인사들의 한국 방문은 모두 이런 정책의 일환이다. 호주는 지난 11월7일부터 16일까지 열흘간 외무성의 지원으로 “프로모션 오스트레일리아 92”라는 대규모 행사를 한국에서 벌렸다. 마찬가지 속셈이다.

 문화를 이해하려면 진정 국민이 아프게 느끼는 문제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잣대로도 잴 수 있어야 하는데 앵글로색슨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원초적인 문제에 대해 그들이나 우리나 연구를 하지 않았다. 호주와 한국은 이런 점에서 좋은 연구사례이다. 앵글로색슨 문화를 고집해 온 호주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 이점을 살리지 못한 나라다.

 원자재를 주로 사가는 한국은 호주로 보아 일본 미국 다음가는 제3대 수출시장이다. 그렇지만 호주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낮고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호주의 고위인사가 직책상 한국에 찾아가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일과성이다. 고작 한국 고아를 데려다 키우는 부모 정도가 예외라면 예외다.

 한국정책과 관련하여 호주정부와 학계에 자극을 준 것은 <가나 보고서>이다. 호주국립대학의 로스 가나 교수가 연방정부 위촉으로 1989년말 작성한 것으로 전반적인 아시아 진출 방안 건의 가운데 한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현재 일곱 개 대학에서 2백여명이 정규 · 비정규 과정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것도 이 보고서의 소산이다.

 물론 아직은 초보단계이다. 2~3년간의 한국어 과정만으로도 외국인들이 한국을 잘 이해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호주의 일본어 교육이 좋은 예이다. 호주에서 일본어는 퍽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어 공부를 하는 사람이 한국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도 일본어 관광안내원을 일본에서 직수입하는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대학 3년과 2백시간의 일본어 수업으로는 무역상담이나 관광안내가 안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낮은 한국 지식

 에버레트 로저스는 지식을 인지적 단계, 방법론적 지식, 이론적 지식의 3단계로 나누었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으며, 한국과의 교류가 왜 필요한가 등을 인식하는 것은 첫단계에 속한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제도의식구조가 어떤 것이며 이들과 어떻게 장사를 할 것인가를 터득하는 것이 제2단계라면 이러한 제도의 저변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식이 3단계가 될 것이다. 한국을 알려는 호주인의 지식 수준은 대개 첫 단계에 있다.

 그러나 한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이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 또는 그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교과서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한 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나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고 또 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데이비드 버로의 말대로 “남의 마음속에 내 자신을 집어넣고 볼 수”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통이라는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어 실력이 그정도가 안될 뿐 아니라 상대방을 깊이 알아보려는 의욕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들이 한국 서민의 입장을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좋은 예이다.

 아시아사회에 대한 호주의 지식이 얼마나 피상적인가를 알려주는 사례는 많다. 최근 울롱공대학에서 열린 ‘호주와 아시아’ 학술회를 주최한 이 대학의 애드리안 비카 박사에 따르면 갑자기 일어난 아시아 연구붐이 학자들간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식의 맨탈리티를 가져왔다고 개탄했다. 이 지역에 한두번 여행하고 돌아온 ‘인스턴트’ 전문가들이 아시아 문제 강좌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빗대어 한말이다.

 뉴사우스웰즈대학 부속 아시아-호주 연구소의 존 잉그레손 교수는 호주의 최고경영진과 전문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아시아에 대한 이들의 낮은 인지도에 놀랐다고 한다. 또 이조사에는 아시아 언어를 배우는 호주학생의 70%가 여성이며 가벼운 취미로 하는 것이 주요동기임을 발견했다.

 멜버른 소재 아시아 교육재단이 이 지역 국민학생을 상대로 알아본 아시아의 이미지는 대체로 ‘가난에 찌든 제3세계 사회’라는 것이었다. “호주의 최대 무역상대에 대한 이와 같은 나쁜 시각은 문제”라고 제니 마그리거 재단 이사장은 말한다.

 앵글로 색슨 문화권에는 이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가치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존중, 법 존중 같은 것이 그것이다. 꼭 가치관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들은 모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차대전이후 힘의 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서구와 손잡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험은 서구,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자기네 가치를 알게 모르게 강요한 것이고 우리는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다문화주의는 이상일 뿐”

 아시아인 이민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한 사례이다. 적은 인구와 인구의 노령화가 경제발전의 걸림돌인 호주에는 아시아 이민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큰 진전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실 아시아인의 가치관 생활태도 생김새가 자기네와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캐나다와 함께 다문화주의를 내걸고 있는 호주에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하고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사람 행세를 해도 괜찮다. 그러나 그것은 호주의 주류에 끼는 것을 포기했을 때이다. 만약 그들처럼 좋은 직업을 갖고 중류층에 끼려면 그들처럼 영어를 잘하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네 문화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아직 강하다. 그러므로 이민문제 전문가인 타냐 비렐 교수는 “다문화주의는 이상이지 현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언론은 전형적인 예이다. 호주언론이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아시아를 보도할 때 관심을 쏟는 곳은 주로 인권 안보 학생시위 빈부격차 등이다. 언론의 이같은 시각은 세계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지만 거기에 자기 문화우월주의가 숨어있는 게 문제이다. 호주 주간지 《불리틴》의 평론가 제이스 던은 최근 아시아국가들의 민주화가 왜 호주를 위해 필요한가를 다룬 기사에서 “호주가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비슷한 기준과 인신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키팅 수상은 호주의 아시아와, 아시아로의 문화적 통합을 내건 사람이다. 최근 그가 일본에서 한 발언을 찬양한 <아사히 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 논평위원은 그를 “2차대전과 냉전시대의 구습을 과감히 버린 새 세대의 아시아 지도자”라고 말했다. 키가 크고 얼굴이 흰 키팅은 전형적인 앵글로색슨인이다. 외모로는 아시아인이 될 수 없는 그가 가나 교수가 말하는 바 호주인이면서 아시아를 잘아는 것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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