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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검증안된 ‘마술’ 클린터노믹스

4조달러 재정적자에도 “경기부양”큰소리…‘실험적 정신’에 불안

남유철 기자 ㅣ 승인 2006.04.30(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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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의 중심지 워싱턴에 상주하는 미국 언론사의 고참 기자들은 경험 없는 기자가 새로 발령받아 오면 흔히 이런 충고를 한다. “협잡꾼과 로비스트가 난무하기 때문에 워싱턴에서는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가 더 힘들다. 워싱턴과 미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면 영국 아이들이 만드는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라.” 1843년에 처음 발간된 영국의 시사주간지《이코노미스트》가 제공하는 ‘외국인의 통찰력은’최소한 워싱턴에 상주하는 미국 기자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편이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에서의‘인기’를 다분히 의식했는지 자칫 세계인을 대변하는 듯한 논조로 이렇게 논평했다. “미국은 마침내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다. 자신의 미래를 물론 전세계인의 미래를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는 한 일물에게 맡겨버린 것이다.”물론 그 한 인물이란 지금까지도 자신의 정책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말한다.

 클린턴은 자신이 존경한다는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하게 전문가들의 눈에는 상당히 비논리적이고 공허한 정책대안을 가지고 미국 유권자를 사로잡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떨어지기만 하는 생활수준과 침체경제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은 일단은 변화를 기대하고 클린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이코노미스트》는 클린턴은 아직 한번도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로인해 전세계가 “공포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기중심적인’ 미국인들도 영국의 시사주간지를 읽고서야 클린터노믹스가 주는 위기성을 이해할 것 같다.

 클린턴이 당선되자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수출지향의 아시아 국가들은 민주당의 보호주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통상관계가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통상관계가 극히 악화되고 있는 유럽이 ‘변화를 선택한 미국’을 바라보는 심정은 더욱 착잡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미국경제 재건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클린턴이 제발 미국 경제를 회복시켜 결과적으로 세계경기를 회복시키는 견인차가 돼주기를 바라고 있다. 늘 자국에 국한되는 소국적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는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유럽은 전후에 출생한 베이비 부머세대의 ‘실험 정신’이 혹시나 냉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전환기의 세계경제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 “어쨌든 맡겨보자”

 공화당의 12년 경제실정을 비난하는 데만 집중했던 클린턴의 정책대안을 미국언론들은 사실 철저히 검증하려 들지 않았다. 독일 코머즈은행 마틴 콜하우센 회장은 “클린턴이 주장해온 세금과 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지극히 공허하고 막연한 내용”이라고 말한다.그는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어떻게 일자리 창출과 경기부양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반인에게는 매력있는 공약이었지만 전문가들에게는 모순으로 보이는 클린터노믹스의 딜레마는 클린턴이 일자리창출을 위해 공공부문의 정부지출을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쇠퇴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근본원인인 4조달러에 가까운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호언한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지난 10월1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취임하는 첫날 나는 미국민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클린턴의 정책 보좌관들을 통해 흘러나온 계획을 보면, 그는 고속도로나 통신시설 같은 사회간접자본 사업을 대규모로 벌여 일단은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연간 2백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재원은 연수입 2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와, 경제개발협력기구와의 세금협정을 깨더라도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을 늘려 충당하겠다는 발상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계산방식은 ‘마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유력 경제시사주간지《비즈니스 워크》는 “클린턴이 선거에 승리한 것은 모든 문제에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유권자들을 설득한 그의 ‘정치적 마술’이었다”고 냉정하게 클린턴의 당선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에 마술이란 있을 수 없다.

 카터 행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조언하기도 했던 브루킹스 연구소의 찰스 슐츠 연구위원은 “미국의 딜레마는 당면한 두가지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다른 하나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딜레마의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쉽지 않을 뿐”이라고《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슐츠박사가 말하는 두가지 큰 경제문제란 미국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인한 실업사태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말한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경제침체의 근본원인인 엄청난 재정적자는 더 악화되고, 그렇다고 공화당처럼 이를 시장원리에 맡겨 두는 것은 더 이상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이 아닌 것이다. 클린턴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이른바 ‘양날의 칼’을 쓰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초단기적인 경기부양책조차도 금융시장의 강력한 저지를 받을 공산이 큰 것으로 전문가 들은 보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어떤 입장에서 클린턴을 선택했는가에 관계없이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금 미국 언론의 대체적인 논조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어쨌든 기회를 주어보자는 입장이다. 《뉴스워크》의 한 기자는 “새 대통령에게 일단 기회를 주고 최선의 성과를 바라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세계 국민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경제의 문제는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전례없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의 세계적 불황은 미국경제의 회복 없이는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이 ‘제발 클린턴이 미국경기를 되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도 미국경제의 활성화 없이 일본경제의 회복은 어렵기 때문이다

 

2년간 회복전망 맞은 적 없어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미국 경제는 여전히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지금 미국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말하지 못한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경영자들의 경제에 대한 심리적 전망을 조사해 발표하는 경영자신뢰지수는 계속 내리막 추세이다. 6~9개월 후의 경제 전망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새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청신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3분기 생산성이 2.6% 향상을 보였고, 9월 들어 공장생산주문량도 1.1%가 늘어났다. 건설분야의 투자지출은 9월 들어 지난 5개월 중 가장 높은 1.3%가 증가했다. 필라델피아의 웨스터체스터에있는 지역금융경제연구소 경제학자 마크 잔디씨는 “최악은 끝났다. 클린턴은 행운아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침체(경제성장률이 6개월 이상 하강하는 현상)가 시작된 90년 7월부터 끊임없이 회복전망이 나왔으나 지금 까지 정작 불경기가 반등된 적은 없다. 올해 초 《시사저널》(2월27일자 122호)에 미국경제가 “또 다른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지,초약세 회복의 느린 과정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던 시카고 상업은행 노던 트러스트의 주임경제학자 로버트 디더릭씨는 지금도 “어느 방향으로 경제가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경기 전망으로 명성이 자자한 디더럭씨는 누고도 자신있게 경기변동의 향방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냉전 이후 세계경제의 근본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지금 전통적인 학문으로 훈련받은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쇠퇴는 이미 세계가 변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클린턴이 대변하는 변화를 택했다. 변화의 내용은 아직도 미지수다. 그러나 변화한 세계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가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을 미국은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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