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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린 약물에 포위된 청소년

환각제 2백50여종 시중 유통…손쉽게 구해

오민수 기자 ㅣ 승인 2006.04.30(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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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이 취재 또는 연구 목적으로 특수병동에서 치료중인 청소년 약물중독 환자를 만나려고 할 때, 국민서울정신병원 김경빈 박사는 빠뜨리지 않고 이런 말을 일러준다. 절대로 그들의 ‘약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지 말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라는 것이다. 자칫하면 공들여 치료하던 환자가 또다시 약물의 늪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중독 환자에게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실제로 이 병원에는 치료와 약물복용을 되풀이하며 수없이 특수병동을 들락거리는 청소년 환자가 수두룩하다.

 “3년만에 내 발로 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벌써 세 번째 입원하는 겁니다. 약물은 거의 다 해봤어요. 그중에서도 나에게 제일 맞는 것은 대마초입니다. 대마초를 피우면 감정이 제대로 살거든요. 아무튼 이번에는 꼭 고쳐서 나갈 겁니다.” 소매치기 전과가 있는 장모군(22)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선배의 권유로 본드에 손을 댔다 한번 짜릿한 순간을 맛본 장군은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범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환각상태에서 소매치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드에서 약물로, 또 대마초에서 히로뽕으로, 그의 약물 복용은 전형적인 순서를 밟아갔다. 그렇게 하기를 몇 년, 이제 장군은 국립서울정신병원 특수병동에서 형편없이 망가진 자신의 청춘을 허망하게 돌아보는 신세가 됐다.

중고생 10명중 1명 이상이 약물 경험

 그러나 이 병원 의료진 어느 누구도 퇴원 후 장군이 정상생활로 돌아갈지 장담을 못한다. 습관성과 중독성 때문에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는 약물. 그래서 이미 중독된 청소년들은 “본드건 가스건 한번 맛을 들이면 고속도로를 달리듯 빠른 속도로 빠져든다”고 말한다.

 헛것이 보이고 환청을 경험하는 ‘플래시백증세’(과거 환각제 복용 당시에 경험했던 상황이 환각제를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어나는 정신이상 증세)로 병원을 찾은 정모양(19)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다가 사촌오빠로부터 약물을 배웠다. 음악을 하는 사촌오빠가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신경안정제 러미날을 건네준 게 발단이었다. 강남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정양의 사촌형제 3명은 모두 약물중독 환자인데, 정양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렸다. 정양의 약물복용은 가스나 신경안정제에서 대마초로 발전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부모가 정양을 일본으로 유학보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본에서 끝내 발작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조카 중에 한 아이는 아예 가스통을 입에 물고 삽니다. 그 아이는 의사도 포기했어요. 치료는 엄두도 못내고 죽기만을 기다립니다. 약물 때문에 온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예요.”정양의 어머니는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딸 아이만큼은 내 손으로 살려내겠다”면서 정양을 정신병원에 수용시켰다.

술과 함께 약물 먹다 죽는 경우도

 지금 우리 청소년들은 약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약물을 찾게 만드는 생활 환경과 아무데서고 약물을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 유통구조에 청소년들이 완전 포위되어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고 환상의 세계를 헤매는 것은 더 이상 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대사회연구소가 지난 8월 전국의 청소년 3천6백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남고생 0.4%, 여고생 0.2% 남중생0.2%, 여중생0.2%가 히로뽕을 경험했다. 여중생 5백명 중 1명이 히로뽕을 맞은 것이다. 물론 히로뽕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고생중 약물경험은 각성제 12.4%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5.2%, 흡입제 2.6% 진해거담제 1% 대마초 0.7% 히로뽕 0.3%로 나타났다.

 한국약물남용연구소 주왕기 소장은 “본드 등 흡입제 각성제 신경안정제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환각증세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놓고 볼 때 마약과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청소년 사이에 널리 알려진 약품 중에는 주사기를 이용하는 것도 상당수 있다. 주왕기 소장은 “중독된 청소년 중에는 약물을 술과 함께 먹고 죽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중독 청소년 대부분은 약국에서 구입한 약물을 본드나 가스 등 흡입제 또는 술과 함께 복용한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변모군(14)은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진학하자 본드를 배웠다. 변군은 알약을 먹은 후 본드냄새를 맡는 방법을 즐겼다. “친구들과 어울려 빈집이나 공사장 등에서 했습니다. 저의 환상은 주로 서부의 총잡이들과 한판 겨루는 겁니다. 전자오락의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대단한 경험이었어요”한번은 약물을 복용하고 환상에 쫒겨 2층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다친 적도 있었다. 자기방에서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하다 어머니에게 들킨 변군 역시 지금은 국립서울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마약퇴치운동본부의 약사회 소속도 문제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환각제 종류는 매우 많다. 각성제 5종, 체중조절제 15종, 신경안정제 54종, 수면제 46종, 진해거담제 95종, 진통제 37종이 나돌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약물에 빠져들 수 있는 실정이다. 약물중독 청소년들은 여러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니며 똑같은 증세를 호소해 약을 모으기도 하고, 조금 이력이 붙으면 한 약국과 거래를 터 웃돈을 지불하고 약을 구한다. 물론 본드나 가스 등 흡입제는 완전 무방비 상태다.

 전문가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합법적으로 약물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이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오용 소지가 있는 약품을 팔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정작 마약퇴치국민운동본부는 약사들의 권익단체인 대한약사회에 설치되어있다. 이 단체는 약사회 회원들에게 아무런 강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주왕기 소장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지키라는 격”이라고 꼬집는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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