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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보부’ 대기업

첩보잡기 ‘부나비’ 경쟁

김방희 기자 ㅣ 승인 2006.05.01(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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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選 결과 등에 촉각 곤두…온라인망 통한 수집·관리도

 지난 3·24 총선을 며칠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는 직원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점심시간 외출을 금지한 것이다. 이 예외적인 조치는 안기부의 고육지책이었다. 안기부는 갓 창당한 통일국민당에는 물론 기업 쪽으로 정보가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야당뿐 아니라 대기업의 정보수집가들도 개인적으로 친한 안기부 직원과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하면서 고급정보의 발원지인 안기부를 취재해왔다.

 총선 무렵 대기업, 특히 국민당과 현대그룹의 안기부에 대한 ‘역 취재’는 안기부 내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안기부는 고의적으로 선거관련 정보를 국민당이나 현대그룹에 흘려준 ‘현대맨’을 색출해내느라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그후 안기부에서 10여년 간 근무해온 한 베테랑 정보전문가가 국민당 사무처요원으로 옮겨감으로써 숨막히는 ‘첩보전’은 막을 내렸다.

수집한 정보‘ 정치권 줄대기’에도 활용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은 언론사를 무색케 하는 취재경쟁을 통해 총선 결과를 점쳤다. 특히 그들은 창당한 지 얼마 안된 국민당이 의석을 얼마나 얻을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민당이 정치적으로 얼마만한 목소리를 내느냐 하는 점이 자신들의 앞으로의 입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난 삼성그룹은 애당초 국민당이 지역구에서 12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다 총선이 임박해지면서 대구지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직원을 급파해 이 지역의 민심 변화를 현장에서 읽었다. 총선 직전에 삼성그룹이 예상한 국민당 의석 수는 16석으로 불어났다. 비록 실제 지역구 의석수인 24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국민당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보기관보다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정보 팀을 가동하고 있는 20대 그룹은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이처럼 14대 총선 결과를 점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은 이제 14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많은 대기업이 각 계열사의 지사나 영업망을 통해 민심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대선 결과에 대한 예측내용은 중장기 경영 계획안에 반영된다. 일부 대기업은 정치권과 줄을 대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대기업이 정치관련 정보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언론에 재갈이 물려있던 5공화국에서는 대기업이 정치관련 정보에 목말라했다. 기업의 생사가 정권의 손에 달려 있던 시기였다. 6공화국 들어서 언론이 소화할 수 있는 뉴스의 범위가 훨씬 넓어짐에 따라 대기업의 욕구는 점차 약화됐다. 총선과 대선이 잇달아 있는 올해만은 예외이다.

 5공화국 당시 대기업에서 정보수집을 담당한 사람들은 주로 해직언론인 출신이었다. 각 대기업의 기획조정실과 같은, 그룹 통괄조직에 근무하던 이들은 주로 사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상부에 보고했다.

 8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대기업에는 정보관리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전담자도 생겨나게 된다. 80년대 초반 삼성물산 정보관리자로 있다가 83년에 ‘정보전략연구소’와 ‘산업정보학교’를 설립한 尹恩基씨(현 정보전략연구소 소장)는 체계적인 정보관리 업무를 뿌리내린 1세대에 속한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대기업은 비경영 정보나 경영 정보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최근 대기업 정보수집 능력은 그 당시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보의 유통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는 정보수집가가 보고 들은 것을 메모해서 상부에 올리는 일에 주력한 데 반해 요즘은 주로 사내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해 정보를 집계하고 보고한다. 정보수집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최근 들어 ‘정보의 온라인화’ 작업이 대기업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도 그러한 사실과 관련이 깊다. 정보의 온라인화란 계열사 안의 각 부서에서 수집된 정보가 입력되면, 필요로 하는 회사 관계자들이 컴퓨터로 이를 즉시 찾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열사의 온라인망이 주로 이용된다. 신용카드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삼성그룹은 정보수집·검색 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 계열사의 각 부서원은 수집한 정보를 항목별로 세분해 ‘토픽스(TOPICS)'라는 사내 전산망에 입력시킨다. 모든 사원이 의무적으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력 정보량은 해당 부서의 실적을 평가할 때 반영된다. 정보를 보려는 사람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비밀번호에는 직급표시가 들어 있다.

 이런 온라인 정보망은 90년께 증권회사가 가장 먼저 개발해 사용했다. 그러나 이 전산망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주로 주식시황 등 증권시장 관련정보이고, 가입자 누구에게는 제공되는 개방적인 것이어서 최근에 와서는 의미가 많이 퇴색한 상태이다. 삼성그룹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은 온라인 정보망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단순히 독자적인 전산망을 건설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기존 전산망을 활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정보 전산망을 따로 수립하는 데 5백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게 된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올해 2월께 계열사의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하면서 삼성과 비슷한 온라인망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온라인 정보망 외에도 전담 부서를 두고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수집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는 경영개발실이다. 자료 조사를 담당하는 인력을 빼면 15명 내외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의 취재방식을 원용해 내부적으로 출입처를 정해서 취재를 한다.

 현대그룹은 국민당 창당과 더불어 관련업무 종사자들이 상당수 당으로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문화실 내에 정보수집 요원 2명이 남아 있다. 대신 각 계열사 기획실을 중심으로 정보탐지 능력을 강화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자기 본업 외에 수집한 정보를 사내 온라인 정보망에 입력하는 역할을 부수적으로 담당하는 인원을 합치면 정보관리자는 3백여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인물정보·산업정책에도 각별 관심

 럭키금성그룹과 선경그룹은 경제연구소와 경영기획실 내에 정보수집을 전담하는 인원이 각각 2명씩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경그룹은 계열사별 정보수집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곳이란 평가를 받는다. 대우그룹은 전담요원을 두지 않고 기획조정실 홍보팀이 겸업하고 있다.

 5대 재벌을 제외한 20대 재벌까지는 정보관리 전담요원을 따로 두고 있지 않지만 정보수집 업무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증권업·자동차산업 관련 계열사는 정보에 더욱 민감한 편이다. 대기업의 이런 정보욕구에 편승해 이들에게 정보를 파는 기업도 성업중이다. 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주로 신문기사를 요약해서 판매하는데 부수적으로 대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입수해 팔기도 한다.

 이들이 수집하는 정보는 정치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기업 정보관리자들의 말에 따르면 평상시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는 주요인물의 동정과 관련한 것이다. 정치·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일수록 정보의 가치는 더 커진다. 대기업이 이 정보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에 관한 정보를 통해 자사가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정부내 주요인물의 출신지·학력·성향 등에 관한 정보를 잘 갖추고 있다면 해당 그룹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인물과 통할 수 있는 ‘끈’을 쉽게 찾아 활용할 수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유가 회원제로 운영되는 ‘조인스(JOINS)'라는 인물관련 정보망이 있지만 아직 그다지 많은 인물 정보를 축적해놓지는 못했다.

 그외에 대기업 정보팀이 관심을 쏟는 정보는 경제부처의 산업정책에 관한 것이다. 산업정책은 대부분 기업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대기업은 경제부처 내에서 이상한 낌새만 보여도 관련자료를 추적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대기업 정보팀이 수집한 이런 정보는 흔히 정보페이퍼라고 불리는 정세분석보고서 형태로 직속 상사와 회장에게 보고된다. 대기업회장이 직접 취재지시를 내린 경우에는 수시로 보고서를 올려야 하지만 대개는 주간 단위로 이루어진다.

 대다수 대기업 정보관리자는 스스로 수집한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가까운 것이 많다는 점을 자인한다. 이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회장의 말초적 호기심이나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나 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한 첩보를 향해 몸을 날리는 대기업들의 ‘부나비 날개짓’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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