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보산업의 초라한 나들이
  • 강태진 (한컴퓨터주식회사 대표)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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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일랜드 수도 방콕에서 열린 ‘제10차 아시아·대양주컴퓨터산업조직(ASOCIO) 총회(12월7~8일)’에 참가했었다. 이 조직은 1984년 창립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12개국의 정보산업협회 모임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대표로 참가하고 있는데 정보산업연합회 회장이자 삼보컴퓨터 회장인 이용태 박사가 89년부터 90년까지 회장을 맡은 바 있다.

 대표단의 규모는 나라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1명으로 구성된 초미니 대표단을 파견한 반면 대만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는 20여명, 일본은 30명에 가까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우리나라는 총 5명 중 3명이 발표를 하여 발표자 수는 많은 편에 들었으나 대표단 규모가 우리 나라의 정보산업 규모를 직접 나타내는 것 같아 착잡한 느낌을 갖게 했다. 대표단 구성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는데 싱가포르와 대만은 비교적 젊은 엔지니어들이 많이 참가했고 일본은 50~60대의 대기업 대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일본은 참가자 대부분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데도 유일하게 동시통역사 3명을 회의장에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이 동시통역사들은 회의 전날 발표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발표내용을 확인했는데, 나를 담당한 통역관이 갖고 있던 내 발표 원고는 빨간 펜으로 빽빽하게 노트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들의 전문성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언제나 저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가 부러운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인도도 소프트웨어를 미국·유럽에 수출하는데…”

 회의 중 가장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 대표들과 접촉한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금도금한 캥거루 핀을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어주며 각자 속한 회사의 상품을 홍보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 회사와 협력방안을 찾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대기업 임원도 있었지만 종업원 20~30명의 중소기업 대표도 적지 않았다. 싱가포르나 대만같이 내수시장이 워낙 작아 밖으로 뻗을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가 국제시장을 무대로 뛰고 있을 때 우리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외국 소프트웨어 수입에만 급급하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정보서비스 분야에서 동남아를 상대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비하여 인도는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 공급해 막대한 외화를 벌고 있었다. 인도는 고급인력에 낮은 임금을 주고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이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장점을 이용해 미국의 큰 컴퓨터 회사들의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했다. 인공위성 등 첨단통신장비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기 때문에 미국 회사들 입장에서는 이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들이 미국내 다른 주에 있는 것이나 다를 것 없는 셈이다.

 지적소유권 문제는 수출하는 소프트웨어보다 수입하는 소프트웨어가 많은 아시아·대양주컴퓨터산업조직 회원국들이 대부분 부담을 느끼고 있는 문제이다. 말레이시아 대표의 발표는 그동안 미국에게 끌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해 보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발표 요지는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힘을 합해 대처하자는 것이었는데, 미국 소프트웨어의 90%가 무단 복제돼 쓰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이 복제율을 우리가 어느 정도로 낮추어야 되는 것인지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도 50~60% 정도의 무단복제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만 나무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올라가는 로열티 때문에 수출하는 하드웨어의 생산성이 점차 악화되는 이 시점에 특정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미국의 독점금지법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되었다.

 회의 마지막날 만찬 후 있었던 여흥 시간에는 각국 대표가 나와 노래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대만 대표단장은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사람 모두 나오라며 옵서버로 참석한 중국 대표들을 불러 올렸다. 그들은 손을 잡고 중국 민요를 한 목소리로 신나게 불렀다. 한국 차례가 되어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한국사람 모두 올라오시오“하고 외쳐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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