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전가의 보도’에 베이는가
  • 김당 기자 ()
  • 승인 199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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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남매간첩 사건 진상 발표… 관련 수사관 ‘보안법 위반’ 고발 예정

드디어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세중)가 국가안전기획부를 상대로 칼을 뽑았다. 이로써 그동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고영구)이 안기부를 상대로 공방전을 벌여온 이른바 남매간첩 사건 조작 및 프락치 공작 시비(<시사저널> 제211· 255· 274호 참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민 정부 들어 첫 간첩 사건이자 조작 시비가 인 이 사건을 조사할 수 있도록 안기부장에 협조 공문을 두 차례 보낸 대한변협은, 1월26일 변호사회관 서초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조사 활동을 벌여온 대한변협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최영도 변호사)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진상조사위가 이날 조작 근거로 제시한 열 가지 증거 자료는 다음과 같다.

 

대한변협 “국정 조사권 발동” 요구

①안기부 공작원 백흥용씨가 촬영한 안기부 직원 김성훈· 윤동한씨의 모습과 대화 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신임 권영해 안기부장도 지난 1월 국회 정보위에서 백씨가 안기부 공작원이었으며 비디오에 찍힌 두 수사관이 직원임을 시인). ②민변의 이기욱· 이덕우 변호사가 베를린에서 촬영한 백씨와의 대담 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 ③백씨의 프락치 활동 내용을 기록한 자필 진술서 3통. ④남매간첩 사건의 당사자로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은주씨의 진술. ⑤백씨와 함게 영화운동을 한 박상희씨의 진술. ⑥이기욱· 이덕우 변호사의 진술. ⑦민변의 ‘안기부 간첩 공작수사 진상발표 기자회견’ 보도자료. ⑧<시사저널>(95.1.26)이 보도한 안기부장의 국회 보고 관련 기사. ⑨서울지방변호사가 펴내는 <시민과 변호사>(94.12)에 실린 안기부의 조작 간첩사건 양심선언 조사보고서. <한겨레 21>(95.1.26)의 백씨 기자회견 관련 기사.

이같은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진상조사위는 “김삼석· 김은주 남매간첩 사건은 93년 9월 정기국회에 안기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려는 안기부법 개정안이 상정돼 안기부 권한과 위상이 크게 축소되는 시기에 맞추어 안기부가 터뜨린 사건이고, 이를 통해 안기부의 존재 의의를 부각하고 권한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백흥용씨를 프락치로 삼아 공작을 하고 사건을 조작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아울러 진상조사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안기부의 공작 수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국가보안법 남용의 위험에 방비 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차제에 공작 수사와 사건 조작의 개연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안기부의 수사권 존폐 문제와, 남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시비가 그치지 않는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를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변협은 정부에 대해 △현재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백흥용씨의 안전한 귀국과 신분 보장에 관해 조처할 것 △안기부장에게 사건 진상을 국민 앞에 솔직히 밝히게 하고 관계자들을 문책할 것 △검찰총장에게 간첩 공작수사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속한 수사 개시를 촉구할 것 등을 요구했다. 또 국회에 대해서는 이미 민변의 요청대로 국정 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대한변협은 언론기관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대한변협은 회견문에서 지난해 11월9일 민변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공동으로 안기부 간첩공작수사 진상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회견 내용을 취재한 언론 대부분이 이를 보도하지 않은 점을 들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성실 보도와 여론 환기 등 사회 목탁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변협은 또 이같은 사건 진상발표와 함께 안기부의 간첩 공작수사와 관련한 안기부 직원 김성훈· 윤동한 씨 등을 국가보안법 제12조 2항의 ‘직권을 남용해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증거를 날조한’ 혐의와 형법 제124· 125조의 ‘직권을 남용해 체포· 감금하고 폭행·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 사건이 다른 역대 조작 시비 사건처럼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국보법이라는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보기만 했지 한번도 베인 적이 없는 안기부가 ‘국보’ 앞에 서게 된 당황스런 국면을 어떻게 피해갈지 궁금하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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