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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흉내 못낼 선율로 돌아온 김창완

진정한 ‘데뷔 앨범’ <솔로 신보> 발표… 록의 정신으로 ‘재무장’

강헌(음악 평론가) ㅣ | 승인 1995.02.1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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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기타를 메고 김창완이 돌아온다. 91년 <Adagio>라는 제목을 붙인 ‘산울림’의 열두 번째 정규 앨범 이후로 4년 만의 해후이며, 77년 산울림이라는 밴드로 나타난 지 18년이 되는 시점이다.

그가 한국의 대중 음악사에 남긴 공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유신 정권의 탄압이 겨울 바람의 끝처럼 매서울 때 천편일률적인 음향의 늪에 한없이 침몰하던 한국 대중 음악을 구원해낸 것은 세 형제로 이루어진 산울림이었고, 그는 이 범선의 선장이었다. 그는 산울림을 통해 신중현이 수행했던 한국적 록 음악을 세운다는 일대 명제를 또 다른 갈래에서 독창적으로 해석했으며, 산울림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솔로 혹은 ‘꾸러기들’이라는 보컬 그룹으로) 70년대에서 이미 명맥이 가물가물해진 포크의 부흥을 꾀했다. 그리고 <산할아버지>를 위시한 동요집 3장을 통해 대중 음악가에 의한 동요의 가능성을 현실화했고, 대중 음악의 본류를 이루는 연가(戀歌)에 신선한 감수성을 수혈하는 한편,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음악 작업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물을 선사했다.

불혹의 고개를 넘기는 시점에서 이 모든 성과를 합친 것만큼이나 가족, 혹은 가정의 의미를 성찰하는 이번의 신작은 극적이다. 발라드와 댄스 뮤직이라는 주류 대중 음악(pop)의 거대한 문법 체계에 대항하여 일군의 젊은 대중 음악가들, 가령 신해철이 주도하는 ‘넥스트’와 강산에,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에 의해 록의 반격이 시작되는 시점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김창완이 내놓은 음악 언어가 바로 록의 정신으로 다시 무장했기 때문이다.

강인하지는 않지만 정교하게 새겨지는 심벌의 비트를 배경으로 기타와 건반, 그리고 보컬 하모니의 머리곳 <가이아(GAIA)>는 그가 어디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며, 머리 곡을 이어받은 <연락 좀 해줘>와 <追伸>은 블루스를 먼 근원으로 하는 록 음악의 다양한 문법을 바탕으로 그가 지금, 여기에서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출소년’의 시각으로 포착해 낸다.

 

록과 모던 포크 발전적으로 융합

<연락 좀 해줘>에서 절규하는 대로 어쩌면 그에게 록이라는 화두는 ‘가지 말라 했던 길을 나섰던 날’ 길가에서 본 ‘아름다운 꽃’이며 ‘열지 말라 했던 문’을 여는 순간 고개를 내민 ‘향기로운 냄새’인 것이다. 이 ‘냄새’는 타령조의 장단이 스며든 <땅강아지>에서나, 아들 세대에 대한 따뜻한 서신인 <걱정마라>와 <꼬리 이야기>로 진전해 나갔는데, <어머니가 참 좋다>를 위시해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초기 산울림의 ‘울림’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77년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로 한국 대중 음악의 새로운 대안이 되었던 산울림은, 60년대 후반부터 상륙하여 대학가와 다운탄운 음악실을 점령했던 록과 모던 포크라는 두 줄기를 발전적으로 융합해 당시 신세대의 감수성을 단숨에 반영했다. 이 그룹이 모습을 드러낼 때 시작된 대학가요제의 제1회 대상 수상곡이 바로 산울림이 만들어 그의 후배들이 부른 <나 어떻게>라는 사실은(이 노래는 이듬해 나온 이들의 2집에 수록되어 있다), 70년대 후반에 젊은 지성층의 음악적 향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일러주기에 충분하다.

기타(김창완)와 베이스(김창훈), 그리고 드럼(김창익)이라는 가장 단촐하면서도 원형질적인 밴드 형태를 유지하면서,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며 숨 돌리지 않고 계속하여 걸작을 토해냄으로써 유신 말 어두운 시대의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그것은 78년 초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의 대표 곡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장장 3분25초에 이르는 인트로 연주와, 같은 해에 나온 3집의 뒷면 모두를 채운 <그대는 이미 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특히 리드 보컬리스트인 형의 정감 있는 목소리와 대비되는 김창훈의 위악적(僞惡的)인 보컬 톤이 종횡무진하는 3집의 <황무지>는 이들의 초기 시대를 가로지르는 걸작이다.

 

80년대 10대에겐 달콤한 음악 송신자

80년대가 열리면서 산울림의 음은 발라드의 숲으로 진입한다. 60년대 이후 구미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록 음악이 값싼 디스코 리듬의 인해전술에 자신의 영도력을 넘겨주는 때에, 그리고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송출되면서 대중 음악 시장을 10대가 본격 장악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러, 개성적인 요소와 대중적인 요소의 조화를 기조로 삼아온 이 밴드가 포섭한 영역은, 바로 주류의 일익인 발라드였다. 80년에 발표한 제6집 뒷면 전체는 바로 이 장르의 보고이며, 아마도 80년대의 10대에게 산울림이 달콤한 음악의 송신자로 기억되게 한 기폭제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로 시작하여 <빨간 풍선>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찻잔>으로 연거푸 이어지는 이 발라드들의 서정은, 사랑으로 범벅되는 80년대의 과잉 정조가 아니라 70년대의 수채화적인 정갈함이었다는 점이, 한번 반짝하고 뇌리에서 사라지는 고만고만한 발라드 대중 음악가들과 이들을 구별시켜 주는 힘이다. 이 서정시들의 행진은 7집의 <독백> <하얀 달> <청춘>과 8집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회상> 등으로 이어졌다. 이 사실은 동시에 산울림으로 하여금 구성원들의 음악적 조화를 강령으로 삼는 밴드의 성격을 희석시키며 싱어송 라이터 김창완을 중심으로 1인 체제로 이행하게 하는 변동을 가져왔다.

동요 앨범 3장을 포함하여 정규 앨범 10장을 몰아쳤던 산울림의 발검음은 84년 그들의 열번째 앨범을 기점으로 서서히 잦아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창완은 신인들로 구성된 ‘꾸러기들’이라는 통기타 포크 그룹을 일구어냄으로써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다. 70년대 후반 앨범 2장을 끝으로 뿔뿔이 흩어진 4인조 ‘해바라기’와 나동민· 이주원 같은 포크 음악인들이 비상설적으로 규합하는 그룹 ‘따로 또 같이’ 정도를 제외하면, 급격히 세력은 위축된 통기타 계열 음악의 부흥에 김창완은 뛰어든 것이다.

비록 85년에 단 한 장의 앨범을 내는 것으로 이 그룹의 활동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이 그룹을 통해 김창완이 남긴 흔적은 만만치 않다. 나중에 솔로로 성공한 최성수와 임지훈 등이 주력이었던 이 그룹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소극장 장기 공연을 수행하며 비주류 영역의(나중에 언더 그라운드라고 불리게 되는) 자가 발전을 시작한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로 시작하는 이 <꾸러기들의 굴뚝 여행> 앨범은 90년대에 ‘언플러그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복고바람이 몰아칠 때의 먼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산울림의 일원으로서건 솔로로서건 영화음악가로서건(<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김창완이 한국 대중 음악사에 아로새긴 미덕은 이미지의 선연함이다. 그것은 헛된 자본주의 문화 산업의 환상에 자신을 저당잡히지 않았을 때만 가능한 대중 예술가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가 91년의 전작에서 ‘어머니 아버지는 전란을 겪으셨고 나의 형은 젖이 모자라 죽었네/그렇게 불안하게 나는 나의 행복을 본다’고 쓸쓸히 독백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 어떤 젊은 후계자도 흉내내지 못할 아름다움과 힘이 겹쳐진 선율들을 동반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의 사실상 데뷔 앨범일지 모르는 이 신작의 마지막 곡 <점심시간 칼국수집>의 정취가 경쾌하게 울린다.


- 姜 憲(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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