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연꽃을 기대한다
  • 박순철 (편집국장 대우)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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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타락 선거는 승자의 ‘전리품’이 너무 큰 한국 정치구조가 지닌 추악함을 드러낸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이 혐오하는 직업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상인도 백안시되는 직업이었다. 나라에 따라서는 배우 가수 무희가 ‘부도덕한’ 직업으로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는 ‘더러운 직업’이었다고 영국의 저술가 알렉스 콤포트는 주장한다. 뉴욕의 정치단체인 태머니 홀의 부정부패 사건 이후 미국에서도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 한때 “정직한 사람은 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한번쯤 재고해본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정치인에 대한 짓궂은 농담도 드물지 않다.

 널리 알려진 농담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의사와 물리학자와 정치인이 누구의 직업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냐를 놓고 말씨름을 벌였다. 의사는 “내 직업이 가장 오래됐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의료행위였으니까”라고 선수쳤다. 그러자 물리학자가 “하지만 그 일이 있기 전에 태초의 혼돈으로부터 질서가 태어난 창세기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네. 그건 물리학의 영역이지”라고 응수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 전에 누군가가 혼돈을 만들어냈어야 하지 않는가.”

출세를 위한 致富와 치부 위한 출세 동기가 상승작용
 14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는 후보자들이 돈이나 선물을 돌리고 향응을 베풀었다는 타락선거 관련 기사들이 매일 어지럽다. 정치지도자들도 서로 날카로운 비난을 주고받는다. 그 비난이 사실이면 사실인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들에 대해 매우 민망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딱한 딜레머가 생긴다. 아뭏든 요즘은 정치인이 혼돈을 창조해냈다는 농담이 실감나는 시절이다.

 출마자들은 이번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써대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평균 20억원설에 심지어 50억을 쓰면 당선되고 40억을 쓰면 낙선된다는 ‘5당4락설’도 보도된다. 국회의원의 공식적인 수입은 큰 씀씀이에 비해서는 그리 많지 않다. 세비와 입법활동비 등을 합쳐도 월 평균 4백만원 정도이다. 반면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절약해도 월 1천만원은 든다고 지난해 어느 야당의원이 공개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선거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보통 월급장이로는 일생동안 벌어도 못 모을 큰 돈을 ‘선거’라는 투기에 쏟아 넣는가 하는 순진한 의문이 생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과 영광에 대한 욕망이다. 영광을 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인간의 타고난 권력욕 때문인가. 얼마 전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성균관대 李甲燮 교수는 한국 정치인의 형태를 이해하는 데 보다 설득력 있는 분석틀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출세를 위한 致富동기와 치부를 위한 출세동기가 엉켜 상승작용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茶山 丁若鏞의 “民은 흙으로 밭을 삼는데 吏胥는 민으로 밭을 삼는다”는 말을 인용, 출세가 경제적 수단이 되어 온 역사적 전통을 상기시켰다.

이전투구 속에서도 깨끗한 정치인이 꽃피기를
 이렇게 보면 산국에서 정치는 권력과 명예와 돈을 함께 쥘 수 있는 일석삼조의 활동인 것이다. 2년 내내 지역구 내의 온갖 궂은 일을 찾아다니며 기반을 다지는 정성, 당선이 유리한 정당의 공천을 따려는 필사적인 노력, 법망을 피해가면서까지 돈과 인격 등 모든 것을 거는 선거운동의 절박성이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과열 타락선거의 병리는 승자의 전리품이 너무 큰 한국 정치구조 자체가 지닌 고질의 병든 뿌리가 잠시 땅 위로 그 추악한 일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또 정치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정치판 ‘그레샴 법칙’의 처절한 싸움터에서 악순환의 확대재 생산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정치는 ‘정의의 공동체’를 실현시키는 수단이었다. 이런 숭고한 이상은 오늘날이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에게 누구보다도 고결한 인격과 희생의 용기, 경륜과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아마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은 이런 큰 기대가 정치의 부패한 현실이라는 길고 추한 그림자의 밑그림에 의해 더욱 짙게 대조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1월 13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점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사에 응한 국회의원들은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묻는 질문에 대해 압도적 다수가 ‘도덕성’이라고 대답했다. 청렴 정직 성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수응답이었지만 응답자의 77%나 되었다. 그 다음이 사명감(16%), 희생과 양보의 순이었고 리더십과 자금동원력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극소수에 그쳤다. 정치인들 스스로 도덕성에 대해 이처럼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현실의 심각한 타락상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와 함께 다소나마 ‘정화된 내일’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현상은 아닐까.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기적처럼 이전투구의 선거판 속에서 깨끗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으로 꽃피는 기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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