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많이 주고 일도 많이 시켜라”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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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총’ 황정현 부회장, 고임금시대 돌파할 <사장의 임금철학> 펴내


 

“사장은 어떻게 하면 종업원에게 고임금을 줄 것인가 하는 경영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문제는 고임금이 아니라 생산성이다.” 이것은 노동계 목소리가 아니다. 경영자 입장을 대변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黃正顯 부회장이 최근 자신의 저서 <사장의 임금철학>에서 내놓은 고임금론이다. 고임금시대는 고임금·고생산성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은 과거 저임금을 바탕으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으나 80년대 후반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미 고임금시대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임금을 깎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므로 사장의 임금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황부회장의 주장이다.

흔히 임금이 싸다 비싸다 하고 말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가령 시간당 1천5백원을 받는 단순기술 인력이 1개에 2백원 하는 부품을 10개 생산하고, 시간당 2천원을 받는 고급기술 인력이 같은 부품을 15개 생산한다고 하자. 이때 임금단위당 생산액은 단순기술 인력의 경우 1.3원(2백원×10개÷1천5백원)인 반면 고급기술 인력은 1.5원(2백원×15개÷2천원)이다. 임금효율 측면에서 단순기술 인력보다 고급기술 인력의 임금이 더 싼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고임금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고임금을 지불하더라도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고급인력에게 일할 맛을 불어넣어줄 공정한 임금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임금이라는 개념은 매우 주관적이다. 황부회장은 “산업이 고도화할수록 연공서열 중심에서 능력·직무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람마다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파악하므로 경영자는 종업원의 생각을 정확히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남이 받는 만큼 받으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균등성·equality). 그런가 하면 노력에 정비례하는 임금이 공정한 임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공평성·equity). 가령 하루에 10시간 일한 사람이나 5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균등성이라는 개념에는 충실할지 모르지만 남보다 2배 더 일한 사람에게는 공평하지 못한 임금체계로 이해될 것이다. 한편 화투놀이에서 그러하듯 이긴 사람이 다 차지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최저입찰제에서 낮은 가격을 쓴 사람이 모든 물량을 독차지한다고 해서 불공정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황부회장은 “우리의 경영자나 임금 관리자가 어떤 임금체계가 자기 회사에 맞는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과거부터 있어왔고 남들도 다 하니까 하는 생각에서 맹목적으로 채택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92년 실시한 경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체계는 연공서열 임금체계에 의존해왔다(연공급 92.3%, 직무급 4.8%,직능급 2.9%). 연공서열 위주의 임금체계는 기술력이 낮은 저임금시대에는 유효한 임금체계지만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고임금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많이 받는 임금체계는 나이는 적더라도 생산성이 월등한 고급인력에게 불공정한 임금체계로 인식된다.

 

‘임금 관리’는 근로자의 ‘사기 관리’

경영자는 “임금 관리는 곧 인건비 절약이다”라는 고정관념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임금시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총인건비의 규모이지 개별 근로자의 임금수준이 아니다. 월평균 임금이 50만원인 근로자 1백명과 75만원인 근로자 50명의 생산성이 같다면 고임금 근로자 50명으로 소수정예화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근로자는 임금이 50% 인상되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고 회사는 인건비 지출을 월 5천만원에서 3천7백50만원으로 25%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소수정예화에 따른 총액관리는 감원 우려를 낳는다. 이에 대해 황부회장은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소수정예주의로 생산성을 높이면 이윤이 커져 기업은 확대재생산이 가능하고 새로운 고용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고용 전반의 문제를 임금체계만 가지고 얘기할 수 없으므로 다른 분야에서도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비용이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소득이다. 그렇다고 임금 관리를 ‘돈관리’라고만 파악해서는 곤란하다. 고임금시대의 임금 관리는 근로자에게 일할 의욕을 불어넣는 사기 관리가 돼야 하지만 아직 많은 경영자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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