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추진해야 할 4대 경제정책
  • 강철규 (서울시립대·경제학) ()
  • 승인 1992.12.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 2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역사적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새 정부는 특히 경제분야에서 새로운 안목과 현실인식을 가지고 새 한국을 만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첫째, 앞으로 5년 간은 물론 그 이후까지를 연결하는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제시해야 한다. 제6공화국에서 보듯이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돼 국민이 입는 경제적 손실은 매우 크다. 일관성 결여로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경제 주체인 기업은 투자의 우선 순위를 정하지 못했고, 가계가 저축 대신 순간소비에 쏠린 일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위상을 높이지 않고서는, 21세기의 선진화를 제대로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말하자면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의 시련기에 있다. 구조조정을 훌륭히 수행하려면 전략이 필요하고, 그러한 전략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장기적 비전을 토대로 하는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만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정부는 개입과 자유화의 사이에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의 틀을 만들면서 정한 원칙은 우리에게 참고가 된다. 그들은 시장경제 제도가 국가 번영을 가져오는 최고의 제도로 보았다. 그러나 시장에만 맡겨둘 때 독점 따위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독일은 연방카르텔청과 독점위원회를 두어 독점을 규제했고, 물가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또 기업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의사를 결정토록 했다. 이같은 원칙이 선진국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만든 기둥이 되었다.

 

물가 흔들리면 국민은 단기주의자가 된다

둘째, 물가안정 기조를 지속해야 한다. 물가가 흔들리면 기업은 장기투자를 기피하며, 가계는 저축을 기피한다. 정부도 교육이나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장기적 투자를 외면한다. 모든 국민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단기주의자가 된다. 이러한 단기주의 경제는 유능한 생산직 인력을 길러낼 수 없으므로 기술개발은 저조해 질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물가의 안정기조를 정착시켜야 기업은 장기투자를, 가계는 저축을 하게 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장기적 안정성장에 기여한다. 따라서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안정기조를 정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불로소득 줄이려면 정부가 정보 공개해야

셋째, 우리 사회는 누구라도 일한 대가가 아닌 地代(rent)를 추구하는 행위를 없애야 한다. 지대란 불로소득과 비슷한 개념인데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을 초과한 수입’으로 정의한다. 독과점 기업이 생산·유통·판매를 지배하여 이윤을 챙긴다면 이것은 독점지대가 된다. 대기업 집단이 규제금리와 시장금리의 차이인 금리차 이익을 누린다면 이것은 금리차 지대가 된다. 특정 그룹, 특정 지역, 특정 학연에 속한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고 특혜를 누린다면 이것도 역시 지역지대나 학벌지대가 된다. 사회 구석구석에 이러한 지대가 존재하는 한 우리 경제의 잠재력은 밑에서부터 붕괴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이 정직하게 일하고 일한만큼 대접 받으려 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특권을 찾아 로비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산활동을 하는 자는 어리석고, 정직한 자는 무능하며, 특혜를 못받는 지역에서 사는 사람은 바보인 것이다. 이러한 지대는 대부분 정부 규제에 의하여 발생한다. 금리를 규제함으로써 금리의 이중구조가 발생하고, 금리차를 얻기 위해 상호출자나 상호지급보증, 그리고 문어발식 확장이 많이 생긴다.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에 접근하려는 로비도 극성을 부린다. 따라서 정부규제완화와 정보의 공개, 그리고 독점 금지가 지대를 줄이는 데 중요한 노릇을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구조 변화의 세계적 추세를 감지하고 정부가 그 대세에 순응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국제 분업 속에서 위상을 높이려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필수적이다. 21세기가 되어도 과거와 같은 조립산업으로 버틸 수는 없다.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발전을 어느 정도로 하고, 생산 기술 중에서 기계의 국산화를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 갈 것인가에 등에 분명한 전략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산업조정의 주역은 결국 인력이라는 점이다. 훌륭한 경영자, 기술자, 연구원 등이 많이 있어야 이러한 조정이 가능하다. 이는 비전있는 인력정책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