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없는 곳에 김대중은 없습니다”
  • 정리·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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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김대중 정치역정 - 유신반대 성명에서 정계은퇴 선언까지

후광 김대중. 그의 개인사는 곧 한국 현대정치사이기도 하다. 그는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와 6년 간의 감옥 생활. 10년 간의 연금으로 점철된 정치역정 속에서 수많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당시 공개적으로 혹은 구전이나 지하 유인물로 전해졌던 기록 중에서 그의 정치행로와 관련해 가장 의미깊게 자리매김된 것들을 발췌해 수록한다. <편집자>


■1972년 10월 ‘10월유신 반박 도쿄 성명’

  박정희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통일을 말하면서 자신의 독재적인 영구집권을 목표로 하는 놀랄 만한 반민주적 조치이다. 이는 완전한 헌법위반 행위인 동시에 한국 내에서 민주역량의 성장을 통해 북한과 호각의 입장에서 하루속히 조국통일을 성취시키려는 국민의 염원을 무참히 짓밟은 것과 다름없다. 나는 박대통령의 행위가 세계의 여론으로부터 준엄한 비판을 받는 동시에 민주적 자유를 열망하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위대한 한국민의 손에 의해 반드시 실패하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바이다.

 

■1976년 3월1일 ‘3·1민주선언’(부분발췌)

  이 나라는 1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파국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곧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국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표현될 수 있도록 언론·집회·출판의 자유를 국민에게 돌리라고 요구한다. 유신헌법으로 허울만 남은 의회 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법권의 독립을 요구한다. 국민의 국세 부담을 무시하고 짜여진 팽창예산을 지양하라. 부의 분배를 철저히 하고 과감하게 실천하여 국민의 구매력을 키우라.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민족통일을 저희의 정략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거나 지지한다면 이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80년 3월1일 사면복권에 즈음해 발표한 성명 ‘7년 만에 국민 여러분을 대하면서’

  이제 저는 복권이 되었다 해서 새삼 새 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국민을 위해 국민의 여망에 따라 제 삶을 던질 뿐입니다. 국민이 없는 곳에 김대중은 없습니다. (중략)

  이 순간에 있어서도 저의 1차적인 관심은 민주제도의 차질없는 재확립이지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후보 경쟁에 열중한 나머지, 민주주의의 소생을 속으로 원치 않는 자들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것을 저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파수병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중략)

  다시 한번 80년대가 위대한 우리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민주시대가 될 것을 확신하면서, 민주대업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동참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지난 70년대는 여러분이 주인의 자리에서 나그네의 자리로, 주체의 자리에서 객체의 자리로 밀려났던 비극의 시대였음에 반하여 80년대는 국민 여러분이 참으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바입니다.

 

■1980년 9월13일 이른바 ‘김대중 일당 내란 음모사건’ 군사재판에서 사형 구형을 받고난 뒤 최후진술 (제18차 공판) 요지

  10·26 이후 한국 국민은 세계적으로 칭찬받을 만큼 자제심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주한 외국대사와 만나보았는데 이들 모두는 우리 국민의 자제력에 찬사를 보내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용기와 함께 자체할 수 있는 슬기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무시하며 혼란을 자초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계엄령의 경우 최규하 대행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그 존재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해제하지 않음으로 국민의 의혹을 일으켜 오히려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둘째, 정부는 과도내각이라 하면서도 분명한 정권이양 일정을 밝히지 않아 정치일정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셋째는,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은 대통령 직선과 국회의원 소선구제를 원하고, 국회에서 개헌안을 마련중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별도로 개헌심의기구를 만들고 이원제니 중선거구제니 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이러한 정부의 의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결국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검찰에서는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어 학생 데모를 통해 집권하려 했다고 공소장에서 밝히고 있으나, 나는 총 한방 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제일 바랐던 것은 선거였으며 선거만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집권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4년 후를 대비한 튼튼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혼란이 오면 집권은커녕 곤란한 상태에 처하게 되며 사실은 오늘날 같은 사태가 올 것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비폭력주의자입니다. 그렇다고 무저항주의는 아니므로 나는 비폭력 저항주의자입니다. (중략)

  당국이 나의 형을 집행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것이 과연 법의 정의에 합당하며 민주국가로서 옳은 일인가 심사숙고해 주기 바랍니다. 나는 나에 대한 관대한 처분보다는 다른 피고들에 대한 관용을 바랍니다. 결국 이분들에 대한 혐의의 책임자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제 구형을 받았을 때 의외로 차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물론 공판정에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평소보다 더욱 잘 잤습니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 신자로서 하느님이 원하시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죽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 재판부를 통하여 나를 살리실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계신 피고들께 부탁드립니다. 절대 우리가 승리합니다. 승리하지만 보복하지 마십시오. 내가 죽더라도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어제 한완상 박사가 예언자적 사명과 제사장적인 사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를 사회구원과 개인구원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민주회복을 통한 사회구원, 민족구원을 생각했습니다.

  재판부, 국선·사선 변호인, 교도관 관계관, 내외신 기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리고 검찰부에서 한 노고 그 자체에는 감사를 드립니다.

 

■1983년 8월15일 김대중·김영삼 공동성명 ‘민주화 투쟁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투쟁이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민족의 지배와 탄압으로부터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던 8·15 기념일을 설흔여덟번째 맞습니다. 과연 해방의 감격과 그 진정한 의미가 오늘에 되살려지고 있는지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오늘에 어떻게 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뜨거운 호소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중략)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 어느 누구의 도움보다도 바른 민족 성원 자신의 주체적인 힘으로 쟁취하듯이 우리의 민주화 투쟁도 오직 우리의 창조적인 민주 역량으로 이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계의 양심이 우리를 지원할 것이나 그것은 보완적인 것일 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룩하여 인간다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투쟁의 승리의 날에 우리는 민주투쟁에서 숨지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사람들을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애국선열들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룩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싸우다 죽어간 모든 사람들의 피나는 고통 위에서 이룩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은 원칙 위에서 독재권력에 결연히 맞서야 합니다. 현 독재정권은 입으로는 민주를 말하는 뒷전으로는 자신들의 권력의 강화와 영구화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합을 말하나 속으로는 분열을 음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앞에서는 정의를 말하나 뒤로는 엄청난 불의와 부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의 민주화 투쟁이 결코 정권 투쟁이 아니라 민주구국의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같은 현 정권의 성격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와 겨레의 운명과 존엄은 독재정권 아래서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절정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각자 냉철한 반성과 점검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정치인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숨쉬는 민주주의를 갈망하여 왔습니까. 진실로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걱정하고 국민의 아픔을 같이하고자 한다면 현 정권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분배된 특권에 편승하여 안일을 탐하고, 자신의 양심을 팔거나 속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떠한 입장,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자로서의 늠름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현 정권이 강요하고 있는 그 규격과 룰로부터 탈출하여 민주화를 향한 시대적 사명에 함께 합류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략)

  지금 이 시점에서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독재와 억압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화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내일에의 꿈이 없는 민족은 가장 불행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확고한 신념으로 민주 조국에의 희망과 튼튼히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하나되고 그 희망으로 뭉친다면 우리는 마침내 이 땅에 모두의 환호 속에 민간정부를 우리 손으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억압은 절멸되고, 우리 모두는 새로운 민주적 인간상으로 구원될 것이며, 이 나라와 국민은 모든 세계인들의 선망과 찬탄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중략)

  1980년 봄은 국민이 한결같이 열망하던 민주화의 길에서 우리는 당시 야당 정치인들로서 하나로 되는 데 실패함으로써 수백 수천의 민주국민이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계속 국민의 수난이 연속됨은 물론 민주화의 길을 더욱 멀게 한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면할 길 없습니다. 이제 국민 앞에 자책과 참회의 뜻에서, 그리고 온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하나가 되어 손잡고 우리 민족사의 지상과제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려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들의 부족하였음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여러분의 민주전열에 전우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두사람은 오로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민과 함께 그 뜻을 받들어 민족과 민주 제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 성스런 싸움과 승리의 현장에서 뜨겁게 만납시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워싱턴에서 김대중

서울에서 김영삼

 

■1987년 9월8일 망월동 묘역 방문 성명

  존경하고 사랑하는 영령들이여!

  한없이 사모하는 영령들이여!

  김대중이가 여기 왔습니다.

  김대중이가 여기 왔습니다. 꼭 죽게 되었던 내가 하느님과 여러분의 가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7년 만에 여기 망월동의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광주! 무등산! 망월동! 감옥에서 이국땅에서 서울의 하늘 아래서 얼마나 나의 피눈물을 짜내고 가슴을 떨리게 한 이름들이었던가!

  이제 나는 그토록 그립고 외경스럽던 광주와 무등산과 망월동에 오니 어머님의 품에 안긴 안도감과 준엄한 심판자 앞에 선 것 같은 두려움을 아울러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나는 이제 무등의 산허리에 겹쳐 있는 저 아름다운 빛의 십자가를 봅니다.

  거센 광풍이 지나가면 의연하게 다시 일어서는 풀포기처럼 강인하게 살아온 우리의 민초와 함께 나 김대중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전진할 것을 맹세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영령들이시여!

  나의 님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1992년 12월19일 정계은퇴 성명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저의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합니다.

  저는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저는 김영삼 후보가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여 국가의 민주적 발전과 조국의 통일에 큰 기여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일시민이 되겠습니다. 이로써 40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간 국민 여러분의 막중한 사랑과 성원을 받았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하해같은 은혜를 하나도 갚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점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그동안 언론계 여러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당원동지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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