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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어도 할 일은 모국에서

濠·美·加 등 경제적 이익 찾는 사업이민으로 전환

시드니·김삼오 통신원 ㅣ 승인 2006.05.02(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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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격하로 성장 한계… 모국지향적 자세가 문제

  한국인의 이민 환경이 바뀌고 있다. 아시아인의 이민 선호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이민정책을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맞게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증가 자체가 경제발전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과거의 이민은 친척 초청 등 인도적·사회적 사연이 많았다. 지금은 경제적 이익이 절대 우선한다.

  90년 말부터 호주가 캐나다 방식을 모방해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업이민(business migration)은 경제이민의 전형적 예이다. 이민성 정책담당자 말대로 이민자는 사업도 일으키지만 주택과 자동차를 구매함으로써 시장을 넓힌다.

  호주와 이웃한 뉴질랜드도 뒤늦게 비슷한 이민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오래 전부터 부자가 이민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2년 전부터는 이민법을 개정해 이를 구체화시켰다. 약간의 액수 차이가 있을 뿐 일정한 자본금, 사업경력, 좋은 사업계획을 제시하면 이민을 허가하는 것이다. 자금은 35만달러에서 1백만달러가 있어야 한다. 나이, 정착지가 지방이냐 도시냐, 실제로 사업을 하지 않고 주식투자나 이자로 살 것인가 여부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초청이민에서 사업이민으로

  이 네 나라가 모두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신흥 아시아 공업국가를 대상으로 사업이민, 전문직이민 유치작전을 펴고 있다. 그 배경은 간단하다. 이들 앵글로 색슨 국가는 유럽으로부터 이민을 받아 성장했는데 이제 백인 이민은 거의 끊어졌다. 거기도 잘 살게 되었으니 이민을 안온다. 대신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아시아 국가에서 돈 있거나 기술 좋은 사람을 골라 받겠다는 것이다.

  서구국가는 아시아의 사회문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지만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돈 있는 사람을 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민환경은 받는 쪽뿐만 아니라 보내는 쪽도 많이 바뀌고 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이민은 영주권 비자를 받으면 목적을 달성했다는 안도감을 가졌다. 1960년대에 남미로 떠났다가 지금은 호주에 정착한 한 교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전쟁 발발 위기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먼저 맛보았다고 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남북 간의 대결은 여전하지만 전쟁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공기 나쁘고 사람이 많은 게 탈이지만 돈이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는 말이 해외 한국인 사이에 유행했다. 영어를 잘하는 우수한 전문인이면 외국에서보다 고국에서 더 좋은 직위,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누가 이민하는가. 한 이민문제 전문가는 “외국에서 원하는 조건을 갖춘 인력은 나갈 필요가 없고, 한국에서 나가야 할 사람은 자격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2000년을 바라보는 한국 이민의 아이러니다. 요즘 이민하는 사람을 특징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이민 후의 그들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시드니의 ㅇ씨는 한국에서 그런대로 잘 되는 회사의 중견간부였다. 50대를 바라보면서 회사가 어려워지고 장래 전망도 나빠 사업이민을 결정했다. 그는 “해외에 나가 조그마한 자영업이라도 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이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ㅇ씨는 매우 평범한 사례이다. 매년 3백세대 정도씩 들어오는 한국인 이민자와 얘기해보면 각자 복잡한 사정이 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 자기 사회에서 느낀 소외감, 자녀교육 걱정 등. 많은 한국 이민자는 한국에서 남과 비교해 응분의 대접을 못받았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소외감은 한국 사회가 지난 30여년간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기회를 잘 잡아’뼈아프게 일 안해도 재산 모으고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많은데서 생긴다.

 

“이민은 가장 뼈아픈 단절”

  이민은 고달픈 것이다. 인류학자 홀이 말한 것 같이 “이민은 생애에서 가장 뼈아픈 단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라면서 익숙해지는 언어와 문화, 인간관계가 있다. 이민은 이런 뿌리를 뽑아 새로운 토양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민을 나가 견딜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인가 어려움을 보상하고 남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호주 이민 대행업무로 한국인 사업이민자를 많이 대한 아시아 퍼시픽 컨설턴시 대표 독고 영난씨에 따르면 ‘그 무엇’이란 경제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이민자는 외국이 한국보다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는 곳이라는 전망은 별로 밝지 않다고 느낀다. 이민자는 누구나 현지에서의 장래를 한국에서 누린 생활수준, 생활양식을 중심으로 평가하는데 외국에서의 현실과 장래가 월등히 낫지 않은 것이 불만이다.

  어떤 학자는 70년대 중반 미국에 들어온 월남 피난민을 상대로 조사하면서 “당신이 10년 후를 전망할 때 월남에 있는 것과 미국에 온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았을 것으로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한 소수민족 집단의 장래를 예측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최근의 한국 이민자를 상대로 그런 조사를 한다면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3만명으로 추정되는 호주 교민사회에는 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 아직 정착을 못한 사람 등으로 불안정한 요소가 어느 때보다 많다.

  지난 4년 동안 호주에 온 한국인 사업이민자는 약 6백세대이다. 이들은 모두 농장, 각종 제조업, 서비스업 등 분야에서 그럴듯한 사업계획을 갖고 왔지만 원래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 큰 자본이 없고 전문분야가 뚜렷하지 않은 한국 이민자는 식당 식료품상 잡화상 등 영세한 서비스산업에 진출하는데, 이런 분야는 공급과잉 현상을 빚는데다가 동족은 물론 월남계·중국계 이민자와 출혈경쟁을 해야 한다.

  그나마 절반 정도만 사업을 시작했을 뿐, 아직도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많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사업이민회의 변종무 회장에 따르면 초기에 온 회원이 사업을 시작한 비율은 70%였다. 근래에 들어온 층은 일 안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불경기와 함께 한국인 특유의 지위에 대한 의식은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 가족 중심으로 운영하는 조그마한 사업은 한국인의 관념으로는 장사이다. 한국에서 찾아오는 친척이나 친구가 “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외국에서 사느냐”하는 말을 들으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민 정보 부족도 문제

  영미 지역의 한인사회는 모국지향적인 것이 특징이다. 고국과 교류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현지 사람이 아닌 한국에 있는 친척이나 옛 동료와 비교한다. 호주에 많이 들어온 전문직 취업이민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받는 월급이 한국보다 많지 않고 언어 장벽 때문에 직장생활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경력으로 보아 한국에서 중견간부는 되어야 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이민온 한 한국인은 “그런 자리를 주어도 책임을 다할 수가 없다”라고 실토했다.

  이민은 자기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은 충분한 정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런 정보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지난 10여년 동안 해외로 나온 수많은 한국인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면서 가산을 탕진하고 되돌아갔다. 대부분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비자를 얻은 사람이다. 국내에서 해외 사정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는 것이 모두의 원성이다.

  원하는 사람을 누구나 나가게 해주는 한국 정부의 이민정책도 문제다. 해외 외교망을 가진 정부는 이민 실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해외 교민사회의 실상에 대한 언론 보도도 충분하지 못하다. 돈을 번 사람은 성공 사례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층생활로 그려진다. 호주에서 교민 상담을 하는 강기호씨에 따르면 성공을 보는 언론의 기준이 잘못돼 있다. 실제 사정과 동떨어지고 무책임한 내용도 많다. 한 예가 세계는 넓고 기회가 많으니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어느 재벌 총수가 그런 내용의 책을 써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고, 최근에 잘 알려진 한국인 교수가 쓴 신문 칼럼도 그런 내용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제 나와 보면 사정은 다르다. 많은 한국 젊은이가 막연하게 그런 포부를 갖고 나오지만 실망하고 돌아간다. 그 이유는 해외로 진출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발판이 될 수 있게 정부가 해외에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한 것이 너무도 없기 때문이다.

  짧은 이민역사와 그외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 한인사회는 현지 사회의 중심에 끼어들지 못하고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전문직 한국인들이 끼어들 곳 역시 많지 않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는 한국인은 교민사회를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 실태는 실망스럽다. 해외건 국내건 한국은 정부와 대기업이 위주인데 여기는 연계가 없는 사람은 나와 할 일이 별로 없다. 집안에서 푸대접 받는 자식이 나가서도 푸대접 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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