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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다가온다

새 인식 체계 담은 ‘2세대’ 과학 서적 출간 잇달아

이문재 기자 ㅣ 승인 1997.07.0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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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시대는 끝났다’. 최근에 나온 <과학의 종말>(김동광 옮김 … 까치 펴냄)의 저자 존 호건의 단언이다. 금세기를 주저 없이 과학의 시대라고 명명하게 했던 과학이 세기 말의 문턱에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번역되고 있는 과학 서적들을 일별하면 서양 과학계는 자신의 아버지들을 ‘살해’하고 있다.

  뉴턴에서부터 아인슈타인, 그리고 스티븐 호킹 등 서양 과학의 아버님들은, 두 아들, 이를테면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 이론(93쪽 상자 기사 참조)의 공격을 더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복잡성의 과학을 제시한 일리야 프리고진은 <확실설의 종말>(이덕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새로운 합리주위’를 제시했다. 새로운 합리주의는 확실성을 향해 ‘시간의 화살’을 쏜다. 낡은 과학이 진리라고 외쳤던 확실성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다.

  최근 출판되는 과학 서적들(주로 번역불이지만)은 거개가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아버지가 되려는 아들’들의 이론을 담고 있다. 앞에 소개한 신간 두 권 이외에도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의 세기적 논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김성원 옮김 · 까치 펴냄), 과학이 순수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나 사회와 연관된 인간적인 작업임을 강조한 <숨겨진 과학의 역사>(로버트 B. 실버스 엮음 · 김종갑 옮김 ·해냄 펴냄),실험실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창조적 예술가로 살아가는 과학자 상을 강조한 <과학과 인간의 미래>(J. 브로노프스키 지음 · 임경순 옮김 · 대원사 펴냄)등이 그것이다.

  환경과 생태 문제에 주목하는 과학 서적도 잇따르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특집 기획 기사를 모은 <지구를 살리는 말똥풍뎅이, 말똥풍뎅이를 죽이는 인류>(김동광 옮김 · 청하 펴냄), 기구를 하나의 시스템 과학으로 이해하는 거시적 관점에서 지구 환경르 진단하고 처방하는 <실험실 지구>(스티븐 H. 슈나이더 지음 · 임태훈 옮김 · 두산동아 펴냄)등이 지구 환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계의 최근 논란거리들을 알기 쉽게 풀어쓴 <과학자들은 지금 무엇을 연구하고 있을까>(김준민 지음 · 지성사 펴냄), 미생물의 종류와 기원에서 인간과 미생물의 미래까지 일러주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 - 미생물 이야기>(이재열 지음 · 사이언스 펴냄) 등 구낸 학자들의 저서도 눈에 띈다.

  조금 선정적인 재목이지만 <과학의 종말>은 전문가보다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저자 존 호건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 문학 비쳥이 지적으로 가장 매혹적인 분야라고 믿었다가, 그것이 ‘해석의 무한 회귀’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과학 쪽으로 선회한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확실성의 시대는 왜 끝났는가
  <과학의 종말>은, 쿼크에서부터 카오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새로운 이론인 복잡성 이론, 인공 지능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과학의 일대 파노라마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시간과 공간을 놓고 스티븐 호킹과 ‘세기적 논쟁’을 벌인 바 있는 로저 펜로즈를 인터뷰하러 가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황제의 새로운 마음>을 쓴 펜로즈는 ‘궁긍의 답’ 즉 인간 의식의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로저 펜로즈를 시작으로 이 열정적인 과학 기자가 인터뷰한 과학자들은 스티븐 호킹, 토머스 쿤, 스티븐 와인버그, 머레이 겔-만, 일리야 프리고진 등 세계적 석학들이다. 과학 기자 존 호건은 이 석학들을 만나면서, 기자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객관성을 내팽개쳤다. 그는 언론의 (현대 과학이 의심하는) 객관성이라는 가식을 벗고 도덕적 판단을 개입시키고 논쟁을 제기하며 개인적인 입장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현대 과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는 한편, 그 과학자들의 독특한 기직은 물론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모습까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과학의 종말’은, 복잡성 이론을 제시한 일리야 프리고진(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세계적 석학이다)에게는 확실성의 종말이었다. 프리고진은 <확실성의 종말>에서, 양자 역학와 상대성 이론을 포함한 고전적인 관점에서의 자연 법칙은 확실성을 의미했지만, 그 확실성은 이제 가능성 혹은 우연, 추측의 영역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프리고진은 서양 인문주의 전통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모순을 비판한다. 즉 한편으로는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이룩하기 위해 인간의 책임감과 선택의 자유, 창조성을 강조해 왔는데, 자연이 결정론적인 과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 두 전통은 서로 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전통 속에서 자연과인간의 분리되어 있다.

  20세기 들어 양자역학와 상대성 이론이 뉴턴 법칙을 대체했지만, 결정론적이고 시간 가역적이라는 뉴턴 법칙의 두 특성은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을 프리고진은 발견했다. 시간 가역적이기 때문에 초기 조건을 알기만 하면, 이래는 물론 과거의 상태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고진에게 확실성이 지배하는 20세기 과학은 매우 이상적이고 단순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불완전한 과학이다. 프리고진은 ‘과학은 완성될 것이며, 인간은 신의 마음을 읽게 될 것’ 이라고 주장하는 스티븐 호킹이나, 시간의 조재(비가역성)를 인정하지 않은 아인슈타인을 친애하지 않는다. 두 과학자 역시 확실성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은 ‘시간의 화살’(시간의 실존, R 지향성)을 동원해, 한 치의 새로움도 허용하려 들지 않는 확실성의 세계와 신으로 상징되는 불가지론의 세계 사이에 ‘좁은 길’을 내고 있다. 그 좁은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확실성의 종말>의 주제인데, 그 좁은 길에서 프리고진은 시간의 문제와 자연과 인간의 창조성을 새롭게 정립한다. 그는 시간은 영원하다고 파악한다.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우주는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리라는 것이다. 그의 새로운 자연 법칙은 ‘자연을 인간과 같이 창조적인 대상으로 승화시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확실성의 종말’이 새로운 과학의 출발점이듯이 ‘과학의 종말’도 과학 자체의 종말은 아니다. 통일성 · 보편성 ·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책을 번역한 김동광씨(과학세대 대표)에 의하면 ‘하나의 ’과학, 혹은 하나의 인식 체계의 종말이다.

 존 호건이 만난 과학자들은 ‘지식의 한계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는 과학자’들이었다. 예컨대 물질과 에너지의 궁극적 이론을 탐사하는 입자물리학자들. 우주가 어떻게 그리고 왜 창조되었는가를 이해하는 우주론가들, 그리고 진화생물학자들, 신경과학자들,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 이론의 탐구자들, 철학자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과학 서적들은 변혁기를 맞고 있는 과학의 위기를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이 단지 ‘과학 내부의 뉴스’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제3의 문화’라는 개념이 등장해 있거니와, 과학은 그동안 등을 돌리고 있던 인문하과 악수를 나눈 이래 인접 학문과 다양하게 접촉하면서 성과를 내놓고 있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일련의 과학 서적들은, 아직도 학문 간의 경계가 완강한 한국 학계를 간접으로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李文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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