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밑으로도 핏줄은 흐른다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7.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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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서신 왕래 · 제3국 상봉 등 비공식 교류 활발 … 부작용도 드러나

남과 북이 갈라진 지 50여 년. 이 세월 동안 4백만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생사조차 모른 채 편지나 전화 한 통 하지 못하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듯이,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 속에서도 제3국을 통해 은밀히 만나거나 애달픈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 통일원 교류2과 당국자는 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발효된 이후 96년 하반기까지 생사 확인 8백20여 건, 서신 왕래 3천 1백50여 통, 제3국 상봉 90여 건 등 비공식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39쪽 도표 참조).

방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그런 경우이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이었다. 93년께 오씨는 장승학씨(68 · 효도회 호장)  주선으로 아내와 아들딸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을 주선한 장승학씨는 북한 당국의 고위 인사와 교분이 두텁다. 그래서 그는 북경 주재 북한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아무개 씨 가족을 찾아 달라고 공식 요청하는 방법으로 상봉을 주선해 왔다. 93년에 이 같은 방법으로 한두현씨가 남북한 당국 승인을 받아 북경에서 북한의 가족을 직접 만났다. 이 같은 공개 상봉은 당국 승인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성사만 된다면 전혀 위험할 것이 없다. 그러나 공개 상봉은 교류 사례 가운데 매우 드물다. 북한 당국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저명인사나 재력가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비밀 루트를 이용한 제3국 상봉이다. 이 루트는 최근 탈북자들이 이용하는 루트와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발각되면 처벌을 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상봉은 미국 · 일본 · 캐나다에서도 이루어지나, 대부분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인 압록강변이나 중국에서 이루어진다.

주로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과 북한의 이산가족을 연결한다.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한국의 이산가족이 중국교포나 북한에서 중국을 무역하러 나온 북한 사람에게 북한의 가족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과정에 보통 천 달러 정도가 든다. 이는 북한에서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사람(무역업자 · 보따리장수 · 단순 여행객)이 욕하는 돈이다. 가족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황해도나 강원도에 살고 있으면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도 있다. 북한에는 통행 자유가 없기 때문에 외국인인 중국교포가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중국교포가 간첩 혐의로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을 드나들며 조선족과 끈을 가진 북한 사람들이 찾는 수도 있다. 한 건을 성사하면 많은 돈을 받으므로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매달린다. dfjgrp 해서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을 찾으면 중계하는 사람이 자필 편지나 사진을 받아서 한국의 가족에게 전한다.

생사가 확인되면 중국의 조선족 주소지를 중계 거점으로 해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편지를 주고받는다. 북한에서는 서신 검열하기 때문에 한국의 가족은 사진을 보낼 때 중국에 가서 사진을 찍어 국적이 중국인 것처럼 위장해야 한다. 사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곤란해지므로 편지 내용도 모두 꾸며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을 중계 거점으로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생사 확인 후 상봉까지 5천 달러 들어
편지 왕래를 어느 정도 계속하면 상봉을 할 수 있다. 상봉을 위해서는 편지를 중계하던 조선족이 북한의 이산가족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이는 적법을 가장한 위법이다. 겉으로는 북한의 가족이 중국에 살고 있는 친척을 만나러 출국하는 셈이다. 북한 당국이 초청장을 검토한 뒤 출국 허가를 내주면 한국과 북한의 이산가족은 중국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이산가족 상봉 알선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생사 확인 후 상봉까지 보통 1년이 걸린다. 이 관계자는 이 과정에 북한의 허가 당국인 보위부와 안전부에 뇌물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생사 확인 후 상봉 때까지 드는 경비는 모두 5천 달러 정도이다. 여기에는 초청장과 여권 발급 비용, 뇌물 등 딸린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압록강변에서 만나는 사례도 있다. 특정 시각에 압록강변 어디에 나와 있으라고 약속한 뒤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다 약속 장소에서 얼굴만 보는 경우이다. 또 북한 경비대가 묵인해 국경에서 몇 시간 정도 만나는 사례도 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수도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주선하는 전 암씨(68)는 “두만강과 압록강 근처에서는 북한 전화 교환원과 잘 아는 중국 전화 교환원을 통하면 직접 전화 통화까지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 교환원이 생활이 어려워 중국 교환원에게 부탁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중국 교환원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부분 이산가족 상봉알선 단체들이 주선한다. 통일원 당국자는 “10여 단체가 있으나 개점휴업 상태이고, 이산가족상봉추진회 · 효도회 · 한겨레상봉추진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에 가족이 있는 것이 확인되면 한국의 가족들은 대개 북한에 돈을 보낸다. 그 방법도 여러 가지다. 재일 교포들은 주로 조총련계 금융기관인 조선상업신용조합을 통해 송금한다. 이 방법을 통하면 한국에서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일도 가능하다. 해외 교포가 북한을 공식 방문하는 편에 돈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방법은 모두 공식 경로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일정량을 뗀 뒤에 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편으로 몰래 전하는 것이다.

“돕지 못할 바에는 안 만나는 것이 낫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산가족 생사를 확인하더라도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생존 사실을 확인한 뒤 ‘그만 되었다’하고 끝내버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정이 어려운 북한의 가족을 돕거나 상봉에 드는 돈을 댈 만한 경제 능력이 없으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하는 동화연구소 이경남 소장은 “처음에 찾으려 했던 사람은 동생이나 부모였는데 대신 사촌을 찾았을 때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또 그에 따르면, 북에 있는 늙은 아내를 찾았으나 남한에 와서 재혼한 가족이 반대해 상당한 재력이 있음에도 북의 가족을 돕지 못하는 노인들도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북한의 이산가족들은 한국에 가족이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뻐한다고 한다. 이들은 그 때부터 남쪽만 쳐다보고 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으면 북한에서 원망하는 편지가 온다고 한다. 전 암씨는 심지어 “북한의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형편이라면 연락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까지 말했다. 남과 북의 경제력 격차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이처럼 이산가족 상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가족은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야 하고, 북한쪽 가족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이산가족 1세대는 대부분 자식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70대 전후 노인이다. 그래서 이산가족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남북한 정권이 이해관계를 떠나 이산가족 교류 문제만큼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50년 세월을 헤어져 살면서 수백만 혈육들이 편지나 전화 한 통 못하는 것은 국제적인 인권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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