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세력의 ‘집단심리학’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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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관장 대화서 속성 드러나 ??? 차기정권 의지에 극복 여부 달려



 대통령선거 막판에 폭로된 부산 기관장 회식에서의 대화 내용은 기득권 세력의 의식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의 대화에서 기득권 세력의 보수성 부도덕성 저질성 권력지향성 등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내노라 하는 지역 유지인 그들은 우리 정치의 암적 존재인 지역감정과 흑색선전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믿을 곳은 부산ㆍ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밖에 없다.” “부산ㆍ경남ㆍ경북까지만 요렇게 딱 단결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 “대구는 뭐 남들이 TK 뭐 하지만 단합, 애향심의 방법을 안다. 그건 뭐 배울 점이 아닌가.” “저희들 바람은 오히려 호남쪽 유세 가서 두들겨 맞고 오면, 대구ㆍ경북도 에이 하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어.” “87년 우리 대통령 각하가 전주에 가서 한번 두들겨 맞고 와서는 훽돌았잖아요.” “하여간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면 어떠냐 정주영이면 어떠냐 뭐 이러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

 우리나라 지배집단이 통치전략으로 즐겨 사용해온 두 가지 수단은 지역감정과 반공이념이었다. 3당 합당을 통해 호남 대 비호남으로 통치구도를 유리하게 재편했고 결국 지난 선거를 통해 범영남세력 연합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색깔론은 지난 선거에서 쟁점으로 등장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맹위를 떨쳤다.

 

언론 역할도 자의적으로 규정

 지배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활용해 통치기반의 강화를 꾀한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지역감정은 기득권 세력이 이용하는 허구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의 본질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비기득권 세력 간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부산 기관장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것’ ‘훌륭한 분’ ‘배울 점’의 기준은 오직 자신이 선택한 후보에게 유리한 것과 그의 당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느냐 하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기관장 하시니까 어렵기도 하겠지만 훗날 보면 보람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따위 발언에서 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경도된 기준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역이 잘돼야 상공인이 잘되고 그래야 신문도 잘될 거 아닌가 말이야” “그러니까 (돈) 좀 모아가지고 서울을 죽이고 우리를 살려야지 너희들은 고향 애향심도 없는 놈들이냐. 일본 아사히가 그렇게 일본 정부를 욕해도 미국하고 싸울 때는 전부 일본 정부 편을 든다고, 이것이 성숙한 언론의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 광주 가봐라??? 어쩌든지 자기 고장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이 기간에 좀 봐줘야 사람의 도리다 말이지.”

 애향심, 성숙한 언론, 사람의 도리에 대한 척도도 오직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들 의향대로 움직여 주는 신문사 편집국 간부를 “배짱있는 사람” “통솔력있는 사람” 으로 부르고 있다.

 그들의 말은 거칠다. “거제도가 고향인 현대놈들” “부산놈들 본떼를 보여야” “이종찬 등 난데없는 것들이 들어와” “보험회사 외판원, 월부책 장사, 그놈들에게 한번 붙들렸다하면” 등등 거친 표현을 예사로 하고 있다. 그들이 상소리에 가까운 원색적인 말을 거르지 않고 내뱉는 경향은 가진 자로서 무서울 것이 없다는 심리를 반영한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 지금 경북ㆍ대구 사람들 섭섭하다. 30년간 대한민국을 휘두르다 놓게 되면 손해, 정권을 가지고 있으면 특혜는 못받아도 억울한 일 당하면 한다리 건너로 집권층이니까 피해는 안 당했는데, 피해 안 보는 것만 해도 중요한 일이지” “팔이 안으로 굽는 것같이 ??? 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그래요.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 들어가야 할 판인데 여당 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

 

“우리가 제일” 우월감으로 무장

 이같은 말에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이 담겨 있다. 기득권을 놓쳤을 때의 위기의식이 그들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명언 교수(서울대 ? 심리학)는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한 사람에게 그가 쓰는 잔을 얼마에 팔겠느냐 하고 묻자 7달러를 불렀다. 그는 잔을 안 써본 사람이 모르는 여러 이유를 들며 자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잔을 보여주고 얼마면 사겠느냐 하고 묻자 3달러 남짓의 값을 매겼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 실험결과는 보여준다.

 기관장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기득권 세력은 비이성적인 집단 사고에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호남에서 얻어 맞지 않아서 경상도 단결이 안된다는 발언에 대해 참석자 중 이의를 단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집단 구성원은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외부 환경과 차단돼 있을 경우에 집단 사고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기득권 세력은 일반적으로 자기네가 가장 도덕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것이 왜 나쁘냐’ ‘우리는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그래도 우리이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했다’라는 식의 신념을 가진다. 60년대에 빵도 제대로 못먹었지만 자기네가 힘껏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고기를 먹게될 만큼 풍족해지고 한국이 세계 상위 순위의 무역국으로 떠오르게 됐다며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물을 다른 색깔의 안경으로 보는 것과 같다. 기득권 세력은 주위의 인식과 자신의 인식 사이의 편차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기득권 세력은 ‘우리는 백전백승, 난공불락이다’라는 의식이 강하다. 기득권 세력은 자기에 반대하는 집단을 적군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자기 집단 내에서 반론을 펴면 나약한 사람, 신념 없는 사람으로 비판한다. 비판적 정보는 차단하거나 왜곡 해석하고 자기 편을 지지하는 정보는 부풀려 선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특정 후보를 좋아서 선택하기보다 ‘저 사람은 안된다’는 반발에 따른 ‘회피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 때문에 기득권 세력은 일정 부분 합리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연히 기득권 세력은 개혁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어느 분야에서건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면 의식이 기득권 세력화해 개혁의지를 상실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한다.

 일반 회사의 경우에도 직급이 상무 이상인 사람은 말로는 경영혁신을 강조할지라도 실제 그의 의식은 대체로 반혁신적이라는 것이다. 부하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자기의 신상을 위협할 조짐이 보이면 그 부하는 예쁜 ‘보조개’에서 밉쌀스런 ‘뽈때기’의 신세로 바뀐다.

 경영진은 자율 경영 등으로 혁신을 시도하는 척하면서 실패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혁신의 시도를 기득권 확인과 기득권 강화의 전술로 활용하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성공회신학대학 ? 사회학)는 우리나라 지배집단을 완강한 보수 세력과 어느 정도 합리성을 갖춘 세력으로 분류한다. 전반적인 사회 변화는 지배집단의 변신을 요구하므로 이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 기득권 세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대구 ? 경북 세력이 분화됐다는 것이다.

 

“기득권 구조 성형수술에 그칠 것” 전망도

  그의 분석에 따르면 대구 ? 경북 세력은 우선기존의 정치 질서와 기득권을 완강하게 고수하는 쪽과 사회의 대세에 따라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변신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쪽으로 나누어졌다. 후자의 입장을 취한 세력이 김영삼씨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협소화한 대구 ? 경북 정권이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자각한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서 ‘김영삼 개혁’의 한계성이 지적된다. 기득권 세력은 구조적으로 존재하는데, 김영삼 차기대통령이 기존의 기득권 구조에 대해 내과적 수술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나오는 것이다. 벌써부터 성형수술 정도가 고작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차기대통령이 기득권 세력의 집단 사고에 빠지는 조짐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차기대통령은 개혁 작업을 주도할 ‘신한국위원회’의 설치 계획을 백지화했다. 또 지난 5일 노태우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에서는 “급격한 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 개혁 의지의 악화로 해석된다.

 기득권 세력과 반기득권 세력의 요구가 대립하는 가운데 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전자의 입장 쪽으로 기운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이를 1백만평의 땅에 수십평의 건물 한 동을 짓듯이 차기대통령이 안정의 비중을 크게 보고 개혁을 작게 하려는 징표로 받아들인다.

 개혁의 구조적 한계를 넓히는 일은 바로 김영삼 차기대통령의 의지와 직결된 문제다.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재정리다. 차기정권에서 대구 ? 경북 세력의 지분은 축소돼야 할 것이다. 그 축소과정에서 정권을 창출한 연합세력 간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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