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침묵으로 말한다
  • 광주ㆍ문정우ㆍ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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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끝나고 광주에는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광주시민들은 첫날 내린 비는‘김대중과 호남의 눈물??이요, 둘쨋날 내린 비는 ??5ㆍ18 영령의 눈물??이요, 마지막 날 내린 비는??민주주의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대통령선거 이후 아마도 이보다 광주시민의 복잡한 심경을 잘 대변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지역 사람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쉽게 아물 수 없을 듯하다. 우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불경기가 겹친 탓이기도 하지만 요즘 광주에서는 도무지 장사가 되질 않는다.

 광주시 남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김금자씨(36)는“사람들이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질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라고 푸념했다.

 상인들이 의욕을 잃고 장사도 잘 되지 않아 광주 지방 국세청 산하 일선 세무서 공무원들은 요즘 연말 체납액 정리에 애를 먹고 있기도 하다. 국세청의 한 공무원은“좀 과장해서 무언의 조세저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대선 이후에는 자진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지역 정서로 봐서 이해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장사도 실제로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저 속만 태우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선거 이후 광주시민들은 대부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특히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문 구독을 사절하는 집이 속출하자 모 일간지에서는“신문을 끊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돌린 적도 있다고 한다.

 무등산에서는 새해 아침이면 언제나 광주시민들의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암울하던 유신시절 재야인사들은 새해 첫날 이 산에 올라 잠들어 있는 세상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곤 했다. 미행하는 사람도 없고 도청당할 염려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 가서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했다고 한다. 그러다 80년대 들어와 어느덧 무등산 해맞이는 광주시민이 사랑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특히8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절정을 이뤄 매년 12월31일 밤이면 1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4㎞의 무등산 가는 길을 꽉꽉 메우곤 했다.

 매년 무등산 해맞이에 참여해왔다는 광주의 한 재야인사는“그곳에 가면 언제나 광주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연대감을 가슴 뿌듯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인파도 많이 줄고 열기도 식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면서??민주화를 향한 광주시민의 열정이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계층에 따라 표현은 다르지만 광주시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절망감인 것 같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20여년간 호남의 민중과 고난을 같이해온 김대중씨가 영원히 그들 곁을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 애통해 한다.

 김대중씨가“저는 이번에도 국민들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은퇴선언을 했을 때 수많은 광주시민은 진한 눈물을 삼켰다고 한다. 평소 김대중씨에 대해 비판적이던 재야인사들조차도??이럴 줄 알았으면 김대중씨가 하는 일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 않을 거 그랬다??며 자괴의 눈물을 함께 흘렸다고 한다.

 특히 서민층에서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선거에서 졌다는 사실보다도 은퇴했다는 사실을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의 하나인 대인시장에서 국밥집을 하는 한 40대 아주머니는“김대중씨가 은퇴하고 나서 사흘 동안 손님들이 밤 12시까지 술을 마시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얘기했다.

 이곳 대인시장 아줌마들은 대선이 끝난 지 한달이 가까워오는데도 김대중씨에 대해 물어보면 누구나“어떤 후보보다도 똑똑하고 야물은데 호남사람이라서 떨어졌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서민층 못지않게 이곳 지식인들의 절망감도 크다. 광주시의회의 한 의원은“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함으로써 잘못하면 5ㆍ18은 영원히 광주 일개 지역민의 불행한 사태쯤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영삼 차기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세력 중 상당수가 5ㆍ18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데, 5ㆍ18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크게 앞당긴 시민의거였음을 법적ㆍ제도적으로 공인하는 데 적극성을 보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곳 지식인들이 선거 결과에 대해 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선거가 전적으로 비정치적 요소인 지역감정에 의해 판가름 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정길씨(광주 국민회의 중앙집행위원장)는“호남사람들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부산 회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대중 집회 한번 열지 않고 자제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장근식 교수(전남대ㆍ사회학)는“부산기관장 모임이 터지면서 국민의 이성에 한 가닥 희망을 걸게 됐다. 한마디로 이길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부산회식 사건이 오히려 YS에 득이 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건 광주사람들의 좌절일 뿐만 아니라 이성적 판단의 죽음이다. 대중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묻는 작업, 아마도 이것이 이곳 지식인들의 머리를 꽉 메우고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광주 토박이인 한 중견 언론인은“우리는 이번 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으로 생각했다. 김영삼씨 개인보다도 민자당이 과거 군부독재를 계승한 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호남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결국 유권자들은 호남을 택하기보다는 반민주를 택하고 말았다. 과거 총칼에 당했을 때하고는 틀리다. 그때는 오기라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라고 얘기했다.

 “호남은 이제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들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곳 지식인들은 영남뿐 아니라 비호남 전체의 호남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이번 선거를 좌우 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 사람들이 영원히 벗어버릴 수 없을 듯한 멍에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따라서 재야의 진보적인 그룹 내에서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지금까지 우리 호남사람들이 기꺼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독재와 맞서 싸운 것은 대다수 국민이 변화와 개혁을 바란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는 그런 전제가 환상이었음을 입증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호남사람들이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호남 지식인 중에는 현재의 좌절보다도 광주와 호남사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전남일보〉문순태 주필은“앞으로 싫든 좋든 광주와 호남은 탈DJ를 해야 하는데 차세대를 이끌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우려한다. 지난 30년간 군사정권 아래에서 저질러진 불평등한 인사로 능력 있는 기성세대가 중앙으로 진출해 경륜을 쌓지 못하고 대부분 호남지역만 뱅뱅 돌다 주저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 우수한 젊은 인재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소모??돼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주필은??이제 호남사람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광주시민들은 김영삼 차기대통령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가. 광주시민들은 차기대통령에게 벌써 두 차례 실망했다고 얘기한다. 차기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에서“지역감정이란 선진국에도 다 있는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한번 실망했고, 정권인수위를 구성할 때 배치한 호남 출신 인사의 면면을 보고 또 한번 실망했다는 것이다.

 “차기대통령은 금남로서 시민과 대화해야??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지역감정은 선진국에도 다 있는 것이라는 상황인식으로는 광주와 호남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어렵다. 차기대통령은 자신도 지역감정 조장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고 자신의 임기 동안 지역감정을 일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인수위에 들어가 있는 호남 출신 사람을 같은 고향 출신으로 생각하는 이곳 사람은 없다. 출신 지역만 호남인 사람을 머릿수를 맞추기 위해 자리에 앉히는 일은 역대 정권이 신물 나게 써먹은 방법이다. 차기대통령이 정말 탕평책을 펼 뜻이 있다면 이곳의 신망 받는 인물을 중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외 광주시내에서 만난 보통사람들은“결코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렇게 주문한다.

 “이젠 입이 아파 더 이상 말하기도 싫지만 역대 정권은 이 지역에 대한 공약을 한번도 지킨 적이 없다. 호남선 복선공사는 착공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사 중이다. 이번에도 민자당은 많은 지역개발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아는데, 그거나 충실히 지켰으면 좋겠다.??   ??전두환ㆍ노태우 두 대통령은 무엇이 그리 떳떳하지 못한지 광주에 와서 공식적으로 시민과 만난 적이 없다. 탕평책도 좋고 지역개발도 좋지만 차기대통령은 광주와 호남에 자주 와야 한다. 이곳 금남로에서 시민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광주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광주의 어머니들은 가슴에 못이 박혀 있다. 아들이 일류대학에 붙어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현재 감옥은 광주 청년들로 가득 차있다. 억울한 청년은 모두 풀어줘야 한다.??

 광주시민 중에는 앞으로 절대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다. 대인시장에서 식당을 하는 한 할머니는“아예 주님등록증을 하수구에 버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광주시민들은 대부분 술자리에서 먼저??정치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한 다음에야 술을 마신다고 한다. ??지역 간의 머릿수로 대통령이 결정되는 풍토라면 투표를 하느니 아이를 많이 낳는 게 낫다??는 자조적인 얘기가 유행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다수결에 대해서 광주시민들은 근본적으로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광주시민의 판단이 옳건 그르건, 그들이 받은 상처가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로 곪아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아픔과 고뇌는 차기정권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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