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땅에서 깊어가는 대추리 ‘방성대곡’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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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이전 지역 ‘갈등 현장’ 밀착 취재

 
2006년 5월. 평택의 봄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지역인 대추리 농민들은 평생 가꾼 삶의 터전을 미군이 앗아갔다고 울었다. 반면 미군 부대 앞 로데오 거리 상인들은 미군이 평택을 살릴 것이라며 웃었다. 평택은 이처럼 희비가 엇갈렸다.

팽성읍 대추리 황새울 들판. 대추리(大秋里)는 ‘큰 가을 마을’이다. 해마다 풍년이 들어 성대한 가을걷이를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먹을 것이 풍부해 황새들이 많이 찾아와 들판에는 ‘황새울’이란 이름이 붙었다. 농촌에 점점 농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대추리만은 농민이 늘었다. 하지만 이곳 농민들은 ‘빼앗긴 들에 봄조차 오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있다. 벌써 4년째다.

대추리에 들어서자 한숨은 깊어졌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전쟁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펄럭이는 깃발과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가 대추리의 절박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민란’이었고 ‘계엄’이었던 2003년 11월 부안을 떠올리게 했다. 핵 폐기장을 반대하던  목소리보다 미군 기지를 반대하는 그것은 울림이 더 컷다.

1백40호가 살던 대추리는 지금은 70호만 살고 있다. 동네의 절반이 흉물스러운 폐가가 되었다. 대추리 이장 김지태씨는 “국방부가 2003년 대추리 수용계획을 발표했을 때 수용 예정 면적은 25만 평에 불과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방부가 2백85만 평이라며 모두 나가야 된다고 했다. 주한미군이 감축되는 만큼 땅도 적게 가져갔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 정태화씨(71)는 “대추리는 아픔이 서린 동네다”라고 했다. 정씨는 “1940년대 일본 해군 비행장이 들어서 동네 사람들이 쫓겨났고, 1952년 미군이 비행장을 넓히면서 또 쫓겨났다. 손톱·발톱 빠져가면서 논을 만들어놓았더니 이제 다시 나가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내 땅에서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데 나를 돈을 더 뜯어내는 파렴치범 취급을 하고 있다. 지진이 나서 평택만 뒤집어 놓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주민들 “국방부에 속았다”

대추리 입구에 자리한 대추분교.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 협정을 체결한 2004년 말, 평택풍물두레패 등이 점거한 뒤로 이곳은 미군 기지이전 반대 집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추분교에서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의 미군 기지 이전 반대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었다. 대추분교에 있는 이승복 동상은 ‘미군 철수’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동상에는 ‘나는 죽어도 미군 기지가 싫어요’라고 써 있었다.

대추분교에서 만난 한 주민은 “못 배웠다고, 숫자가 적다고, 돈 없다고 나가라는 것이 나라가 할 짓인가. 민주주의가 그런 것이냐”라고 물었다. 집회에 참가한 한 할머니는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편은 안 들고 미국 편만 들고 있으니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한 금속노조원은 “연대한다고 들렀는데 가혹한 현실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 대추분교의 그림과 동상을 보니 대추리 농민들의 아픔이 되살아나 분노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대추리에 4년 만에 평화가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난 4월30일 국방부가 대화로 풀자고 전향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방부에서 박경서 주한미군이전사업단 창설준비단장과 정태용 국방부 장관 정책비서관이 와서 주민들과 마주 앉았다. 노동절이던 지난 5월1일 한명숙 총리가 세종로 청사에서 윤광웅 국방장관, 김영주 국무조정실장, 이택순 경찰청장 등과 함께 ‘평택 미군기지 이전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자, 대추리 주민들은 기대가 컸다. 과거처럼 밀어붙이기만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주민 정태화씨는 “여성 총리가 우리를 이해해 줄 것이다. 그래도 민주화 운동 한 분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다시 강경론으로 치달았다. ‘평택기지 이전 문제는 대화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가 이틀 만에 ‘행정대집행 강행’을 천명했다. 사실 애초부터 국방부는 대화로 풀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덕우 변호사가 국방부와 주민의 대화를 주선해 국방부가 마지못해 끌려 나왔다는 것이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강경 방침을 밝혔다. 윤장관은 “평택 범대위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선동하고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과 주민들께서도 외부 반대 세력들의 주장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대대적인 ‘대추리 접수 작전’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자, 대추리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마을 상공에는 하루 내내 정찰 헬기가 떴다.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주민들은 두렵다고 했다. 쫓겨나면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4일 새벽 4시30분께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국방부와 경찰은 전격적으로 대추리에 대한 강제퇴거(행정대집행)에 들어갔다. 이날 퇴거 작전에는 군병력 2개 연대 3천여 명, 경찰 1백15개 중대 1만1천여 명, 용역업체에서 온 7백40여 명이 동원되었으며 굴착기 등 중장비가 마을을 훑었다.

국방부는 일단 대추분교를 포위해 주민들을 격리시킨 뒤, 도두리와 대추리 등 기지 이전지역 농지 2백85만 평에 철조망을 쳐 주민들이 논에 얼씬도 못하게 할 작정이다. 철조망은 길이가 20㎞가 넘고 높이는 1.8m에 달한다. 주민들의 철조망을 파괴할 것을 대비해 일부 경계 병력을 철조망 내 기지 건설 부지에 장기 주둔시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주민들과 범대위는 맨주먹으로라도 국방부의 공세를 막아내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유영재 범대위 정책위원장은 “국방부의 행정대집행에 맞서기 위해 범대위 소속 회원들에게 대추분교에 총집결하라는 긴급지침 1호를 발령했다”라고 말했다. 또 트랙터와 경운기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로 진입로를 봉쇄하겠다고도 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논두렁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정든 고향 땅을 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추분교에는 범대위 등 시민단체와 주민을 합해 1천2백여 명이 집결해 공권력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공권력에 ‘깨진’ 4일 밤에도 어김없이 촛불을 들었다. 2004년 9월1일 이래 벌써 6백일이 넘었다.

한편 대추리 옆 마을 ‘내리’는 미군 부대에 대한 거부감이 한결 덜해 보였다. 내리 주민들은 논을 빼앗겼지만 집은 건졌다. 내리 주민 최근호씨(86)는 “집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먹고 살지 앞길이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내리 이장 조군호씨는 “고령자가 많아서 보상금을 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운 처지인 대추리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리·동창리 등은 상대적으로 평온

언덕을 넘어 동창리에 가면 대추리와 확연하게 온도차가 감지된다. 이곳에는 새로 올 미군을 상대로 한 고급 빌라가 한창 건설되고 있다. 빌라촌을 세우려는 동창리로서는 미군 기지 이전이 늦어지면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동네의 한 부동산 업자는 “대추리 사람들이 이주비나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부동산 업자는 수첩을 꺼내 정확한 액수라면서 “팽성대책위 주요 핵심 간부들의 보상금 최고 액수는 27억9천만원이며 지도부의 평균 보상금은 19억2천만원에 이른다. 챙길 만큼 챙긴 상태다”라고 비난했다. 국방부와 같은 인식을 보이는 셈이다. 

 
이에 대해 대추리 주민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가 평생토록 가꾸어온 터전이다”라고 말했다. 대추리 주변의 농지는 평당 30만~40만 원 선인 데 비해 주민들이 받은 농지 보상비는 평당 평균 15만원 선에 그친다. 대토가 마련된 곳이 충남 서산이어서 보상을 받고 나간 사람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미군 부대 앞 안정리 로데오거리에서도 대추리의 아픔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곳은 요즘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벌써부터 골목을 단장하고 상점을 새로 짓거나 정비하는 곳도 쉽게 눈에 띄었다. 술집 댄서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휴대전화 상점과 슈퍼마켓에서는 필리핀 여성 점원을 고용하기까지 했다.

로데오거리 입구에서 만난 안경점 사장은 “상가 사람들은 미군 오는 데 대찬성이다. 평택 사람들은 미군 기지 확장에 대해 신경 안 쓴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앞장서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격하게 말했다. 기념품 가게 사장 역시 “대추리에는 농민은 없고 미군 철수 운동을 하는 사람만 있다. 맥아더 동상을 철거한 단체들이 이번에 평택에서 다시 모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팽성읍상인연합회 김기호씨(65)는 “미군 기지를 옮기겠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약속한 국책 사업이니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군 기지 주변 상가의 경기가 나빠져 평택지원특별법 등 미군 기지 이전 후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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