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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보약인가 독약인가

‘성난 황소’처럼 몰려와도 생산적으로 쓰면 ‘복덩이’… 국제 자본에 대한 두려움 · 저항감 버려야

김방희 기자 ㅣ 승인 1998.04.0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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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7일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1차 무역 · 투자진흥대책회의는 과거 청와대 수출진흥회의를 연상시켰다. 65년부터 매달 한 번씩 열렸던 수출진흥회의는 뒷날 무역진흥확대회의로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80년대 중반가지 20년간 중단된 적이 없었다. 대통령(박정희 · 전두환)이 직접 참석한 것도 비슷했다. 이 회의에서는 경제 관료들과 금융기관장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이 참여해, 직접 대통령에게 의견을 개진하곤 했다.

 12년만에 부활한 이 회의가 과거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대통령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느냐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흔희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박 ·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로 수출을 독려하곤 했다. 경제 각료들이 수출 실적 · 전망 · 당면 문제를 보고하면, 대통령이 지시 사항을 내리는 식이었다. 김대통령 역시 수출을 챙기기는 했지만, 한 가지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다.”

한국 경제, 외국 자본에 송두리째 넘어간다?
 당선 직후부터 저명한 외국 금융가들과 직접 접촉해 온 김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외국 자본을 들여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밝혔다. 22개국 주한대사를 증권거래소에 초청해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외국인의 적대적 합병 · 매수(M&A)와 부동산 보유도 전면 허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경제 부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아예 “외자 도입이야말로 경제 위기 극복에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새 정부의 이런 방침에 따라 외국 자본들이 연일 대규모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제적 투자가인 시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가 대우그룹과 현대자동차에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가 하면, 한라그룹은 주요 계열사 매각을 일임하는 조건으로 10억달러를 차입하기로 했다. 대상그룹은 주력사업인 라이신 사업을 독일 바스프사에 6억달러를 받고 팔았으며, 삼성중공업도 중장비 부문을 볼보 사에 넘길 예정이다.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기업(혹은 자산)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압권은 대우자동차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벌이는 협상일 것이다. 제너럴모터스가 대우자동차 주식의 35~50%를 보유함으로써 이루어질 이 전략적 제휴는 그 규모와 상징성 때문에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우그룹은 현재 협상이 90%가까이 진행되었으며, 제너럴모터스측 대주주나 사외 이사들에게 설명하는 절차를 거쳐 8월 이전까지는 공식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이런 기사가 더 자주 언론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외국 자본을 너무 많이 빌려 써서 외환위기를 맞았던 한국으로서는 외자 유입을 좋은 징조로만 여길 수 없다. 외국 자본들이 또다시 한국을 떠나 버리지는 않을까? 혹은 그렇게 될까 봐 늘 전전긍긍하지는 않을까? 나아가 한국 경제를 외국 자본에 송두리째 넘겨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잖아도 한국은 그동안 외국 자본에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아 왔다. 경제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전체 자본의 30~40%를 외국 자본으로 충당했으면서도, 까다롭게 규제해 금융시장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이 점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함께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나 남미 국가들과 다른 점이다. 한국 정부는 94년 말 멕시코의 외환 위기를 보고 금융시장 개방에 더욱 소극적이 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잠시 보류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선택할 여지는 별로 없다. 외화가 부족한 처지에서 당장 외화를 들여오는 방법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길 뿐이다. 무역을 포함한 경상 계정을 통해 외국 자본을 들여오는 것(경상수지 흑자)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너무 느리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당장 왜채를 갚기 위해 빚을 더 내야 할 형편이다.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현재 정부는 30억 달러에 달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 75쪽 경제용어풀이참조)을 발행하기 위해 4월7일까지 5개국 11개 도시에서 로드쇼를 벌이고 있다. 그나마 이 채권 발행이 무사히 끝나야 우리의 외환 위기가 공식 매듭지어진다. 외국 언론들이 이 행사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가 외환 위기를 마무리하는 계기로 간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당장 외국 자본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외국 자본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국내 기업(혹은 자산)매각으로는 최대규모였단 대상그룹의  라이신 사업 매각 건에 대해 한국의 전략 · 핵심 사업을 외국에 넘겼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 좋은 예이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외국인이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임대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부동산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게 되면 이런 불안감은 극적으로 증폭될 수도 있다(18~19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개발연구원(KDI)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3월 초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약 20%가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일반 국민의 약 13%는 외국 자본이 국내에 직접 투자하는 것조차도 좋지 않게 본다. 그나마 이 수치들도 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에 접어들고 나서야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박원암 교수(홍익대 · 경제학)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국 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외자에 대한 통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이 느끼는 이 불안감은 일면 근거가 있으나, 상당 부분은 엄청난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외국 자본의 갑작스러운 증시 이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외환 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증시에 유입된 자금의 상당 부분이 국제 투기 자금(핫머니)이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월부터 매수세를 주도한 외국 자본들은 주로 환차익과 고금리에 초점을 맞추어 국내 우량주와 단기 국채인 통화안정채권 구입에 열을 올려 왔다. 8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겪은 남미 각국도 핫머니로 인한 경제 교란 때문에 후유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적극적인 외자 유치론자인 유종근 전라북도지사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언 발에는 오줌이라도 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주장했다(22~23쪽 인터뷰참조). 핫머니가 유입되어 시간을 벌면서 경제 개혁을 추진한 덕분에 이제는 외국인들의 중 · 장기 직접 투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맞아들었지만, 위태로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환율이 1천3백원대로 급격히 떨어지면서 외환 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오히려 핫머니가 국내 증시를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환 시장이 안정되어 금리가 떨어지자, 환차익과 고금리를 노리고 들어온 핫머니로서는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게 된 셈이다. 환율의 딜레마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합병 · 매수나 직접 투자에 대한 불안감은 근거가 희박한 편이다. 물론 90년대 외환 위기를 겪은 영국이나 멕시코의 경우 금융기관 절반 이상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그러나 국책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자본의 국적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부 유출이나 경제 종속에 대한 공포는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는 지적이다.

자본이동의 폐해, 어떻게 줄일 것인가
 오히려 문제는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업체가 외국에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적대적 합병 · 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해 한국기업 사냥을 껄끄러워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일부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에 대한 지분을 확대하고는 있으나 현재가지는 단순 투자 목적이 주종이며, 외국 자본과의 제휴도 당분간은 업무와 자본위주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세계 자본 시장과 정부의 힘겨루기에서 시장 쪽이 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 냉혈한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해서 움직이는 이 국제 자본은, 어떤 나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주는가하면, 또 어떤 국가를 파멸의 늪에 빠뜨리기도 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거기에 한몫을 했다. 세계 주요 금융 중심지를 연결하는 금융거래망이 구축되어, 정부가 통제하기 불가능한 속도와 규모의 금융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경제관념이다. 지난 10여 년간 전화 서비스든 자본 투자든 정부보다는 시장이 더 낫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이라고는 부지런히 시장을 쫓아가는 것뿐이다. 가령 지방 공단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우코닝 사를 끌어들인다든지, 외국 펀드 매니저들로 하여금 한국 증시에 투자하게 하는 등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정부의 할일처럼 되어 버렸다. 90년대 들어서는 전 세계적으로 외자 유치 경쟁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자본에 대한 공포는 한국에만 국한하는 얘기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하는 변동환율젤ㄹ 수용하지 않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는 아예 국제통화기금의 지원 자체를 꺼린다. ‘성난 황소’같은 국제자본의 이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좌익의 논리가,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에는 주류 경제학계 일각에서도 받아들여질 정도다.

 최근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교수(매사추세츠 공과대학)는 자본이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도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 자본의 대부 격인 조지소로스 퀸텀 펀드회장도 지난해 말 국제자본이동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신용보험공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 자본의 흐름을 대폭 규제하자는 경제 전문가는 없다. 다소 규제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논의가 싹트고 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외국 자본이라는 성난 황소와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황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즉 외국 자본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사용하느냐와 관련이 깊다.

 정치가와 기업가들은 늘 어느 나라의 근로자가 더 생산적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어느 나라가 상대적으로 자본을 더욱 생산적으로 사용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국제 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경쟁력은 후자가 결정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96년 이와 관련해 방대한 연구를 한 세계 최대 컨설팅 기관인 맥킨지사는 자본(외국자본포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새로운 국부(國富)의 기준이라고 선언했다. 이 기고나은 미국보다 더 성실한 근로자를 갖고 있는 일본과 독일을 미국이 경쟁력에서 앞지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낮은 진입 장벽과 격심한 경쟁, 역동적으로 벌어지는 창업과 파산 같은 효과적인 경제 시스템 덕분에 자본이 더 효과적으로 쓰인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겪은 외환 위기의 원인도 외국 자본을 비생산적으로 쓴 데서 찾을 수 있다. 국제 금융에 정통한 한 재벌 총수는 최근 사석에서 한국의 외환 위기를 비슷한 논리로 설명했다. “외환 위기가 찾아오기 전가지만 해도 한국 금융기관들은 국제우대금리(LIBOR)수준에서 외국 자본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동남아에서 외자에 대한 금리는 리보보다 3%정도 높았다. 1백50개나 되는 국내 금융기관이 그 차익을 따먹으려고 외국 자본을 무턱대고 차입했다가, 외환 위기를 자초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만일 국내에 대거 유입되는 외국 자본을 또 흥청망청 써버릴 경우 제2의 외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이두원 교수(연세대 · 경제학)는 ‘외자 유입은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그 돈이 생산 쪽에 쓰일 수 있게 작동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76쪽‘경제시평’참조). 이런 점에서 보자면 김대통령의 신애국론은 ‘외국 돈을 끌어다가 제대로 쓰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일반 국민의 약 20%는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을 인수해 경영하는 것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반면, 경제 전문가는 약 5%만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일반 국민의 약 13%는 외국 자본이 국내에 기업을 직접 설립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반면, 경제 전문가는 약2%만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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