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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성의 바다’에 빠져드는가

'사랑의 묘약’ 바이애그라, 세계적 열풍…왜곡된 사회 구조가 ‘건강한 성’ 해쳐

장영희 기자 ㅣ view@sisapress.com | 승인 1998.06.0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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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남성을 세우는 기적의 치료제라는 바이애그라의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모른다. 허리 아래 은밀한 세계에 대해서는 짐짓 외면해 온 세계의 유력 언론들도 이 문제만큼은 끊임없이 보도하고 있다. 바이애그라에 대한 사람들의 식을 줄 모르는 관심은 개발 회사인 미국 화이저가 이 약이 여성들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든가, 바이애그라보다 효능이 더 탁월한 이른바 ‘신 바이애그라’를 개발하겠다는 뉴스를 연속 생산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국 비뇨기과 의사들이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으로 처방전을 써야 하거나, 한국에서 이 약이 엄청나게 불법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더구나 발기 부전 치료제일 뿐인 이 약에 대해 성 전문가들이 이 약이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며 사회 심리적 효과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런 현상은 인간에게 성(性, sexuality)이 무엇인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에 대해 하태준 비뇨기과 전문의는, 성은 인간의 본능이자 충동이며 욕구라고 지적한다. 맹자와 동시대인인 고자도 일찍이 ‘식색성야(食色性也)’라는 말을 했다. 먹는 것과 성행위를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두 가지 충동과 욕구가 같은 수준에서 겨루어진다면 성욕이 식욕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은 침대에서 애인과 나누는 기쁨을 위해 식탁이 주는 즐거움을 미루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간의 역사에서 성적 쾌락을 향한 충동과 욕구를 완전히 잠재운 사람은 아직 없었다. 사람들은 성적 만족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건강을 탕진해 왔으며,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성욕은 임질·매독·헤르페스(포진)·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같은 것을 무릅쓰게 만들 정도로 끈질기다.

 물론 종교나 신념에 따라 의지력으로 성욕을 다스리려고 몸부림쳐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노력이 무위로 끝났다는 사실은, 멀리는 사도 바울에서 가깝게는 마하트마 간디에게서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내 몸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몸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로마서 7장 23절)라고 고백했다. 37세에 힌두교 의식에서 맹세한 후 평생 독신 생활을 해온 간디는 주위 사람에게 ‘성적으로 결백하게 산다는 것은 마치 칼날 위를 걸어다니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계속되는 몽정과 수면 중의 발기로 고통을 겪던 간디는 60대 후반부터 7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밤마다 알몸을 한 젊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도록 요구했다.

“인간에게 털이 없어진 것은 성적 경쟁의 결과”
 프랑스의 미셀 푸코나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 같은 사회학자들도 성이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인간의 중요 관심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들은 성이 인간 관계와 사회적 제도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이간의 삶으로부터 성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영국의 티모시 테일러라는 젊은 고고학자는 한술 더 뜬다. 테일러는 <섹스의 선사시대:4백만년의 인류 성문화>(번역서 제목, 야한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류의 진화는 다윈 식의 적자 생존 법칙뿐 아니라 ‘성적 선택’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몸에 털이 없어진 것도 살아 남기 위한 본능과 투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이서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한 성적 경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유명한 호색한이나 색정광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카사노바·돈 주앙·변강쇠·클레오파트라·어우동 등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수시로 성적 생각에 사로잡힌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열두 살에서 열아홉 살에 이르는 사춘기 소년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 평균 5분에 한 번은 성적 충동에 사로잡힌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어 성욕 감퇴기에 접어든 50대 남성들도 하루에 몇 번은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심지어 태아의 자위 행위가 목격되었다는 의학계 보고도 있다.

 인간은 왜 이토록 성에 집착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이 안겨주는 쾌락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행위가 매우 유쾌한 경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혹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인간이 강한 성욕을 갖게 된 것에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교수에 의하면, 인간에게 발정기가 사라진 뒤로는 남성들이 여성의 배란기에 정확히 맞추어 종족을 번식시킬 성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지만 사치스러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사람에게 강한 성욕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배란기에 맞추기 위해 시도때도 없이 섹스를 하게된 결과 언제부터인가 생식보다 쾌감 자체를 얻기 위한 성행위가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이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전적으로 쾌감을 얻기 위한 성행위에 몰입하게 된 요인으로는, 제1의 성혁명으로 불리는 60년대의 경구 피임약 개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기든스의 주장처럼, 생식 없는 성행위인 ‘플라스틱 섹스’가 판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성 행동을 지배하는 곳은 어디일까. 허리 아래를 떠오리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가장 중요한 성기관은 뇌이다. 성의학은 뇌의 여러 부위 가운데 대뇌 변연계 부근이 유독 강한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성의 학자들은 성행위를 하거나 수음을 할 때 말초 성기의 자극이 척수를 거쳐 변연계로 절달되고 다시 대뇌 피질로 옮아가 쾌감을 느끼게 되는, 좀더 자세한 경로를 알게 되었다.

 뇌에서 명령을 받은 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월리엄 마스터즈와 심리학자인 버지니아 존슨은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두사람은 54년부터 10여 년 동안 남성 3백12명과 여성 3백82명을 대상으로 무려 만 회에 가까운 성반응 주기를 관찰해 <인간의 성반응>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66년에 펴냈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성반응 주기는 흥분·고조·오르가슴·회복 네 단계를 거친다. 사람은 성적 자극을 받으면 자율 신경이 흥분해 성기의 혈관이 충혈된다. 그 결과 남성은 음경이 발기하고 여성은 질에서 점액이 나와 축축하게 젖고 질 입구가 확대된다. 흥분기에서 수분 동안 고조기가 진행되다가 마침내 쾌감의 절정 상태라 할 수 있는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오르가슴에 임박하면 남성은 항문 괄약근의 수축이 0.8초 간격으로 이루어지고, 근육 수축에 따라 발생하는 세찬 압력에 의해 정액이 단숨에 요도를 통과해 음경 밖으로 사출된다. 또 전신에 분포되어 있는 신경이 흥분되고 근육 경련이 일어난다. 여성은 질 바깥쪽 3분의 1이 부풀어오르고 2~4초 동안 수축하면서 근육 경련을 일으킨다. 남성처럼 항문 괄약근도 수축을 거듭한다. 이러한 율동적인 수축은 오르가슴을 한번 경험할 때마다 대개 3~15회 되풀이된다.

탐닉과 억업으로 점철된 성의 역사
 두 사람의 연구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은 또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에게는 성적 욕구도 쾌감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연구에서는 오히려 사정 후 축 늘어지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멀티 오르가슴’을 느끼는 섹스 베테랑이라는 사라실이 드러났다. 오랜 고정 관념을 깬 학설이었다.

 성은 이처럼 사람을 기쁨에 헐떡이게 한다. 성이 낳은 정신적 에너지가 예술로 승화해 이간은 위대한 문화 예술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성만큼 인간을 질곡으로 몰아넣는 것도 없다. 인간의 성 역사는 성에 비정상적으로 탐닉해 성도착증 같은 이상 행위를 하거나, 반대로 성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거나 금기시해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지게 하는, 탐닉과 억압의 기록으로 점철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적 이상 증세를, 성욕을 만족시키는 방법에 이상이 있는 경우와 성적 매력을 느끼는 대상에 이상이 있는 경우로 크게 나누었다. ‘성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리하르트 폰 크프트 에빙이 처음 규정한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대표적인 변태 성욕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대표적인 변태 성욕이다. 사디즘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학대하여 성적 쾌락을 얻는 가학성 변태 성욕이고, 마조히즘은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학대를 받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피학대 음란증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도 약간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즐긴다. 기꺼이 물고 물리고 꼬집고 꼬집히는 성행위를 하는 것이다.

 옷을 벗거나 성교하는 장면을 훔쳐보면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관음증이나, 반대로 자신의 성기를 공공 장소와 같은 부적절한 곳에서 꺼내 보이는 노출증, 대소변을 통해 성적 만족을 기대하는 호분증과 호뇨증, 통신이 발달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전화 음란증도 일종의 변태 성욕이다.

 성적 만족의 대상이 비정상인 경우도 많다. 성적 관심의 대상을 사람이 아니라 여자의 팬티나 브래지어, 가죽 벨트, 하이힐 같은 물건에 맞추는 절편 음란증(배물애), 성적 대상이 특정 나이에 맞추어지는 소아애와 노인애, 드물지만 죽은 사람과 성교하려는 시체애(屍姦), 개나 양과 성행위를 하려는 동물애(獸姦)도 성도착증이다. 라이히 같은 성의학자들에 따르면, 성도착증은 대부분 후천적인 원인에서 말미암는다. 사람은 자기가 생활하는 문화권에서 성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편견이나 열등감을 갖게 되면 상궤를 벗어나 일탈 행위를 하게 된다.

 겉으로 성을 억압해 온 장치는 서양권은 기독교, 동양권은 유교 문화였다. 그러면서도 남성은 성에 탐닉하고 여성은 억제당하는 이중 잣대가 적용되었다. 남녀에게 달리 적용되는 이중적 성윤리는 왜곡된 성의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서양도 에외가 아니지만, 가부장제가 판치고 성기 중심적이고 남근 숭배적인 성문화가 여전히 기승을 떨고 있는 것은 이런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성의학클리닉 설현욱 원장은, 많은 인종의 음경을 보았지만 한국 남성처럼 음경을 크게 하기 위해 온갖 장치를 하려드는 사람들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남성의 음경은 2㎝ 정도만 되면 성행위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윤수 비뇨기과 전문의가 발표한 한국 남성들의 성생활 조사에서도, 성기의 크기나 정력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남성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71쪽 표 참조).

 95~97년은 한국에서 성이 밀실에서 뛰쳐나온 때로 기억될 만하다. 이 때 대학가는 성에 관한 논의와 행사를 활발히 펼치면서 기존 성 질서와 규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연세대의 ‘컴 투게더’, 서울대의 ‘마음 001’, 고려대의 ‘마음과 마음’ 같은 동성애자 모임은 동성애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성적인 성향을 뿐이라며, ‘성차를 규정짓고 성별에 따른 성역할을 강요하는 성제도와 성권력에 물음표를 찍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또 이 때에는 포르노그라피·동성애·매춘 등 금기 영역의 ‘성감대’를 정면에서 건드린 책들이 범람했다.

“최근 경제 위기는 성 억압 따른 에너지 고갈 탓”
 지난해 ‘빨간 마후라’라는 충격적인 포르노 테이프와 여중고생의 출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10대들의 문란한 성과 개방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성의식은 구미식의 개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대한가족계획협회 부설 성문화연구소의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오히려 성적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72~73쪽 표 참조).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한마디로 혼란에 빠져 있다. 성에 대한 태도나 규범이 모두 이중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복직된 연세대 마광수 교수는 ‘한국은 왜 쇠퇴해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최근의 경제 위기야말로 다양한 문화적 욕구, 다시 말해 성을 억압한 결과 창조적 에너지를 고갈시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교수는 “예술은 관능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관능적 욕구는 곧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엄청난 에너지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은 무엇일까. 과학 평론가 이인식시는 “사랑을 동반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건강하고 성숙한 성의식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많은 성전문가들은 인간의 성해위에는 친밀감 혹은 사랑 같은 정서적인 태도가 신체 접촉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적 갈등을 빚는 부부들은 남성의 발기 부전이나 여성의 불감증보다 친밀감이 없음이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노년기의 성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은 따뜻한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주도권에 대한 갈등과 억압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 11월에 아시아 성학회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영동세브란스 병원 남성의학 연구소 최형기소장(비뇨기과 과장)은 건강한 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위해 이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성에 대해 새롭고 건강한 발상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간의 삶을 지배한다는 성에서 이중성·왜곡·금기·폭력과 같은 말을 떼어 내는 일은 아득하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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