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박상천 법무, 특별한 와유
  • 편집국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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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마당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박상천 법무, 특별한 와유

 외유 중의 으뜸은 대통령 수행이다. 폼도 잡고 외국 거물도 줄줄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해외 나들이 때마다 정·재계 고위층사이에 공식 수행 팀에 들어가려는 물밑 경쟁이 만만치 않다.

 이 경쟁 대열에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뛰어들었다. 오는 6월6일부터 미국 방문 길에 오르는 김대통령을 공식 수행해서 미국 법무장관과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으로서는 매우 드문 외유다.

 그러나 말이 많다. 외교통상부측은 국제 조약체결이 외교부 소관인데 법무부장관이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이다. 중간에 끼인 청와대는 처음에 양쪽 다 가능하다고 말했다가 뒤늦게 대통령이 동의했다며 박장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취임 직후 북풍 등 민감한 대형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종횡무진한 박상천, 그가 대통령을 수행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역 국회의원까지 겸하고 있는 그의 정열적인 톡톡 튀는 스타일을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왕소금’ 살림꾼 닦달에
청와대 식구들, 여름 걱정 태산

 올 여름이 유난히 더우리라는 기상 예보에 청와대 식구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청와대 안살림을 맡고 있는 박금옥 총무 비서관(사진)이 절약을 외치며 웬만하면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고 다녀서이다. 일부에서는 박비서관이 온도게를 들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낮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청와대 실내는 오히려 컴컴해졌다. 역시 불필요한 전등은 모조리 끄라는 박비서관의 닦달 때문이다.

 박비서관이 하도 짠순이 노릇을 하자 각 수석실에서는 불만도 나온다. 꼭 써야 할 돈을 청구할 때도 손 내밀기가 멋쩍다는 것이다. 비서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정권 때문 총무수석이 돈을 잘 만들어 오고, 알아서 잘 챙겨 주기도 했다던데…”라며 아쉽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박비서관은 꿈쩍도 안할 태세다. 대통령의 뜻이 ‘깨끗하고 알뜰한 청와대’라는 점만 강조할 뿐이다. 홍인길 전 총무수석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한 그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청와대 1급 가운데 최빈자로 기록된 그의 재산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는지와도 연관될 것 같다.

‘명함의 덫’ 벗어난 이석현
의욕 넘치는 새 출발
 지난 5월22일은 이석현 국민회의 의원이 완전히 복권된 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그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 주었던 ‘남조선 명함 파동’이 안기부가 색깔 논쟁을 증폭시키기 위해 꾸민 공작이었음이 이 날 검찰의 북풍 사건 수사 발표로 밝혀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동안 오해를 받아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기쁘다. 역사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믿음을 다시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은 지난해 8월18일 신한국당이 자신의 해외용 명함을 근거로 사상적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이것이 안기부 공작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탈당해 산속에서 수양하기도 했다.

 어쨌든 검찰의 발표 덕분에 이의원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정치인이 되는 기반을 확보했다. 그래서 명함 파동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는 2월에 복당한 뒤 맡고 있는 제 3정조위원장으로서 더욱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마초 상암지구에 들어설 월드컵 주경기장의 이름을 경기 기간에만 다국적 기업에 팔아 건설비용으로 1억달러를 조달한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최근 많은 눈길을 모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
고건 · 우상호 ‘6월 기연’

 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선거대책본부 우상호 부대변인(사진)은 모래시계 세대의 대표 주자이다. 87년6·10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부의장을 지낸 우씨는, 6·10항쟁의 기폭제였던 명동성당 농성을 진두 지휘했으며, 이한열씨 장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서울시청 앞 백만 군중 집회를 주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우씨가 ‘모시는’ 고건 후보가, 하필이면 6·10항쟁 당시 치안을 책임졌던 내무부장관이었다는 사실. 즉 치안 총수와 항쟁의 리더로서 한때 ‘적’이었던 두 사람이, 지금은 당선을 목표로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후보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당시 고장관이 경찰력으로 시위 진압이 어려워지자 군 동원을 요청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우씨는 “부대변인으로 들어와서 고후보의 내무부장관 경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분이 정말 묘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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