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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 선봉에 선 현대그룹의 ‘속도전’

금강산 사업 일사천리…국내외 기업 동참 이끌어 재계 견인할 듯

김당 기자 ㅣ 승인 1998.07.0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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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도저 현대’였다. ‘소몰이 방북’ 7박8일 일정을 성공리에 마친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6월23일 판문점으로 돌아온 현대그룹 정몽헌 공동회장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계동 사옥에서 이례적으로 개인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 성과를 밝혔다. 오전에 판문점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공개한 방북 보따리를 좀더 상세히 밝히는 형식이었다.

정회장은 “금강산 개발 및 관광 사업에서는 89년에 맺은 의정서를 기초로 두고 우선 유람선에 의한 관광사업을 금년 10월 이전에 시행하기로 합의를 보고 계약을 확징지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금강산 개발 및 유람선 관광사업은 아세아ㆍ태평양 평화 위원회(아태위원회ㆍ위원장 김용순)와 회의를 했고, 기타 경제 협력 사업은 민족경제협력련협회(민경련ㆍ회장 정운업)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정몽헌 회장이 밝힌 ‘기타 경제 협력 사업’이라는 방북 보따리는 △자동차 조립 사업 △고선박 해체 사업(연 20만t) △철근 공장(연 10만t) 설립 △제3국 건설 사업 공동 진출 △서해안 공단 사업 및 통신 사업 등이었다. 89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 방북 때 북한측과 의정서를 체결하고 협의한 사업은 △금강산 공동 개발 사업 △원산 조선소와 철도 차량 사업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개발 사업 공동 진출 등이었다. 이 중 원산 철도 차량 사업을 제외한 다른 사업들은 모두 사실상 중단되었다. 따라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서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후계자인 정몽헌 회장이 나서서 새로운 협력 사업을 추가하는 진전을 이룬 셈이다.

정회장은 “이 모든 계약과 합의는 상호 공동 이익과 국제 상거래 관계에 따라 본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공동 인식 하에 정부 승인 조건으로 합의했다”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대그룹은 6월25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북측과 체결한 의정서와 계약서 그리고 합의서 사본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동안의 관례로는 기업들이 정부의 사업 승인을 받고서도 계약서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약서 효력이 발효되는 전제 조건인 정부의 사업 승인은커녕 통일부에 제출하는 방북 결과 보고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를 공개한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관광 코스ㆍ유람선 요금 7월 확정
그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 금강산 유람선 사업과 개발 사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대그룹은 6월25일 금강산 유람선을 9월25일부터 운항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측은 이같은 운항 일정을 북측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유람선을 해외에서 구입하는 데 따르는 시간과, 이른바 크루즈 사업이 전무한 형편에서 승무원 수천명을 선발해 교육하는 태만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10월도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는데, 오히려 운항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현대측은 또 다음날 신속하게 유람선 운임 등 금강산 관광 비용과 금강산 관광 코스를 잠정 결정해 발표하고는, 일단 이 잠정안을 가지고 7월5일 방북하는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을 단장으로 한 실무조사단이 현장 실사 후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건설은 유람선 기착지인 장전항에 대형 유람선이 정박할 선착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7월부터는 거대한 공사용 장비와 물자를 이동시킬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이 대북 사업 대책회의를 주재해 △금강산 관광ㆍ개발 사업은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관광객 모집과 관광 코스 개발은 금강개발산업 △고선박 해체 사업과 철근 공정 건설은 인천제철 △제3국 건설 시장 공동 진출은 현대건설 △서해안 공단 개발 사업은 현대종합상사 △통신 사업은 현대전자가 맡아 추진하기로 사별업무 분장을 결정했다. 유람선 요금 책정에서부터 경협 사업 업무 분장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놀라운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측이 6월25일 공개한 합의 문서에 대표 서명한 주체도 흥미롭다. 현대측은 금강산 개발 사업에 관한 의정서만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아래위원회 김용순 위원장과 부위원장 송호경이 연대 서명하는 형식을 갖추었을 뿐, 금강산 관광을 위한 계약서는 정몽헌 회장과 아래위원회 강종훈 서기장이, 기타 경협 사업에 관한 합의서는 역시 정몽헌 회장과 민경련 정운업 회장이 대표 서명하는 형식을 갖추었다.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전권을 위임해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이번 방북 성과를 통해 후계 구도를 정몽헌 회장으로 확실히 굳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의정서에서 주목할 또 다른 대목은 현대그룹과 아래위원회 양측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선 금강산관광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에 관심 있는 국내외 모든 개인 또는 단체를 참가시키기로 합의한 점이다. 이 대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날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조찬 강연에서 강인덕 통일부장관이 밝힌 ‘뉴스’에서 드러났다.

금강산 개발은 김정일의 뜻 반영
강장관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북한측 기구인 금강산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고 밝혔다. 남파 북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측 인사가 북한측이 필요에 의해서 구성한 공식 기구의 직책을 맡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강장관은 전경련 회원들에게 ‘북측은 금강산 사업에 다른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금강산개발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이에 따라 금강산 개발에는 현대 이외에도 북한에 이미 진출한 대우그룹이나 통일 그룹 그리고 박경윤 금강산 국제개발그룹 회장 등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장관은 또 “정명예회장과 김용순 위원장이 금강산 개발 의정서에 서명한 것은 노동당의 위임에 따른 것인 동시에 김정일의 뜻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는 만큼 성사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혀, 때마침 터진 잠수함 돌출 변수로 인해 모처럼 조성된 남북 경협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가 하는 경제인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애썼다.

정몽헌 회장 또한 기자회견에서 “금강산 개발 사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을 관심 있고 능력 있는 국내외 업체와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현대는 이같이 다양한 금강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재계를 선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계 자본에나 롯데ㆍ통일그룹 등과 제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이들 기업은 외국에 기반을 둔 기업이거나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우호 관계를 맺었던 기업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을 계기로 구성되는 금강산개발추진위원회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받들려는 김정일 총비서의 뜻을 반영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판문점 귀환 기자회견 때 정주영 명예회장이 ‘김정일 장군’이라고 호칭한 것도 말이 헛 나온 것이 아니라 ‘계산된 실수’가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현대와 북한측이 모두 유훈 사업에 예우를 갖추어 후계 구도 완성을 위한 ‘속도전’을 꾀했다는 관측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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