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행정 골대 못찾고 맴맴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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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 도시 축소 문제 등 책임 떠넘기기 바빠

 ‘명분 한국. 실리 일본.’ 일본의 한 통신사 서울 지국장이 한국의 월드컵 준비 상황을 취재해 일본 본사에 송고한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한국은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해, 월드컵을 정부가 강력하게 주도하는 국가적 이벤트로 보는 데 반해, 일본은 민간이 주도해 실리위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관계자들은 무릎을 쳐다. 현재 국내의 2002년 월드컵 주무 기관은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이다. 외국의 경우 대회 조직위원회는 통상 축구협회에서 파견된 인원과 민간인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사가 일본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한국 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조직위원회)는 다르다. 직원 대다수가 정부 부처·대한무역진흥공사·관광공사 등에서 파견나온 공무원이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 감각이 부족하고, 정치 입김에 좌우되기 쉽다. 상암동 주 경기장 건설 문제로 갈팡질팡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조직위원회가 상암동 주경기장을 신축하기로 경정하고 국제축구연맹에 통고한 것이 지난 2월1일. 그런데 4월 김종필 총리서리가 주재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이 안은 백지가 되고 말았다. 1주일 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지만.

 개최 도시 축소 문제도 그렇다. 6·4지방 선거가 끝난후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은 “개회 도시를 10개에서 6개로 줄이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관계기관 대책 회의를 가진뒤였다. 그러나 ‘퇴출 도시’로 찍힌 지역구 의원들이 강력히 항의해 이 문제는 그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지역 안배 따른 개최 도시 선정
 이같은 일이 벌어진 까닭은 개최 도시 선정이 지역 안배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97년 말 16개 후보지 가운데 최종적으로 10개가 선정되었는데, 원래는 7개만 선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중에 3개가 추가 되었는데, 이들에게는 ‘국고에서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전주·울산·서귀포를 추가하면서 △일본도 10개도시에서 개최하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했고,△2002년이면 한국이 IMF 위기 상황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10개 경기장을 신축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설명이 못된다.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나뉘어 열려 경제효과가 반감되는 데다가, 국제축구연맹도 6~10개 도시에서 개최하면 된다고 분명히 통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조직위원회의 판단이 얼마나 순진한지를 반증한다. 경기가 후퇴해 지방자치단체는 세수(稅收)가 줄고 민자 유치도 어렵다. 경기장 건설과 관련한 투자를 올해 말부터 본격화해야 하는데 재원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지방자치단체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따라서 개최 도시 축소문제는 아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다. 현재 조직위원회는 6월 말까지 개최도시 10개에 경기장을 건설할 재원을 마련하고 사후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조처는 단지 현황을 점검하는데 목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장 축소 문제로 인해 조직위원회가 또 다시 외부의 입김에 휩쓸릴 공산이 큰 것이다.

 월드컵 대회와 관련한 정부 창구는 문화관광부로서 국회·청와대·국회의 통로 구실을 한다. 문화관광부 체육교류과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할 생각은 없다. 대회 운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조직위원회 몫이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조직위원회는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떠 넘긴다. 대회를 치르든지 말든 그들이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글런데 지방자치단체는 국고 보조금을 기대하면서 월드컵대회 개최권을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 또한 말을 아끼고 있다.

 결국 개최 도시 축소 문제를 포함한 월드컵 행정이 책임 떠 넘기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지금 2002년 월드컵 행정은 산도 못찾고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형국이다.    
朴在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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