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 최형우 ‘代父의 결전’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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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기장을 보선 / 김동주 ‘창’ 안경률 ‘방패’ 접전… TJ · 온산 영향력 싸움

한나라당 ‘부산 불패’ 신화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여권이 PK(부산·경남)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가.

 부산 해운대·기장을 보궐 선거가 7·21 재·보선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초기 판세는 자민련 김동주 후보가 한나라당 안경률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도 있는 상태. 기장 토박이인 김동주 후보가 이곳에서만 두 차례 의원을 지내 지명도가 높은 반면, 안후보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인 데다가 고향이 ㄱ여남 합천이어서 지역 정서까지 작용한 탓이다. 한나라당이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양당 모두 이곳을 접전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만큼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

 일단 이곳 선거는 두 후보 간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사활을 건 당 대 당 대결로 흐르는 양상이다. 우선 4·2 부산 서구 보선과 6·4 부산시장 선거에서 영남권 완패라는 수모를 겪은 여권은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영남의 벽’을 허물겠다는 각오이고, 야당도 ‘부산 방어선’이 허물어지면 영남권 전체가 흔들린다고 판단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종필 총리서리는 지난 7월4일 대구를 거쳐 부산을 방문했다. 취임 이후 첫 영남 지역 순방이었다. 이 날 김총리 서리가 방문한 정관 농공 단지는 보선이 치러지는 기장군에 있어, 총리실 관계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우회적인 선거 지원’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JP와 달리 정치적 부담이 없는 박태준 총재는 아예 해운대 기장을 선거에 자신의 정치 운명을 걸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자신의 안방 격인 포항을 야당에 빼앗긴 박총재 측근의 표현대로, 박총재는 해운대 기장을 선거를 ‘부산 대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총재는 선거 때까지 부산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반드시 김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각오다. 이는 7월 9일 3박4일 일정으로 해운대 기장군에 니려온 박총재가, 원래 10일로 예정되었던 김대중 대통령과의 청와대 주례 회동을 연기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평소 청와대 주례 회동에 쏟는 박총재의 정성을 감안할 때 ‘TJ의 결의’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총재는 김동주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역 대발 약속을 쏟아냈다. 그는 △기장군 그린벨트 해제△빅딜 이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 존치△주택은행에 흡수된 동남은행 조직을 ‘부산 영업본부’로 활용하겠다는 방침 등을 밝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위축된 지역 민심을 다독이고, 부산의 대표적 낙후 지역인 기장군 유권자에게 ‘집권당 프리미엄’을 한껏 강조한 것이다. 박총재는 16일께 다시 부산을 찾아 선거가 끝날 때까지 상주하며 강행군할 예정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안경률 후보 선거 캠프에 부산지역 의원을 총출동시켰다. 신상우·이기택 부총재가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부산시 지부장인 김진재 의원이 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전을 지휘하고 있다. 김무성 의우너은 총괄기획단장, 권철현의원은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최형우 고문을 선대위 명예의장으로 위촉했다는 점이다. 안경률 후보는 최고문 특보출신.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는 최고문은, 안후보가 김동주 후보에게 밀린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돕겠다”라며 선대위 명예의장을 흔쾌히 수락했다. 최고문은 원래 11일게 부산에 내려가서 안후보를 위해 ‘휠체어 지원 유세’를 펼칠 계획이었으나, 폭염과 한쪽 눈의 급작스런 충혈을 염려한 담당의사사의 만류로 일정을 연기 했다. 최고문은 16일께 부산을 방문키로 했다.

낙후지역 기장군 민심에 승부 달려
 물론 최고문은 뇌 수술 이후 언어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탓에 본격적인 유세에 나서기는 어렵고, 대신 정당연설회 등에 참석해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도로 그치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고문의 지원을 받는 안후보측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산 지역 정서의 특성으로 볼 때 ‘최형우 변수’가 작동하면 사실상 선거는 끝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즉 신한국당 경선 당시 불의의 사고로 정치적 꿈을 접고 휠체어에 의지해 부산을 찾는 최고문에 대해 동정표가 일고, 한때 기장군을 지역구로 삼았던 최고문의 영향력이 살아난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것이다.

 최고문의 고향은 기장군과 인접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기장군 장안읍이 최고문의 외가이다. 그는 울산에서 8대 국회 때 처음 금배지를 달았고, 1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지역구가 기장군으로 확장되면서 이 지역과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최고문은 13대 선거에서 지역구를 부산 동래로 옮겨 기장군과 정치적 인연이 끊겼고, 바로 이때 안경률씨를 정치 특보로 영입했다.

 이번 해운대 기장을 보선이 안경률 대 김동주의 대결이라기보다는, TJ 대 溫山(최고문 아호)의 자존심 대결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거가 사실상 TJ와 온산의 ‘대리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항상 대척점에 섰던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두터운 우정을 나누어 왔다는 점에서도,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이래저래 ‘TJ 대 온산’의 대결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에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J의 고향인 기장군 장안읍은 온산의 고향과 단일 생활권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70년대부터 고향성후배로 지내왔다. 박정희 정권 때에는 포철 회장이던 TJ가 야당 의원인 온산을 도왔고, YS정권에서는 반대로 온산이 망명 생활을 하던 TJ를 대신해 기장군에 살고 있던 TJ 모친을 챙겼다. 두 사람은 30년 우정을 의식한 듯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지역 선거전은 복잡한 지역구 사정 땜누에 후보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해운대와 기장군은 지역 개발정도나 주민정서가 천양지차다. 해운대가 ‘부산 정서’를 대표한다면, 기장군은 ‘기장 정서’가 존재한다. 그만큼 기장군은 개발 취약 지역이다. 그린 벨트로 묶인 지역이 80%가 넘고, 아직도 상수도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기장군표의 행방이 선거 흐름을 좌우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장군과 해운대의 유권자 수는 대략 2대 1정도이다.

 김후보측은 합천 출신인 안후보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토박이론’과 ‘지역 개발론’을 내세우고 있고, 안후보측은 수서 사건 구속 전력과 민주당→민자당→국민신당→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김후보의 약점을 들추어내 ‘도덕성’과 ‘철새 정치’론을 역설하고 있다.

 무소속 오규석 후보의 득표력도 변수로 꼽힌다. 오후보는 초대 민선 기장군수를 지낸 올해 39세의 신예. 군수 시절 각종 언론으로부터 모범 군수로 꼽혔을 만큼 오후보의 지역 기반은 탄탄하다는 평이다. 물론 TJ와 온산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는 이번 선거에서 오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가 기장군 표를 얼마나 잠식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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