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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중한’중국 향한 엄숙한 야유

홍등

이세룡 (영화평론가) ㅣ 승인 2006.05.05(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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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燈
감독 : 장이모우
주연 : 공리, 헤카이페

장이모우와 공리 콤비의 세번째 영화〈홍등〉은 황홀하고 섬세한 영상으로 가득하다.

정교한 빛과 색채의 운용, 아끼면서 들려주는 음향 혹은 음악 효과. 완벽한 미장센(화면구성)의 대가 장이모우의 면모는〈홍등〉에서 다시 한번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학 물을 조금 먹은 여자 송련(공리)이 가난 때문에 부잣집‘넷째 마님??이 된다. 대저택, 성곽과도 같은 이 집은 하나의 커다란 감옥이지만 이들의 세계임에 틀림없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득시글거리는 하인들이 말끝마다 읊어대는??전통??인데, 이전통과 법도는 오로지 주인 나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런데〈홍등〉에서 주인 나리는 언제나 풀쇼트 아니면 옆모습만으로 등장해서 얼굴을 알아볼 길이 없다. 마치??전통??이 그렇듯이.

1920년대 초엽을 배경으로 한 중국식 전통. 주인이 날마다 자신과 동침할 부인을 선택하고, 선택받은 부인의 거처에 홍등이 달리면 붉은 오렌지빛 등이 지붕에까지 올려져 검푸른 저녁 하늘 아래서 꿈 같은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 홍등의 따뜻한 불빛 이미지가 장이모우의 祭儀的스타일과 어울리며 한 미학자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좋은 예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뽑힌 여자??를 호명하는 하인의 외침, 하녀로부터 받는 발바닥 안마를 들 수 있다.

일종의 前?인 발바닥 안마를 할 때마다 온 집안에 울려퍼지는 방울소리의 주술적 효과는 러브신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는〈홍등〉을 에로티시즘의 극치로 몰아간다. 이런 디테일의 완벽함은 그의 영화가 단순한 구조로도 관객을 긴장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홍등〉은 4계절을 따라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도 화면 구성은 변하지 않는다. 연속해서 대저택의 지붕들과, 홍등이 여럿 밝혀진  조그만 뜰을 똑같은 앵글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외부 세계는 전혀 없다. 그래서 나이 많은 주인과 결혼한 송련은 꽃병 속의 꽃이 된다. 송련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부조리를 느낀다. 그녀는 인간다운 삶이 정지해버린 이 저택의 전통 안에서 점점 미쳐간다.

마당에 쌓인 눈처럼 탈색된 삶, 공허하기 짝이 없는 나날은 그녀의 현실이지만 실제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 반쯤은 사실, 반쯤은 환상처럼 보인다. 장이모우의 미장센은 이러한 어렴풋한 꿈의 인상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저택의 주인은 드물게 나타나지만 그의 권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면들은 중국식 전통문화가 개인 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치 판화처럼 고정되어 있다. 금세기 초 중국을 질식시키고 있었던 봉건제도에 대해 우회적인 비평을 시도함으로써 장이모우 감독은 이 시대 중국사회의 정체성과 둔중함을 고발한다.

정체는 분명하지 않아도 엄연히‘존재??하면서 인간의 현실과 삶을 지배하는 이 갑갑한??전통??은 대저택의 독특한 상황이지만 넓게는 중국의 현실을 향한 감독의 엄숙한 야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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