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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휘어잡은 무희 그는 왜 북으로 갔는가

최승희, 38년 첫 세계 순회 공연…광복 뒤 ‘친일’ 비난받아

노순동 기자 ㅣ soon@sisapress.com | 승인 1998.08.2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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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연보는 ‘최승희 사람들’을 꼽아 보면 쉽게 만들어진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 준 인물은 일본 신무용의 개척자 이시이 바쿠와 큰오빠 최승일. 숙명여고에 다니던 최승희는 오빠 최승일과 함께 이시이 바쿠 내한 공연을 본 뒤 무용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때 나이 열여섯. 당시 직업 무용수로는 배구자가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뿐, 춤이라면 기생들이 추는 것쯤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시이 바쿠는 두 차례에 걸쳐 최승희를 거둠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3년 뒤 서울(당시 경성)로 돌아온 그는 후원자를 모아 무용연구소를 세웠다. 하지만 그때에는 무용연구소가 자생력을 갖기가 어려웠다. 생활고와 추문에 시달리던 그는 안 막과 결혼하면서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다.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안 막은 박영희·임 화 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문학 진영에서 활동하던 엘리트 청년. 최승희로 하여금 예술관을 바로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아내가 순회 공연에 나설때는 직접 매니저로 나설 만큼 외조(外助)에 헌신적이었다. 당대의 예술가들에 견주어 최승희의 사진과 공연 기록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마케팅 감각이 탁월했음을 말해 준다.

일본 군대 위문, 군부에 기금 헌납하기도
 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카란 극장을 시작으로 세계 순회 공연에 나선 최승희는, 유럽·남미 등지에서 1백50여 차례에 이르는 해외 공연을 했다. 그의 해외 나들이는 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기 일쑤였다. 동포들은 그를 친일파라고 비난했고, 일본 당국으로부터는 반일 행위를 한다는 혐의에 시달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반일 운동 조직이 틀을 갖추기 시작하던 때였고, 세계적으로도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일본 언론은 재미 한국인들이 최승희의 공연장 앞에서 반일 배지를 판매한 것을 빌미 삼아, 최승희가 그런 행위를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혐의를 제기했다.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공연이 이어졌지만 관객의 반응만은 폭발적이었다. 현지 언론의 찬사를 끌어낸 것은 물론이고, 후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의 예술가들로부터도 각별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춤을 추는 일은 굴종의 연속이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장고춤을 출 때도 기모노를 입도록 강요받았다. 이 시기에 군대 위문 공연에 적극 나서고, 군부에 기금을 헌납하는 바람에 뒷날 친일파로 지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연구소 개설을 구실로 베이징으로 탈출해 그 곳에서 중국 무용을 접하고 세계적 경극 무용가 메이란팡(梅蘭芳)과 교분을 맺었다.

김일성, 회고록 통해 찬사…94년 복권된 듯
 광복 뒤, 일제 시대의 친일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르자 그는 남편이 있는 평양으로 올라갔다. 예술가들에 대한 김일성의 대접은 극진했다. 김일성의 첫 인사가 “최여사, 여기서 살 거요? 아니면 다니러 온 거요?”였다. 최승희가 살겠다고 하자 생활비를 주면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살도록 했다(<춤추는 최승희>). 이후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의 배려로 51년 베이징 중앙희극원에 최승희 무용연구반을 꾸린 최승희는, 메이란팡과 함께 경극 무용의 기본 동작을 정리하는 등 고전을 정리하는 데 몰두했다(당시 제자들이 95년 국립 창무단 초청으로 내한한 바 있다).

 53년 그의 연구소 이름은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로 바뀌었고, 58년 안 막이 숙청될 때까지 최승희는 그 곳을 터전으로 최고 권력을 누렸다. 59년 <로동신문>에 무용극 <사도성 이야기>를 비판하는 글이 실리면서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다행히 그의 딸 안승희(본명 안승자)가 공훈 배우가 되어 어머니의 명성을 이었다. 최승희는 <민족 무용 기본 동작>을 영화화하고, 관련 논문을 쓰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67년 그는 숙청되었다. 그의 이름은 공식 문헌에서 사라졌다.

 북한에서 다시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94년. 숙청 즈음 최승희의 소영웅주의와 부르주아적 감성을 비판했던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최승희를 통해 조선의 민족 무용이 현대화했고, 국내에서뿐 아니라 문명을 자랑하는 프랑스·독일 등에서도 환영을 받았다’라고 적어 놓았다. 그가 복권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지만, 그의 최후는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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