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몰린 재계 “1차 시험 붙고 보자”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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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팀 구성, 8월 내 2-3개 산업 빅딜 성사 주력

 지난 8월 14일 오전 7시 30분 서울 프라자호텔, 전경련이 임시 조직으로 만든 구조 조정 태스크 포스가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2차 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난 후 태스크포스 구성원인 5대 그룹 구조조정 본부장들은 포토 라인 앞에서 예의 그 화사하게 웃는 표정들을 지었다. 2-3개 산업 분야에서 곧 빅딜의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덕담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웃고 덕담을 나눈 여유가 없을 것이다. 주요 산어븨 구조 조정을 서두르는 정부와 구조 조정에 소극적이라는 비난 여론 사이에서, 재계는 지금 갑자기 시험날짜를 제시받은 수험생 같은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8월초 김대통령이 빅딜의 성과를 드러내 달라고 주문한 이래, 전경련은 정부에 적어도 8월 말까지는 빅딜 안을 내놓기로 합의한 상태이다. 게다가 정부는 이미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부실 계열사 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 거래 조사를 통해 재벌 그룹들을 강력하게 압박해 왔다.

 김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후 전경련 안에는 테스크 포스가 급조되었다. 과거 5대 그룹 기조실장 혹은 비서실장들로, 지금은 구조조정본부를 이끌고 있는 본부장들을 중심으로 해서였다. 이 티스크 포스 팀은 지난 8월 10일 1차 회의를 연 것을 시작으로, 20일 3차 회의까지 릴레이 회의를 계속하고 있다. 각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고위 임원들은 서울 롯데호텔에 아예 베이스 캠프를 차려놓고 있다.

 지금까지 5대 그룹 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사항은, 합의하기 쉬운 2-3개 산업에서부터 빅딜을 하자는 것과,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선언부터 하고 정산은 나중에 하자는 것 정도이다. 재계가 얼마나 다급한가를 잘 보여주는 합의이다.

 그룹 별로 빅딜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산업의 윤곽도 얼추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현대는 청도 차량, 삼성은 항공, 대우는 백색가전, LG는 개인 휴대 통신(PCS), SK는 정유 업종의 빅딜을 주도하게 된다. 각 그룹이 해당 산업 분야에 대한 빅딜 안을 만들어 전경련에 제출하면, 전경련이 이를 조정해 정부에 의향서를 낸다는 계획이다.

5대 그룹 · 전경련, 정부 의향 파악 골몰
김대통령의 발언과 거의 동시에 나온 정부의 10대 산업 구조 조정 방침도 재계를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과잉 · 중복 투자된 산업 전반의 구조를 조정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3각 빅딜이니 2각 빅딜이니 하는 것들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빅딜 논의 자체가 해당 산업의 구조 조정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로 전략학 만큼, 빅딜 외에도 해당 산업을 위해 필요하다면 다양한 구조 조정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정부의 의지를 재계가 읽은 셈이다.

 만일 정부가 과잉 · 중복 투자된 산업 전반을 뜯어 고치겠다는 방침을 밀어붙일 경우, 70년대의 중화학 공업, 80년대의 해외 건설 · 해운업 합리화 같은 충격 조처가 나올 수 있다. 5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재계가 한두 건이라도 빅딜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재벌들이 구조 조정을 거부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가 더욱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다”라고 우려한다. 전경련이 우선 빅딜이라도 몇 건 성사시켜야 한다고 서두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5대 그룹과 전경련은 빅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의향을 확인하는 데도 골몰하고 있다. 베이스 캠프를 차려놓고 있는 각 그룹 실무진들은 산업자원부와 수시로 협의하고 있다. 전경련 차원에서는 김우중 회장대행이 박태영 산업자원부장관과 거의 주 1회꼴로 회동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재계가 서둘러 일부 산업에서 빅딜을 성사시키더라도, 정부가 원한 방향이 아닐 경우 문제만 복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그룹은 정부의 구조 조정방향에 따라 기업의 사활이 좌우될 수도 있다.

 산업자원부의 10대 산업 구조 조정 방안 같은 정부의 방침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느 정도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까지 재계의 비공식 입장은 정부 요구를 다 소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방침에 어는 정도 부합하는 2-3개 산업의 빅딜을 성사시켜 놓고 정부측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를 ‘일단 1차 시험에 집중하는 전략’ 이라고 했다. 8월 말게 나올 것으로 보이는 빅딜 안은 공표하기 전에 산업자원부와 협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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