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송환’ 고비는 넘었지만 …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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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밀입국 탈북자 김용화씨, 강제 퇴거 위기 모면 … “한국행이 최선책”

지난 4월 19일 일본으로 밀항한 탈북자 김용화씨(46)에 대한 강제퇴거명령서 발급 취소 청구 재판이 8월 10일부터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302호 법정에서 시작되었따. 김용화씨는 소형 어선을 타고 일본에 밀입국한 뒤 일본 봅무성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었다.

 일본 법무성은 그러나 김용화씨이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이유를 들어 6월30일 이 신청을 정식으로 기각했다. 이에 따라 7월2일 김용화씨에게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졌다.
 
‘김용화씨를 돕는 모임’ ‘북조선 난민구호기금’과 같은 일본의 시민 · 인권 단체들은 김용화씨에게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지자 즉각 후쿠오카 지방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집행 정지를 청구했다. 이 청구가 인정되자 일본의 시민 · 인권 단체들이 강제퇴거명령서 발급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이에 대한 심리가 10일부터 후쿠오카 지방법원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김용화씨를 돕는 모임을 주관하는 가토 히토시(加??) 씨에 따르면, 이번 재판에서는 변호인측과 법무성측이 매달 한 차례Tlr 진술할 것으로 보여, 강제 퇴거냐 난민 인정이냐가 결정 나기까지는 6개월-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만약 이번 재판에서 패하더라도 일본의 지원단체들이 또 다른 재판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김용화씨가 당분간 중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은 없어졌다고 한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 6월 김용화씨에 대해 난민 인정 신청을 기각하고 강제퇴거명령을 내린 것은, 그가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에서 규정한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토 씨에 따르면, 일본 법무성도 그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북한 국적임을 증명하는 여권이나 증명서를 가지고 있지 않고 ,중국 정부에 그의 신분을 확인한 결과 중국 국민이라고 회답해 온 점 등을 들어 난민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정한 것이다. 하지만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그가 한국어만 할 수 있고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난 과정에 대한 그의 진술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일본 법무성이 그럼에도 김용화씨에 대해 서둘러 강제퇴거명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가토 씨는 일본 법무성이 한반도 유사시 난민이 대거 일본으로 몰려들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방위청은 한반도 유사시 일시적으로 난민 27만명이 일본에 밀려들고, 사태가 완전히 수습될 때까지 그 10배인 2백70만명이 들이닥치리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한반도 난민 유입에 대처할 일본 경찰과 해상보안청의 인력은 3만5천명 정도에 불과하고, 수용 시설과 예산 또한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교 있다.

일본 정부, 대량 난민 선례 만들까 우려
 가토씨는 또 김용홨이의 난민 인정 신청을 허용할 경우 김용화씨와 같은 탈북자들이 대거 일본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탈북자를 난미능로 인정한 유일한 경우는 84년 일본 화물선 제18 후지산마루에 몰래 숨어 들어간 민홍구 하사뿐이다.

 북한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제18 후지산마루의 선장과 기관장을 억류하고 교화 노동 15년을 부과했다. 이같은 전례 때문에 일본 정부는 50t급 감시선 수단호를 몰고 후쿠이 항에 표착한 김만철씨 일가의 입국을 거부하고 대만을 통해 한국에 들어가도록 강요했었다.

 그 이후 한국뿐 아니라 중국 · 러시아 등지에는 탈북자가 줄을 이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탈출하고 다시 일본으로 밀항한 김용화씨를 난민으로 인정할 경우 한국 · 중국 · 러시아에 퍼져 있는 탈북자들이 일본으로 밀려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가토씨는 분석한다.

 가토 씨는 이번 재판에서 김용화씨가 결국 난민으로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특별 체류 허가를 받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본다. 가토 씨는 또 김용화씨가 만약 특별 체류 허가를 받더라도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그가 어떻게 일본 생활에 적응할지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은 민홍구 하사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민하사는 일본으로 밀입국한 뒤 3년9개월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민하사는 북한 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일본 공안조사청의 비호를 받아 술집과 파친코 종업원 직을 전전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고 상해 · 강도 사건을 저질러 주위로부터 기피 인물이 되었다.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으나, 그의 행패를 견디지 못한 부인으로부터도 이혼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토씨는 김용화씨의 나이가 이미 40대 후반이라는 점과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난민으로 인정되더라도 민하사의 전철을 밝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시민 · 인권 단체들은 김용화씨 추방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가. 가토씨는 김용화씨가 중국으로 송환될 경우 북한으로 추방되어 처형될 것이분명하기 때문에 그의 인권을 지켜 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만약 김용화씨가 중국으로 송환되면 북한으로 다시 추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보면 김용화씨가 이번 재판에서 난민인정을 받든 중국으로 송환되든 후유증은 남는다. 가토씨는 이같은 우려를 털어놓으면서 김씨가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협의하여 그를 다시 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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