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 강화해 북한 경제 살린다
  • 김연철(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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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부 대북 이론가 3인의 ‘한반도 정책’ 특별 기고

김대중 정부의 냉전 구조 해체 전략은 대북 인식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김영삼 정부시절 ‘공백의 5년’을 특징지웠던 북한 붕괴론이라는 정책적 전제는 이제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변화론에 입각한 대북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 변화란 냉전에서 탈냉전적 남북 관게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적대와 경쟁에서 공존과 공영 구조로의 변화이다.

 이제는 북한에도 변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활로를 막은 채 북한의 변화만을 요구해 왔다. 사실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론은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가 존재하는 상화에서 불가피한 발전 전략이었다. 수출 경제로 변화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고 어떻게 북한에 개방을 강요할 것인가?

 이미 북한 경제는 변화의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변화는 90년대 이후 북한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은 자원(식량 및 에너지)이 제약된 상황에서 계획 경제 기능이 약해지고 이른바 ‘2차 경제’(암시장)현상이 확산되었다. 배급제 기능이 떨어지는 동안 생존을 위한 자연 발생적인 시장 거래가 확대되었다.

 북한 역시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공식으로 반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인 농민 시장에서 시장 거래 확산을 묵인하고 있으며, 도시 지역에서 소규모 상업을 인정하고 있다. 개혁을 거부하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주장되고 있지만, 북한은 이미 변화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변화는 98년 개정된 헌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개정 헌법은 소유권을 확대하고 개인소유의 범위를 확장했으며, 경영 활동의 채산성 및 경제적 수익성 개념을 도입했다. 여행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시장 경제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계획 경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변화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북한이 자본주의 국제 경제 체제로 편입하려고 적극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97년9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실사단을, 98년2월에는 세계은행(World Bank)조사단을 초청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 북한 경제 현대화 모색
 특히 자본주의 경제를 배우기 위해 중간 실무 관료의 해외 연수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근다. 97년 유엔개발게획(UNDP)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시작된 해외 연수는 98년에 백여 명을 넘어섰다. 99년부터는 세계은행에 의해 체계적인 국제 금융 및 자본주의 경제학 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될 예정이다. 주로 내각의 실 · 국장급 및 연구소 선임연구원들로 구성된 이들은 앞으로 효율적인 경제 정책 수립과 외국 자본 유치 실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북한이 글로벌 경제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점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국제 금융 기구를 통해 북한 경제를 지원하려고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 시설 등 현안 문제가 해결되고, 한 · 미 양국의 포괄적 대북 접근이 본격화하면 미국의 대북 경제 체재 해제와 더불어 국제 사회의 북한 경제 현대화 기획이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북한에 대한 한국의 역할은 매우 크다. 우선 대북 지원 정책으로 냉전적 불신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대남 군사전략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대북 포용 정책의 ‘순진성’을 비판한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에 대해 우리가 즉자적으로 반응하면, 불신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느 일방이 신뢰의 이니셔티브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불신의 고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대북 포용 정책은 자신감의 산물이며, 강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다. 엄격한 상호주의와 같은 냉전적 소극성으로는 탈냉전적 남북 관계를 조성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식량 · 비료 · 농업 구조 개선 등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를 활성화할 조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공영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경협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남북한 경제 협력은 금강산 관광이라는 돌파구가 마련되고 나서도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 IMF사태 이후 조성된 환율 상승과 경영 여건 악화로 98년 남북 교역 규모는 전년 대비 28%나 감소했다. 동시에 금강산 사업은 정부의 정 · 경 분리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상징성 때문에 정치화하고 있다. 동시에 대부분의 대형 투자 사업에서 현대그룹만이 적극성을 보일 뿐, 다른 기업은 소극적이다. 경협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전반적인 경협 환경 개선과 사업 다양화가 요구되고 있다. 대북 포용 정책에서 경협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경협 주체 다양화 위한 재도 보완 시급
 경협 활성화를 위해서는, 남북 교류 협력 부속 합의서를 이행해 경협의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경협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물류 체계와 에너지 협력 방안이 필요하다.

 먼저 현재의 해상 물류 시스템으로는 경협의 수익성이 보장될 수없다. 도로 · 철도를 연결해 육상 물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철도의 경우 남북간 미연결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경의선의 미연결 구간은 남측(문신-장단)12km와 북측(장단-봉동) 8km,경원선은 남측(신탄리-군사분계선) 16.2km, 북측(군사분계선-평강) 14.8km이다.

 이미 정부는 남측 지역의 실시 설계(경의선은 85년, 경원선은 91년)와 용지 매입(97년)을 마쳤다. 남북한이 합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시공이 가능하다. 남북한의 물자 교역이 철도를 통해 이루어질 경우, 운송비는 해상 운송비의 3분의 1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하늬 에너지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전력난은 북한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경협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북한의 전력난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경수로가 완공되려면 앞으로 7-8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화력 발전소건설이든 남한 전력 지원이든 에너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적으로는 더 적극적인 경협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98년 4월 내부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소극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경협 활성화 대책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에 경협 전담 부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경협 활성화 조처들이 현실화 할 수 있도록 현장 밀착형 행정을 추진해야 한다.

 무어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투자 사업과 중소형 사업 진출의 병행 발전이다. 중소기업들은 경협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자금력이 열악해 투자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명 무실한 남북협력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장기 저리 대출 등을 통해 ‘협력기금’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한반도는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전환하는 문턱에 서 있다. 미 · 북한 관계가 교착되어 발생한 위기는 더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획에 대해 사대주의적 근성을 드러내는 냉전적 비관주의자들의 냉소가 일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에 서 있다. 국제 사회가 북한 경제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사자인 우리가 어떻게 냉전구조 해체라는 새로운 천년의기획을 미룰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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