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뒤늦은 동물보호 호들갑
  • 편집국 ()
  • 승인 2006.05.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살 맞은 물오리’에 언론 법석... 정신대 문제엔 침묵



일본에서 2월과 8월은 이른바 ‘니파치’라 하여 모든 사람이 꺼리는 달이다. 그 까닭은 결산기와 휴가철이 겹쳐 경기가 썩 좋지 않기 때문. 언론사들도 이 때가 되면 화끈한 뉴스가 별로 없어 화제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올해 2월의 일본 열도는 화살이 꽂힌 한 마리 야생 물오리 때문에 빚어진 이른바 ‘야가모 소동’으로 크게 달랐다. 경기용 양궁 화살이 등에 박힌 문제의 물오리가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 1월6일.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이 철새의 애처로운 모습은 발견 당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일본에서 물오리란 ‘흔한 것’의 대명사나 다름없이 때문이다. 이전부터 물오리 즉 ‘가모(   )’라 하면 ‘봉’이나 ‘먹이’를 뜻하는 은유어로 통한다. 또 일본인들은 ‘오리 냄비’ ‘오리 우동’ ‘오리 덮밥’ 같은 오리 요리를 즐기기 때문에 물오리는 식도락의 대상일 망정 보호할 동물은 아니었다.

 물오리 한 마리가 먹거리에서 동물 보호의 대상으로 돌변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주일이 지난 2월1일. <마이니치신문>에 이어 AP통신이 ‘화살 맞은 물오리’ 기사를 전세계에 보도하자 화끈한 뉴스가 없어 쩔쩔매던 일본 언론들이 뒤늦게 이 물오리를 찾아 나서면서 부터이다. 어느 텔레비전 취재진은 헬리콥터를 동원해 이 물오리를 찾는가 하면, 일간지 스포츠 신문 잡지사 들은 취재 전담반을 편성해 물오리의 하루하루 동정을 소상하게 보도하는 정성을 보였다.

 취재 경쟁이 과열되자 관청은 언론에 ‘보도 자숙’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부상한 물오리가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와 소음에 쇼크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보도 자숙’이라면 작년 2월 왕세자비 간택을 둘러싸고 궁내청이 언론사들에 요청했던 것과 똑같은 조처다. 한 주간지 기자는 이에 대해, 왕세자와 왕세자비가 데이트를 즐겼다는 곳이 공교롭게 지바의 물오리 서식처였고, 왕세자비 어머니가 왕실을 동물애호 정서를 무시하고 가죽 코트를 입었다고 비난받은 일 따위를 대비해 보면 물오리 소동은 바로 왕세자비 간택 소동과 다를 바 없는 ‘바카(바보) 소동’이라고 취재소감을 털어 놓았다.

 극적으로 구출된 물오리는 치료가 끝나고 3월이면 다시 시베리아로 날아갈 것이다. 일본인들이 물오리에게 보인 인도주의가 왜 정신대 문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그들도 정신대 만행이 국제법상 동물 학대보다 더 무거운 ‘人道에 관한 죄’라는 것을 알텐데 말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한 이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최근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책으로 개별 보상 방식 보다는 기금운용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정액의 기금을 갹출하여 그에 대한 운용을 양국 적십자사에 위탁해 현재 등록된 종군위안부 출신 1백3명의 생활비와 의료비로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든 것은 “한국측이 과거 문제를 되풀이해 끄집어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물오리 구출 소동에서 보인 것 같은 성의를 과거사 청산에서 보인다면 문제는 휠씬 쉽게 풀릴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