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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도널드 P.그레그 주한 미국대사

“미국은 한국의 교사가 아니다”

변창섭 기자 ㅣ 승인 2006.05.08(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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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P.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외유내강’한 인물로 평한다. 그는 평생 중앙정보국(CIA)에 몸담아온 사람답게, 참모들의 하찮은 보고서까지 꼼꼼히 챙기고 때로는 주석까지 단다. 올해66세인 그레그 대사는 명문 윌리엄스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졸업과 함께 중앙정보국에 투신해 82년 은퇴할 때까지 30년 이상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란-콘트라 사건 연루설로 8개월 간의 상원인준청문회 끝에 89년 9월 한국에 부임한 그레그 대사는 광주사태 때 미국의 개입문제, 한ㆍ미 통상 마찰, 북한 핵문제 등을 다루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후 28일 이임한다.

 

30여년 만에 이땅에서 문민정부 탄생을 지켜본 ‘행운의 대사’인데 감회가 어떻습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있을 때 이런 일을 경험한 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지도력은 북방외교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바탕을 튼튼히 다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0개월간 재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취임 초부터 끝까지 경제문제였습니다. 끊임없이 골치 아팠던 문제는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부닥치는 사업상의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풀기도 어려우며 또 자주 일어납니다.

 

가장 큰 보람은 어떤 것입니까?

재임중 한국이 국내 정치, 러시아ㆍ중국과의 교섭, 북한과의 대화 재개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감을 확대한 데 대단히 큰 만족을 느낍니다. 이런 자신감이 커지면서 한국에서 이른바 반외국 감정이 누그러 졌습니다.

 

반미 감정도 포함된 것인가요?

저는 반미 감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서울에서는 다른 어떤 외국인보다 미국인을 많이 볼 수 있으나 학생들의 반미 데모는 약해졌고, 전대협도 해체됐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반체제 인사들이 이제 사회의 본류에 합류해도 좋을 만큼 매력을 느끼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시사저널》이 정례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시사포럼에 참석했더니, 민주당 최고위원인 이부영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 자신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테이블은 전보다 넓어져 지금은 나도 앉을 수 있다”라고요. 저는 그가 대단한 말을 했다고 봅니다. 그가 한말은 작금의 한국 상황에 대한 찬사이기도 합니다. 테이블이 점점 넓어져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은 제가 한국인에게서 들은 말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대사는 재임중 미국이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십니까?

저는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만이 자기네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봅니다. 특별히 미국의 교훈을 필요로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한국인 스스로 풀어낸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지요.

 

아직도 많은 한국 사람은 주한 미국대사의 한국내 영항력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 교사나 강사로 온 것이 아닙니다.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동맹국으로서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제가 만나본 사람 중 미국이 선거를 배후에서 조종한다고 비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은 이미 그런 단계를 벗어났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에 대한 엄청난 모욕입니다

 

주한 미국대사란 아마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직책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한ㆍ미 관계는 풍부하고도 공고해 대사직을 둘러싼 양국 간의 문제들이 아주 매력적이지요. 한국은 지구상에서 주한 미국대사 같은 나라에서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미군4성 장군과 상대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 때문에 미군측과의 교섭력, 인내심, 정열 같은 요소가 주한 미국대사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사는 그러한 자질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자질을 모두 가졌다면 더 일을 잘했을 것입니다. 분명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지요. 예를 들면, 재임중 한국의 대학생 앞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낼 수 없었던 점입니다. 좀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단점을 지적해 줄 수 있습니까?

한가지 지적한다면, 한국인은 스스로를 너무 자학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인 모두가 성취한 것에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일부분야에서 한국인의 자신감이 늘어난 것을 보았습니다만, 앞으로 수년 내에 경제분야에서도 그러길 바랍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을 사귄 것으로 압니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을 든다면 누굴 꼽겠습니까?

백선엽 장군을 들 수 있을 것 같군요. 그의 인경이며 용기를 높이 사지요.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지도자로서, 외교관으로서 존경합니다. 그밖에 강영훈 김상협 두 전직 총리, 김동길씨와 고 김옥길 여사, 김수환 추기경도 인상적인분들이죠. 한국인은 정치 군사 교육 종교 분야에 이런 분들을 가지고 있어 축복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들 중 누구에게 도움말을 구했습니까?

광주에 내려갈 때 김대중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말을 구했지요. 친구로서 그는 제게 상당히 좋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호레이스 언더우드씨와 김경원씨도 제가 도움말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취임 초기에 대사는 광주에 내려가 관계 있는 인사와 미국의 광주사태 개입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고, 경북의 한 농가를 방문해 농민들과 쌀 문제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때의 감회는 어떤 것입니까?

광주에 내려가서는 반체제 인사 다섯명과 네시간에 걸쳐 토론했습니다. 끝날 무렵 그들은 제게 “우리는 당신의 대답에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 문제에 진전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씨를 백악관의 첫 방문객으로 초청한 까닭은, 사형을 언도받은 김대중씨를 살리려 했기 때문이란 점을 광주 인사들에게 납득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봅니다.

 

쌀 문제에 대한 농민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한 농부의 집 마루에 앉아 20여명과 두세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쌀수입 문제에 대한 이들의 감정이 매우 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한국 주부는 가계지출의 약 30%을 음식비에 쓴 반면 일본주부는 21% 미국주부는 11% 정도 씁니다. 따라서 한국 농부들을 보호하는 비용은 대단히 큽니다. 저는 한 저명 인사가 “멀지않아 쌀시장 개방 문제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인사는 정부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취임 때와 비교해 반미 감정은 늘었습니까, 줄었습니까?

줄었죠. 주한 미공보원에서는 해마다 이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이는데, 반미 감정이 가장 심했던 때는 89-90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후로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대학 총장이나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운동권 급진주의자들이 약화되고 있고 대학내에 ‘양키 고 홈’이 적힌 표지판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갈등요인은 어디에서 생길까요?

경제 분야입니다. 제가 취임했을 때 앞으로 한ㆍ미관계는 군사동맹 관계에서 정치ㆍ경제의 동반자로 바뀌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반쯤 진행된 것 같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우리는 아직 강력한 동반자가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관료적 규제가 심해서 그렇습니까?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균형잡힌 지도력이 없는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은 김종휘 외교수석과 이상옥 외무부장관으로 하여금 국방부측과 긴밀히 협조하도록 해서 대외정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부문에선 그러질 못했조. 재무부와 한국은행은 늘 티격태격하느라 바빴죠. 이 때문에 한국내 미국 기업들은 끊임없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12월 아내와 함께 태국에 들렀을 때 그곳 미대사관 직원에게 태국의 투자환경을 물어보고 놀랐습니다. 태국에서는 45일이며 외국인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3년 걸립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군요?

김영삼 정부에 기대를 겁니다. 한국만큼 잠재력을 갖지 못한 동남 아시아국들도 경제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본이 그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잠재력으로 보면 한국이 훨씬 강하나 이곳은 사업하기가 너무 까다롭습니다. 앞으로 클린턴 정부, 김영삼 정부, 그리고 제 후임이 풀어야 할 숙제 입니다.

 

북한이 끝내 핵개발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쓸 마지막 수단은 무엇입니까?

북한이 핵문제에 협조하면 미국은 무역 관계를 비롯한 여러 관계를 증진할 용의가 있습니다. 북한의 핵 문제에 관련해서 자연스런 돌파구가 열릴 상황이 온다고 봅니다. 워싱턴과 서울에 각각 새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북한은 클린턴 정부나 김영삼 정부와 전임 정권 때보다 좀더 나은 거래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서로를 안다고 하면서도 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 문제를 생각도 해보고 얘기도 해보고 논쟁도 벌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젊은 기자들과 한 모임에서 만나 이 문제를 꺼냈더니 “무슨 뜻이냐”고 묻더군요. 이들은 해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 얼마나 많으냐 하고 반문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지요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지, 미국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몰이해는 한술 더 뜹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한국에 대해 아는게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내 대학들이 미국학 강좌를 개설하면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귀국하면 뉴욕의 코리아협회 회장직을 맡을 예정입니다. 미국내 한국학 연구의 발전을 위해 힘쓸 생각입니다.

 

대사는 지난해 정동 대사관저를 ‘하비브의 집’이라고 명명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난 71년부터 74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씨는 2차대전후 미 국무부가 배출한 최고의 외교관입니다. 그가 살던 정동 대사관저는 천장도 낡았고 서까래도 낡아 대단히 위험했죠. 미 국무부는 보수공사에 필요한 예산을 따내 전형적인 서구식 저택을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비브 대사가 한국 전통가옥을 지어야 한다며 반대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한국식 저택을 짓는 것이 한ㆍ미관계의 기념비가 되리라고 보았죠. 이 문제를 두고 국무부 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하비브 대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대사는 공직 활동 대부분 중앙정보국에서 보냈고 말년은 대사로 보냈습니다. ‘명 정보원’으로 기억되길 바랍니까, 아니면 ‘명 외교관’으로 기억되기 바랍니까?

어떤 일을 맡았건 미국을 대표해 효과적으로 봉직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랍니다.

 

끝으로 한국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

우선 민주주의를 공고히한 데 대해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군부도 이젠 직업정신에 투철해 정치에서 손을 뗐습니다. 다음으로 한국민에게 너무 자학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것을 인하고 자긍심을 갖고 미래에 대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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