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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상냥한’ 민원창구 있는 CIA

미국내 공작 불허로 거부감 없어ㆍㆍㆍ예산삭감 자구책으로 경제정보 치중

워싱턴ㆍ김승웅 특파원 ㅣ 승인 2006.05.08(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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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114는 미국에서는 411이다. 워싱턴D.C.에서 411을 돌려 중앙정보국(CIA)을 물으니 482-7676이라고 알려준다. 이 번호로 걸었더니 한 여성이 “CIA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낭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시사저널≫ 특파원이라는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공보책임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하자 ‘낭랑한 목소리’는 자기가 공보책임자의 비서라며, 공보책임자는 지금 회의중이니 자기에게 문의해 달라고 말한다. 중앙정보국의 인원수와 예산을 알고 싶다고 했더니 “둘 다 밝히지 않는 것이 미합중국 CIA의 관행”이라고 상냥하게 답해 주었다. 상냥한 어조와는 달리 “미합중국 CIA”라는 대목은 무게와 권위를 느끼게 한다.

 -위치는?

 “CIA, 워싱텅D.C. 20505."

 -질문서를 보내고 싶다. 정확한 주소, 거리 이름과 번지를 말해 달라.

 “거리 이름은 없다. 방금 알려준 곳으로 편지하면 틀림없이 닿는다.”

 -제임스 울시 국장과 인터뷰하고 싶다. 또 한가지, 평소 한국 안전기획부와는 횡적으로 유대를 갖는가?

 “내가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 책임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회답할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확히 세시간후 중앙정보국 공보책임자 데이비드 크리스천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 외국 기자한테는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아왔다. 이해해 달라.”

 

외국 언론에 언터뷰 불허

 전화 통화를 한 지 1주일이 지나 ‘여비서 베티’가 발송자로 표기된 중앙정보국 안내 책자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이 안내서에 실린 ‘중앙정보국의 신조’ 가운데 아홉번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임무를 수행할 때 우리 건물 현판에 새겨진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구한다.” 신약 성경 요한서에 나오는 이 구절은 “우리는 음지에서 활동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의 신조와는, 임무 면에서는 비슷할지 모르나 방향이나 목적에서는 크게 다른 점을 느끼게 한다.

 한낱 상징적이고 수사적인 문구로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나라 비밀 첩보기관 신조의 차이점은 지금 두나라에 공동의 과제로 등장한 ‘경제정보의 배분과 중앙정보국의 역할’과 관련해 그 효율이나 기능 면에서 엉뚱한 결과로 나타날 공산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미국민에게 주는 이미지는 한국의 안기부가 한국민에게 주는 ‘두려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중앙정보국 요원에게는 수사권이 부여돼 있지 않은 데다가, 활동의 폭과 공작 대상이 국내가 아닌 외국으로 엄격히 제안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민은 중앙정보국에 공포감이나 반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중앙정보국이 공산권이 붕괴한 뒤 군사정보보다 경제정보 쪽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발상 전환이라고 평가받는다. 이같은 변신을 놓고 중앙정보국 내부는 물론이고 상급기관인 백악관과 미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란은 발상의 전환에 쏠린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냐 하는데 있다. 즉 중앙정보국의 변화가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ㆍ교역)를 얼마만큼 메워줄 수 있느냐 하는 실용성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논란 과정에서 중앙정보국이 선거에 관여했다거나 누구를 고문했다는 소문이 단 한차례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년 예산 24조원

 미국 중앙정보국의 활동목표 전환이 자연스럽고 또 논리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안기부의 목표 전환은 전환 시기나 절차상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30년전 창설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정보국을 흉내내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이 짙다.

 안기부가 맨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상냥한 목소리’로 대변되는 민원창구를 신설해서 국민과 친숙해져야 하는 일이며, 공보대변인을 두어 언론 취재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이비 요원이 없어지고 안기부에 대한 신뢰감도 생긴다.

 안기부가 이와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갖지 못한 채 중앙정보국 흉내나 낼 경우, 정보를 공유해야 할 민간 기업은 안기부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평소 ‘무서워하던’ 대상이 어떤 것을 정보라며 넘겨 준다면 그 가지나 유용성에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미중앙정보국이 왜 경제정보를 관장하려 하는가, 그 속사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보국의 1년 예산은(공보대변인은 한사코 부인하지만) 3백억달러 수준에 이른다. 한국 돈으로는 24조원,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3분의 2에 달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세 시절 이 예산 가운데 취임 첫해에 10억달러를 삭감하고, 1997년까지 삭감액을 45억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노라고 장담했다. 중앙정보국의 경제정보 탐사설이 나온 시점이 바로 유세 당시 클린턴이 발언한 시점과 일치하여, 중앙정보국의 예산삭감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정보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줄어들 예산에 대비한 중앙정보국의 방어책 가운데 하나로 경제정보 탐사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언론인 코데빌라씨가 <뉴욕타임스> 2월16일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미국 해외공관에 배속된 중앙정보국 요원 수는 7만8천여명으로 추산된다. 또 워싱터D.C.의 랭그리 숲속에 서울의 신촌만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중앙정보국 본부에는 안내책자에 명시한 과학자 기술자 경제학자 언어학자 수학자 비서 컴퓨터전문가 의사 물리학자 변호사 말고도 수백가지 직종의 전문직업인이 모여 하나의 작은 정부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임 제임스 울시 국장이 최근 상원인준청문회에서 밝힌 것을 보면, 중앙정보국이 경제정보를 탐사하여 민간 기업에 배분하려는 방안은 예산감축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 대식구의 사활을 걸고 고육지책으로 마련해 낸 ‘임무’라는 느낌이 든다. 중앙정보국이 그동안 수집한 각종 경제정보 가운데는 아직껏 높이 평가되고 있는 수준급 정보가 적지 않다. 유럽 5개국이 에어버스라는 새 항공기를 제작하던 지난 70년대 중반, 중앙정보국은 이 항공기가 선을 보이기도 전에 새 기종이 등장하면 미국 항공기 제작업계가 시장을 20% 정도 잃을 것으로 정확히 진단한 바 있다. 또 2년전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내 전화설비 업체를 선정하면서 미국의 AT&T와 일본의 NEC 및 스미모토 등 세 회사를 놓고 저울질 했을 때, 일본 기업이 수주하기 위한 미끼로 차관을 제공하려는 사실을 재빨리 간파해 낸 것도 AT&T가 아니라 중앙정보국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항의함으로써 미국사와 일본사가 반반씩 수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비판론도 만만치 않아

 그러나 문제는 촌각을 다투는 경제정보의 싸움터에서 중앙정보국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완벽한 정보’, 즉 기획하고 다듬고 집행하고 이를 다시 검증하는 기존의 군사정보형 방식이 과연 얼마만큼 효과적이고 구매력을 지닌 정보를 생산해 내겠느냐는 데 있다.

 또 굵직한 경제정보를 입수했다 한들 경제정보를 캐낼 대상국이 대부분 일본 한국 이스라엘, 심지어 국경을 함께 맞대고 있는 캐나다 같은 우방 또는 혈맹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미합중국 중앙정보국이라는 이름까지 내걸고 정보탐사에 나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중앙정보국의 일선 요원 대부분은 국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망정, 개인 기업을 위해서 분전하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달라는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정보국의 경제정보 탐사계획은 결국 올해 중앙정보국 예산에서 10달러 규모를 삭감하려는 데 대항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안기부는 미국의 중앙정보국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첫째, 북한체제는 아직 무너지지도 않았고 둘째, 예산절감과 같은 조처를 실시하지 않으며(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셋째, 무엇보다도 안기부의 이미지가 중앙정보국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기부는 중앙정보부의 변신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필요ㆍ충분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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