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새 문학지평 ‘도시문학’이 연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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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감수성 표방ㆍㆍㆍ패러다임 대변혁 전조


 소설가를 찾아온 음악대학 여대생은 ‘왜?’라는 질문에 모두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이 소설가가 ‘6년 전인 1993년’에 만난 월간지 여기자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와 관계한다. 그는 남자보다, 자신에게 뉴스를 제공하는 정보원들의 연락처가 가득 담긴 전자수첩을 더 아낀다. 이 세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것들이 끼어들지 않는다. 대신 영화 컴퓨터 대중음악 카페 자동차 같은 욕망의 매체들이 존재한다.

 30대 후반의 소설가와 기자, 그리고 여대생이 등장하는 ‘미래소설’ <블루스하우스>의 작가 하재봉씨는 “우리는 도시를 외면하고는 인간과 삶을 말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상자 기사 참조). 이른바 도시문학이 90년대 한국 문학의 분명한 기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기류는 한편에서 난기류라고 관측되기도 하지만, 그 기류에 기구를 띄워놓고 있는 작가들은 도시문학이야말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발언한다.

 인간에게 도시란, 이제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도시에서 살게끔 되어 있다. 최근의 통계의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83%가 도시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농촌에 사는 나머지 사람들도 도시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활양식이나 의식구조는 도시적이다. 전국민이 도시인인 것이다.

 

‘박탈감의 상징’에서 ‘가치의 공간’으로

 그러나 도시적 삶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도시문학에 대한 개념 정립이나 그 논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월간 ≪문학정신≫이 3월호 특집을 도시문학이라고 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도시공간’이라고 잡은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도시문학에 대한 논의가 최근 돌출된 것도 아니다. 서구문학의 모더니즘이 도시의 출현과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으로부터 출발했듯이, 이미 한국 문학사도 20~30년대의 이상ㆍ박태원 들의 도시문학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60~70년대를 통해 도시문학은 한국사회의 산업화, 즉 도시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문제들을 근접거리에서 포착해왔다. 80년대까지 도시문학은 시나 소설을 막론하고 농촌공동체의 입장에서 도시를 ‘인간의 적’으로 여겼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농촌공동체 속의 유년체험에 바탕을 둔 감수성과 인식틀은 도시 현실을 들여다 보는 정확한 렌즈가 되기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권택영씨(경희대 영문과 교수)가 ≪문학정신≫ 특집에 기고한 평문 <도시와 문학>은 ‘청계천에서 압구정동까지’ 즉 30년대~90년대 도시문학의 단계별 특징을 일별하고 있다. 권씨는 박태원이 30년대 서울 청계천변의 세태를 정밀하게 그려낸 <천변풍경>이 도시소설의 발원지라고 본다. 박태원의 ‘후손’들은 대략 60년대까지는 욕망을 실현하는 장소로서, 70년대는 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는 독특한 문화현상의 집결지로서 도시를 읽어낸다고 권씨는 분석했다.

 권씨에 따르면 명동 시절과 박인환으로 요약되는 50년대 전후의 모더니즘은 “어떠한 구속도 거부하는 저항정신”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감상주의라는 결함도 내포한다. 서울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단절감을 그린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과 이농향도의 과정을 천착한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60년대 도시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홍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같은 상대적 박탈감을 다룬 사회소설과 도시화가 낳은 정신적 황폐, 즉 천박한 물질주의를 묘파한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등이 70년대 도시소설의 대표작들이다. 80년대 들어, 강석경은 <숲속의 방>에서 젊은 세대의 방황을, 양귀자와 박영한은 각각 <원미동 사람들>가 <왕릉일가>에서 도시 주변부와 도심(서울)의 영향관계와 공동체의식이 허물어지는 과도기적 상황을 해부했다.

 이같은 도시소설은 80년대 후반 ‘시운동’ 동인들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도시시(일상시)와 맞물리면서 문단의 이슈로 등장하는 기미를 보였지만 이내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에 휩싸여 수그러들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김준오씨(부산대 국문과 교수)는 “80년대 해체시의 과격함과 민중시의 과도한 정치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도시시였다”면서, 도시시는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에 가려진 듯이 보이지만 이미 그 논의 안에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에 따르면, 80년대 도시시가 규격화되고 체제순응적인 물신주의를 도시로 상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의 도시시들은 도시 일상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는 단계로 옮아가 있다. 단순한 분노나 공격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주체의 죽음’을 심도 있게 진단하려는 시도가 보이는 것이다. 이하석 황지우 최승호 등이 선도적으로 도시 문명에 예리한 메스를 가하던 80년대의 도시시는 90년대 유 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분기점을 맞는다. 이 90년대 도시문학은, 한편으로 저현종 고형렬 시인이 전개하고 있는, 환경문제의 종말론적인 상황을 주제로 하는 ‘환경시’의 영역으로 넓혀졌으며, 장정일 이순원 하재봉의 소설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또다른 관점을 확보했다. 특히 장정일 하재봉의 소설들은, 섣부른 윤리적 잣대를 배제하고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문화적 양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문학에 부정적인 징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도시문학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도시문학은 아직까지 자본주의의 현란한 신화에 가려진 파괴성ㆍ비인간성을 진지하게 문제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찬제씨는, 요즘 도시문학 작가들이 자본주의를 정직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초의 세대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다른 인간과의 관계가 부정되는 묵시록적인 단독자”를 특징으로 하면서 “내성의 깊이를 잃고 있다”고 우려한다. 도시문학은 혼성모방등 글쓰기의 방식은 물론, 그 내용에 있어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와 겹치고 있어서 이에 대한 찬반 논의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그 논란의 제목은 ‘과연 문학(작가)은 무엇인가’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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