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주의 빠질 때 문학은 위험”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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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첫 장편 <콜렉트 콜>을 발표한 작가 겸 시인 하재봉(36)은 최근에 내놓은 <블루스하우스>(세계사)와 현재 스포츠 신문에 연재중인 <쿨 재즈> 그리고 곧 발간될 <누구나 포토맥에 가고 싶어 한다>(가제)를 4부작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 네권의 장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후기산업사회 속의 인간’이다.

 그에게 도시는 후기산업사회ㆍ정보화사회로서의 도시이다. 이 소설들은 90년에 펴낸 시집 ≪비디오/천국≫(문학과지성사) 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그가 보기에 현대인의 삶을 규정짓는 핵심은 정보화사회이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현실과 가상현실이 모호해지고, 나아가 전도돼버리기도 한다. 그가 도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전통적’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언어적 형상화가 소설이고 보면, 오늘의 도시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현대 소설의 임무이자 권리라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가벼운 상업주의적 소설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민감한 감수성과 속도감으로 사물 위를 뛰어다니지만 그것은 단순한 스침이 아니라 그 내부에 탐조등을 비추는 검색 작업”이라고 말했다. 또한 “엄숙주의에 빠질 때만큼 문학이 위험할 때가 없다”면서 자신의 실험은 독자와 소통하려는 치열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이념문제를 다룬 소설은 지나치게 무겁다. 이 재미없는 진지함을 작품성과 동일시한 결과 독자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념적인 무거움이 예술성이라면 그런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하씨는 말했다.

 <블루스하우스>는 일종의 미래소설이다. 1백16개에 달하는 ‘장황한’ 각주 또한 이 소설의 새로움에 기여한다. 1999년에 1993년을 돌아보는 주인공 소설가는 “나의 유일한 스승은 극장과 텔레비전”이라고 말한다. 뉴 미디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장악한 시대에서 인간의 정서적 교감은 불가능하다. 소설가는 ‘섹스 파트너’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자 절망감에 빠져든다. 그의 도시는 욕망과 허무가 반복되는 ‘괴물’의 공간이지만, 소설가는 환각 속에서 태아의 자세를 그리워한다. 이 몸짓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찾는 희망의 몸짓이다. 이 소설은 미래소설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현재에 대응한다. 무기력해진 꿈과 허무로 끝나는 욕망이 현실처럼 배회하는 도시에서 환상을 강조한 이 소설은, 환상이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반어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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