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당선자가 대접받는 사회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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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당직 영입’…‘정호용’등 10명 장담

 이번 14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21명은 모두 집권 민자당의 ‘안방’에서 당선됐다. 부산 1명, 대구·경북 6명, 경남 4명, 대전·충남 4명, 강원 2명, 제주 3명, 인천 1명이란 구성 분보에서 드러나듯 민자당이 자기 지지기반이라고 여겼던 지역에서 골고루 민심의 이반 현상이 나타났다. 마산시 합포구에서 당선된 金□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범여권의 범주에 드는 인사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당선되자마자 곧장 여당의 품안으로 뛰어들던 과거와 달리 신중한 자세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또 몇몇 당선자는 과거에 정계를 주름잡던 실세였다 해도 이제는 변화된 정계 토양에 따라 예전과 전혀 다른 정치 행로를 밟아야 할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李昇茂(점촌·문경) 徐錫宰(부산 사하구) 金吉弘(안동시)씨처럼 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자당 입당을 선언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 집권당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야권에 남는 ‘정치 실험’을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이승무씨와 김길홍씨는 선거 때 “당선되면 민자당에 입당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이들은 경쟁 후보가 민주계인 사실을 들어 “계파 지분 때문에 공천을 못받았지만 사실 ‘겉 공천’이 아닌 ‘속 공천’은 나다”라는 점을 선거전에 이용하기도 했다. 동해시 보궐선거 후보자 매수혐의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연기되는 가운데 출마한 서석재씨 경우는, 당선을 위해 민자당이 그의 비서를 ‘위장공천’했기 때문에 사실상 무소속 후보라고 볼 수 없다.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끼리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포항시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무소속 許和平씨는 이번 포항 선거를 “작은 혁명”으로 규정한다. 상대 후보인 2선 의원 李□雨씨는 10년 넘게 포항제철의 고문 변호사로 일했고 친동생이 포철의 부사장으로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민자당 朴□□ 최고위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허씨는 “포항을 위해서라고 포항제철이 더 이상 정치에 이용 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시대의 흐름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여와 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권 세력이냐 비집권 세력이냐 하는 분류만이 있다”고 주장한다.

 허씨의 주장은 적대 개념으로서의 여·야 구분이 무너지고 단지 집권당이냐 아니냐 하는 단순한 차별만이 존재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소속 당선자들도 과거처럼 여당에 들어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조건 이득이라는 선입관을 지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명 중 과반수가 민자 입당에 회의적
 현 정치권의 애매모호한 판세도 무소속 당선자들로 하여금 성급한 판단을 주저하게 만든다. 특히 민자당 내 패권다툼의 향방이 확실한 윤곽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계속 안개에 가려 있는 상태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가 어떤 정치적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점이 이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민자당 입당과 관련해 “아직 잘 모르겠다. 나를 당선시켜준 유권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말을 앞세운다.

 민자당의 입장에서도 무소속 당선자 영입이 먹기좋은 ‘감자’만은 아니다. 민자당이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서 이들의 영입은 필수적이지만 그러려면 기존의 지구당 위원장들을 밀어내는 일이 전제 조건이 된다. 민주계는 전당대회에서의 자유경선을 코 앞에 둔 현실에서 비록 원외 지구당위원장이기는 하지만 자파 인사를 밀어내는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잘못했다가는 민정계의 입지만 넓혀주는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무소속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계의 □□□ 金日東 □正□ □□義 申□國 □萬□ 白□□ □□性씨 등 8명의 현역 의원을 밀어냈다.

 이 점은 공화계도 마찬가지다. 계보 자체가 존립하기 힘들 정도로 참패를 면치 못한 공화계는 그나마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의 자리라도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공천 당시 “어려울 때 같이 고생했다”는 의리를 내세워 자파 인사의 공천을 고집했던 金□□ 최고위원은 자신은 자리를 떠날지라도 직계 수하들만은 구제하려고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에게 자리를 내준 金□萬 朴忠□ □一永 □□□씨 등 4명이 김최고위원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셈이다.

 계파 차원의 역학관계가 아니더라도 민자당이 무소속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무소속 당선자 한명 한명의 힘이 절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무소속 영입에 의해 겨우 과반수를 넘어선 민자당이 국회의 각종 표결에서 영입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에 비례해 영입자들의 발언권은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영입 조건으로 국회 상임위원장이라든지 당직, 하다못해 ‘물이 좋은’ 상임위 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민자당은 이들의 영입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천 탈락 과정서 겪은 불쾌감은 결코 과소평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중부권의 한 당선자는 “김영삼 대표가 선거 유세를 다니면서 ‘무소속 당선자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다고 해도 영입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쫓아낼 때는 언제고 다시 추파를 던지는 것은 무엇인가. 한 입으로 두말 하는 행태에 정말 진력이 난다”고 당 지도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미 입당 의사를 밝힌 3명 외에 25일 김대표에게 전화로 당선 인사를 한 □必□(진양) 朴□□(영천시·군)씨 등은 입당이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구 서갑) □和平(포항) 李相□(공주) 河□□(진주) 金相□(상주) 金正男(삼척) 씨 등 소위 5공계열 인사와, 공천 과정서 심한 갈등을 겪은 □□□(인천 북갑) □□□(대전 중구) 李□□(대전 서·유성) 成□□(천안)씨, 공천이 취소되고 옥중 당선된 李□□(거창군)씨 등은 민자당 입당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국민당, 정대철 의원 빼내올 가능성도
 무소속 영입에 관한 한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민주당과 달리 국민당은 31석에 불과한 원내 세력을 좀더 키우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당선자 대부분이 초선이거나 고령의 원로급 인사여서 당직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영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국민당은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그리고 2석 정도 할애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상임위원장감이 없어 고심중이다.

 국민당의 최우선 영입 대상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정호용씨다. 국민당 관계자들은 선거 이전부터 정씨와 깊은 이야기가 오갔고, 선거 중에도 계속 대화 채널이 유지됐기 때문에 정씨의 입당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낙관적 태도이다. 이와 관련해 □□永 대표는 “한 차례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정씨의 입당은 주저하고 있는 영남권 무소속 인사들을 곧장 국민당으로 끌어당길 흡인력이 될 수도 있다.

 국민당은 □□□(강릉) □□大(제주시) □正□(북제주군) □□一(서귀포·남제주) 허화평 하순봉 김상구 이상재 씨 등 10여명이 입당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한다. 이들 중 몇몇에 대해서는 선거 때에 이미 도움을 줬다는 것이 당 인사들의 설명이다. 다른 당과 달리 의정활동을 위한 보조비를 지급한다는 점도 국민당이 유리한 조건이다. 국민당은 돈 안쓰는 깨끗한 정치를 실현한다는 기존의 정책을 그대로 살려, 당소속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있어서 정치자금 때문에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적정 수준의 활동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국민당의 영입 작전은 무소속 당선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대표는 서울 중구에 공천자를 내지 않은 것과 관련 “서울 출신인 정대철 의원은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민주당에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 정의원의 입당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정계의 한 소식통은 현재 이와 관련해 상당히 깊숙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민주당은 국민당의 ‘사람 빼가기’에 아연 긴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만일의 경우 정의원의 국민당 입당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에 그치지 않고 정의원과 정치지향성이 비슷한 사람들과 한 묶음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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