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개발 주도권 노리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9.11.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지 소로스 통해 청사진 전달"‥ 주한 미국상공회의소가 전초 기지 맡을 듯

60년대의 남한과 현재의 북한이 다른 점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과거 미국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와 어떤 과정을 통해 수교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수교하는 문제가 북한 경제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할 때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하나는 현안 타결이고, 또 하나는 개혁ㆍ개방이었다.

  북한과의 수교 협상에서 미국이 당면 현안으로 삼고 있는 문제는 핵과 미사일 문제다. 핵 문제가 94년 제네바 회담을 통해 일단락된 것으로 친다면 지금 남은 것은 미사일 문제다. 그런데 미ㆍ북한 수교 과정은 이같은 현안 해결가 개혁ㆍ개방, 다시 말해 북한 체제의 미래 청사진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지난 9월12일 타결된 미ㆍ북한 베를린 회담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미국 언론이 행정부 관리들의 설명을 근거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이 앞으로 미사일 생산이나 수출 문제 등 각론에까지 동의할 경우 미국은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의 차관을 공여하고 또 약 백억 달러로 추산되는 일본의 대북 수교 자금 지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합의를 별도로 맺었다고 한다. 국제 금융기관의 차관 공여나 일본 배상금 문제는 북한 체제의 미래 청사진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ㆍ북한, 북한 체제 미래 놓고 흥정중"
  미국과 북한이 겉으로는 미사일 협상이라는 현안에 매달리는 것 같으면서도 이면에서는 북한 체제를 발전시킬 방향에 대해 뭔가 흥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최근에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다시 말해 먼저 북한 체제의 청사진에 합의하고 현안인 미사일 문제 타결은 시기를 조정해 가면서 표면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북한은 어떤 경로로 이같은 청사진을 주고받았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조지 소로스이다. 월스트리트를 무대로 활동하는 헤지펀드의 대부로 알려진 소로스가 북한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로스가 운영하고 있는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경우 이미 북한 경제 관료 해외 연수에 깊이 관여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97년 8월부터 98년 8월까지 유엔개발계획(UNDP)주관으로 북한 경제 관료에 대한 해외 연수가 추진되었는데, 소로스 재단이 그 비용의 40%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최근 소로스와 관련해 나오고 있는 얘기는 이보다 더욱 깊다. 즉 소로스가 '미국이 희망하는 북한 개발 청사진'을 북측에 전달하는 메진저 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기는 97년 하반기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9월 북한이 새로운 수정헌법을 발표하면서 '시장 경제 요소'를 어색하게나마 끼워 넣었던 것도 소로스를 통해 전달된 미국의 메시지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조지 소로스의 움직임이 수면 아래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제프리 존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의 움직임은 공개적이다. 제프리 존스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북한투자조사단을 구성해 11월 중순께 방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는 지난 10월 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도 뭔가 경제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번 투자조사단은 북측으로부터 그 계획을 설명 듣고 향후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북한의 경제 개발 계획이 과거 박정희식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제프리 존스 회장의 발언을 주목하는 이유는, 소로스를 통해 미국이 전달했다는 북한  계획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로스가 어떤 내용을 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박정희식 개발 전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이유 외에도 최근 미국의 북한 정책과 관련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도 제프리 존스 회장의 발언을 주목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최근 국제 전화 통화에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행보를 보면 미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앞으로 미국 대북 전략의 전초 기지로서 정부간 교섭만으로는 부족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그들이 올리는 현장 보고서에 따라 미국 행정부의 보폭이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또한 한ㆍ미ㆍ일이 북한과 접근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북한, 일본의 배상금으로 자금 확보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은 미ㆍ일 공조를 주축으로, 한국을 보조축으로 활용하는 것을 북한 정책의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 미ㆍ일 공조가 주측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 북한 경제 개발은 미국이 주도해 일본이 책임을 떠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책임은 일본이 떠맡고 주도권은 미국이 갖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매우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 행동 계획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소속 미국 기업들인 것이다. 그 행동은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첫째, 북한 기간산업 중 석유 개발이나 금융 시스템, 통신망 같은 전략적 분야는 미국 기업이 우선적으로 장악한다. 둘째, 이들 미국 기업의 북한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은 일본이 북한에 지불할 예정인 수교 배상금에서 확보한다. 셋째, 미국 기업이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는 미국 기업이 주도해 일본 기업과 컨소시엄을 결성한다. 넷째, 한국 기업의 북한 진출을 주선하거나 동반 진출 등을 통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가 남북 경협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

  앞의 워싱턴 소식통은 이같은 네 가지 기본 방향이 워싱턴에서 깊숙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의도는 이처럼 분명하지만 과연 일본이 순순히 따를 것인지가 문제다. <시사저널>과 통화한 도쿄의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이 일본 정부에 ODA(일본 정부가 제3 세계 개발을 위해 지원하는 원조 자금)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계속 가해 왔다. 그러나 북한에 지급할 배상금을 미국 기업의 진출 자금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난센스다"라고 일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북 배상금은 ODA 자금 중에서도 '타이드 론'(조건부 차관)에 해당하며, 이것은 자국 기업에게만 개방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라는 것이다.

  그는 벡텔 사처럼 공항 건설에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는 예외로 치더라도, 미국 기업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일본 기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미ㆍ일 공동 진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과 공동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은 북한과 언어 소통이 자유롭고 정서적으로도 교감이 빠르며, 기술 발전 단계에서도 북한에는 꼭 필요하나 일본에는 없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등 상호 보완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북한 경제 개발을 주도하기도 어렵고 북한도 이를 원치 않는 상황이라면, 앞으로 미ㆍ일 공조의 틈바구니를 잘 활용해 실리를 챙길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南文熙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